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서울특별시한의사회 제 3회 전체이사회가 열린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이 자리했다. ‘작은 몸 불꽃같은 영혼을 가진 민족의 사상가’라 소개된 그는 다름 아닌 재야 운동가 백기완 씨.
‘탁탁탁…’ 조용하던 회의실의 정적을 깨고 그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책상을 치면 누구나 놀라지만 미처 생각해보지 않거나 겪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나오면 놀라는 게 아니라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다.
땅별의 탈은 자본주의 문명 때문
우리는 아픈 환자들에게 ‘병이 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병이 난 것이 아니라 탈이 났다고 하는 것이 옳다. 땅별(지구의 순우리말) 역시 탈이 났는데 그는 이러한 원인을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 기인한다고 봤다.
“남쪽의 10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이 점점 사막화되고 있습니다. 열대 숲의 경우, 원래는 15%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겨우 5%에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얼마 안가 땅별에는 열대 숲이 사라져 버리고 약 300년이 지난 후에는 흑성의 모습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자본주의 문명이 탈이 나게 됐을까? 백기완 씨에 따르면, 먼저 이윤 극대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 때문이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환경을 깨뜨리는 물질을 마구 버린다. 현대 자본주의는 비단 자연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무수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모든 전쟁은 자본주의 문명의 종주국인 미국이 일으켰다. 전쟁 경기를 진작시키고 상대국의 자원과 노동력, 기술 등을 빼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는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 짓기도 하는데 매일 굶어 죽는 사람이 3만명, 목이 말라 죽는 5세 이하 어린이가 5천명에 달할 정도다. 폭력 역시 그 폐해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꿈과 이상이 사라진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다. 자본주의는 실체 없는 절대적 우상을 만들어 냈는데 그것은 곧 돈이다. 미국에는 ‘핫 슛 비즈니스 게임(Hot Shot Business Game)’이 있는데 미국 인구의 0.1 퍼센트 정도가 신청을 해 사장 예비 연습을 한다. 꿈을 기르는 공부가 아닌 돈을 버는 공부를 하고 있다. 돈뿐만이 아니라 출세, 안정, 행복 같은 것들도 우상화 된다. 한 개인의 행복을 우상으로 여기는 ‘탈’이 난 세상이란 것이다.
자연과 우주 다스리는 의학 발돋움
강연회의 막바지에 이르러 백기완 씨는 회의에 참석한 서울시한의사회 이사진들에게 “한의사들이 뚝샘이 되어 달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뚝샘이란 ‘언 땅을 차고 솟구쳐 가뭄으로 메마른 땅을 적시고 물꼬를 내서 새 물이 갈 길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의학과 양의학을 비교하면서 “양의학에서는 탈이 난 것을 고친다고 한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이를 두고 다스린다고 한다”라 말했다. 또 “서양에서는 병균을 잡으려고만 하지만 한의학은 병균을 죽이기보다 다스리려고 한다”며 한의학의 우수성을 높게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의학이 사람의 몸과 마음, 더 나아가 자연과 우주를 다스리는 의학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부탁하며 강연회를 마쳤다.
강연회가 끝난 후 서울시한의사회 박상흠 수석부회장은 “사람을 다스리는 학문, 몸과 마음이 통일되도록 하는 한의학. 이러한 한의술을 하는 한의사들에게 이번 강연은 무엇보다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