
- 모유수유를 방해하는 의료인과 한의사의 역할 -
모유수유가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은 엄마들은 늘었는데 아직도 산모들이 모유수유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모유를 먹이고자 하는 엄마들은 의료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러한 카페에 들어가 보면 모유먹이는 것보다 분유먹이는 것이 더 좋다는 시절을 살았던 어른들, 모유먹이는 것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제도, 그리고 모유 먹이는 것에 의식이 부족한 의료인들을 모유수유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 모유수유를 방해하는 의료 경험 사례들
‘출생 직후 엄마의 회복을 위해 아기를 엄마로부터 오랜 시간 떼놓았다.’, ‘아기는 출생 직후 엄마와 떨어져 있었다.’, ‘신생아실에서 아기가 배고파서 운다고 분유를 먹였다.’, ‘산후조리원에서 밤에 젖먹이면 피곤하다며 낮에 짜놓은 젖을 밤에 먹이도록 했다.’
최근 아이를 낳은 엄마라면 위와 같은 상황이 낯설지만은 않다. 모유수유는 출산 직후 엄마와 아기가 같이 붙어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병원의 시스템과 산모들에게 충분한 휴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핑계로 모유수유를 실패하도록 만드는 최초의 원인이 된다.
최근 2주 정도의 산후조리에 수백만원의 비용을 받는 각종 산후조리원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인데,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생각하는 의료인이 운영하는 산후조리원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행위들이다.
‘아기가 신생아황달이 있다며 모유를 끊도록 했다.’, ‘아기가 설사를 한다며 모유를 끊고 설사분유를 먹이도록 했다.’, ‘아기가 아토피가 심하다며 모유를 끊고 알러지용 분유를 먹이도록 했다.’
이 경우는 아기에게 나타나는 각종 증상을 이유로 모유수유를 중단하도록 한 예이다. 그러나 신생아황달이 나타나서 모유를 끊어야 할 정도의 아기라면 상당히 중증의 황달이라야 한다. 황달이라면서 혈액검사, 광선치료와 함께 모유수유를 중단해야 한다면 아이와 엄마가 받아야 하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싸는 아이의 황달이라면 오히려 모유가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환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설사와 아토피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모유를 먹이는 아이들의 대변은 상당히 묽은 편이다. 탈수를 동반하는 설사나 심각한 수준의 아토피인 경우에도 모유를 끊어 보라고 하는 것은 쥐 한 마리 잡아보자고 초가삼간 다 태울 수도 있는 것임을 명심하자. 기본적으로 모유는 어떠한 대체음식보다 알러지반응을 가장 적게 일으키기 때문이다.
모든 분유(알러지용 분유는 더욱 많은 공정을 거침)는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화학적인 공정과 가공처리를 위한 인공첨가물질이 포함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엄마가 관절통증, 산후풍으로 고생한다며 밤중에 젖을 먹이지 않도록 했다.’, ‘엄마가 힘들어 산후우울증에 걸렸다며 젖을 끊도록 했다.’, ‘6개월 이후엔 젖도 영양가가 떨어지는만큼 산후 다이어트를 위해 젖을 끊도록 하였다.’ 엄마의 건강을 이유로 젖을 먹이지 않도록 지도한 예이다.
이 경우에도 환자나 주위 친지들과 충분한 상담을 통해 엄마를 가장 힘들게 하는 요소가 과연 모유수유인지 아니면 육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스트레스인지를 판별해야 된다. 모유수유가 익숙해지고 아이가 스스로 몸을 가누고 움직이기 전에는 모유수유를 끊는 것만으로도 다소간 몸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를 힘들게 하는 궁극적인 원인이 제거되지 않으면 분유를 먹여서 키우는 육아과정이 더 큰 스트레스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환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이 외에도 모유수유 중 발생하는 젖몸살과 젖량 부족 등의 문제를 적절히 해결해주지 못한 경우들도 많았다. 한의학의 경우 이 경우에 다른 어떠한 의료행위보다 큰 강점을 갖고 있지만 소극적으로 약 한제 덜렁 지어서 보내면 안된다. 이 때 내원한 환자들에게 모유수유 전반에 대한 고민을 함께 상담하고 적극적으로 지도하여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면, 향후 산후조리와 육아 전체에 대한 상담을 한의사에게 의뢰하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 모유수유 증진운동은 현대의학을 반성한다
1992년 유니세프가 모유수유 권장 운동인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만들기 운동(BFHI; Baby - Friendly Hospital Initiative)’이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었지만 모유수유를 제대로 지도하는 의료인은 부족하다.
의료인들은 모유수유보다는 분유수유에 바탕을 두고 있던 현대의학을 주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 지식이 형성된 시점에 분유산업이 호황을 이룬 점, 분유산업의 후원을 받은 연구가 많은 점, 모유수유보다는 분유수유가 객관화 및 데이터화하기 쉬웠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최근 서구의 모유수유 증진운동은 현대의학의 이러한 부분을 반성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과학적 근거들을 찾아내고 있다. 모유수유 증진을 위한 지식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전통적인 모유수유 방법에 뿌리를 두고 내용을 복원하여 과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지식을 체계화하고 있다.
1956년 엄마 7명의 모임에서 시작되어 국제적인 단체로 거듭난 라레체리그(LLLI, La Leche League), 1991년 조직된 국제모유수유연맹(WABA, World Alliance for Breastfeeding Action) 등의 민간단체 및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등의 국제기구가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 우리나라 모유수유 증진운동의 동향
국내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국제모유수유전문가(IBCLC) 교육을 받은 의료인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대부분은 간호사들에 의해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일부 소아과나 산부인과 의사들도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젖을 먹이고자 하는 엄마들은 모유수유를 제대로 지도해주는 의료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모유수유를 위해 서구에서 나온 지식을 의료인들에게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지식들은 아기와 엄마의 건강을 한의학으로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의학적 현실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한의사들이 국제적인 모유수유 증진운동에 동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의 특수한 의료환경의 탓인지 이미 서구에서 모유수유증진을 위해 전통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발굴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모유수유전문가 중 일부는 한의학과 관련된 태교, 산전산후관리, 영유아관리 등의 내용을 비과학으로 폄하하고 심지어 한약은 절대 복용해선 안될 것이라고 산모들을 교육하고 있다.
# 모유수유를 위한 우리의 전통을 복원해야 한다
현대의학과 비교하여 한의학은 모유수유에 매우 적합한 의료체계이다. 국제모유수유증진 운동에서 만들어진 지식들은 이미 한의학의 내용과 일치되는 부분들이 많다. 또 모유수유 중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트러블을 해결하는 방법들이 일찍부터 발달되어 있다. 한의사들은 모유수유를 잘 도와줄 수 있는 기본교육은 이미 받은 셈이다.
한의사들이 21세기 사회에서 적절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현대의학을 반성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의사들이 모유수유 권장운동에 앞장서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을 하고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 앞으로 동료 한의사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