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제제연구부 유 영 법 선임연구원
의료소비자에 수용될 수 있는 한약 산업화 전략 필요
제도적·경제적·사회적 가치 등 총체적 효율성 고려
한국한의학연구원 개원 13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성황리에 마쳤다. 산업체, 학교, 연구기관 등 한의학 연구자와 임상가, 관련자들이 다수 참석해 마지막까지 열띤 질의응답과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다.
이번 심포지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약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와 한약이나 천연물을 활용한 연구개발 경험이 있는 국내외 석학들의 초청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심포지엄의 주제가 제약산업, 연구개발, 기초·기반 연구자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한약신약 개발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청된 석학들이 가지고 있는 한약의 산업화에 대한 전술은 다양했으나 전략은 하나라고 인식된다. 그 전략은 의료소비자에게 수용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소비자 즉 환자들은 문화적 특성과 사회적 현상, 경제적 위치 등에 따라 제품(의약품)에 대한 인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 특성에 맞게 전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조연자로 나선 독일 뮌헨대학 약학대학의 와그너 교수는 간보호 작용으로 유명한 Silybum marianum(엉겅퀴의 일종)으로부터 sylimarin이라는 활성성분을 최초로 분리한 천연물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와그너 교수는 한약과 같은 복합물질이 단일화합물이나 합성화합물에 비하여 시너지효과나 다중약리효과(multitarget effects)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검증하기 위하여 phytogenomics(식물유전체학), proteogenomics(단백유전체학), metabolomics(대사체학) 등과 같은 omics(microarray/bio chip)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존의 단일천연물질 또는 화학합성약물의 선형적이고 비가역적 활성기전의 이해방식을 좀 더 확장시켜서 한약과 같은 다중화합물의 약리활성 인식을 위한 진보된 개념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미국 NIH/NCI 연구과제인 ‘천연발암억제물질(Natural inhibitor of Carcinogenesis)’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하와이 힐로대학의 페주토 교수는 전형적인 서양 약물 개발의 진행과정을 강조하고 천연물로부터 활성물질을 추적하고 분리하여 구조를 확인한 후에 이를 합성하여 약물로 개발하는 과정을 소개했다. 특히 대장암 억제 효과를 가진 Casimiroa edulis라는 식물의 씨로부터 분리한 zapotin이라는 후라보노이드(flavonoid) 성분의 합성과정을 소개하면서 합성약물의 확실한 화학적 특성과 정확한 활성메카니즘의 장점을 강조했다.
또 일본 쯔무라제약의 우에다 박사의 발표에서는 동양의 전통처방(기성한방약)의 과학화를 통하여 세계화한다는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살펴볼 수 있다. 쯔무라제약의 경우 새로운 처방(우리나라의 비방)이나 단미제(우리나라의 천연물신약)를 연구개발하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기성처방서에 나온 처방들을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에 근거하여 과학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기본 신조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한 예로서 소시호탕의 약리활성기전과 이화학적 성분 중심의 품질 관리 그리고 잘 구성된 임상시험과 임상결과를 근거로 처방되고 있는 현실을 소개했다.
중국의 천사력제약 구오 박사는 전통약물의 과학화에 대한 약점 혹은 맹점을 국가적 제도로 방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약과 같은 복합물질의 경우 100% 이해될 수 있는 완벽한 과학적 근거를 도출하기에는 여러 가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과학적 기준을 설정하되 가능한 부분만 수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약이 갖는 특성을 고려하여 한의학의 특성에 맞는 임상연구를 강조하였다. 우수한약재배기준(GAP)·우수한약추출기준(GEP)·우수한약 제조기준(GMP)에 따라 생산되는 천사력 제품에 대해서도 소개하였다.
또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이은방 교수는 국내 최초의 천연물신약인 Stillen의 개발과정을 천연물 화학적 접근으로 설명하여 주었으며, 서울대학교의 김선영 교수는 PG102 등의 연구개발을 소개하면서 in vitro 실험이나 in vivo 실험이 상호 보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약리활성기전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특히 bioassay(활성검증)를 통한 한약의 품질 관리에 대하여 의의를 크게 부여키도 했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의 김성훈 교수는 복합한약제제인 가미계격탕의 항암 약리활성기전연구와 그 시너지 효과에 대하여 소개하였으며, 한국한의학연구원의 김진숙 박사는 복합한약재 KIOM-79의 항당뇨 약리기전과 품질 관리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였다.
이번 심포지엄은 석학들의 수십년간 천연물 연구 노하우와 한방분야의 최고제약회사인 일본 쯔무라제약, 중국 천사력제약의 산업화 방향 등을 체계적으로 알 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다. 특히 와그너 교수의 복합한약이나 천연물에 대한 인식이 한의학적 특성을 잘 반영하면서 과학적 근거를 같이 제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로 생각되었다. 페주토 교수의 강연은 기존의 서양의학적 약물 개발방법의 전형으로 많은 국내외 연구자와 제약회사들이 수행하고 있으며 한약 연구의 한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쯔무라제약의 경우 잘 갖추어진 약리활성검증, 품질 관리 방법론과 체계적인 임상시험에 따른 근거중심의학으로서의 한약을 확립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기존의 의서(기성처방서)에 수록된 약물을 과학화 하였다는데 그 의의가 크며 이는 잘 정돈된 의료제도 속에서 가능하였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경우 과학적 근거가 완전하지 않아도 국가적 제도가 뒷받침됨으로써 한약의 제약 산업화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한국에서의 한약에 대한 연구개발은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연구방향을 모두 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단일생약재로부터 약리활성을 가진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고 합성하거나 지표물질로 하여 제약화하는 방법, 약리활성을 가진 새로운 조성물(비방 등)을 통하여 그 활성기전을 밝히고, 지표물질로 품질관리를 하여 제약화 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기존 한방의서의 처방을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하여 제약화 하는 방법이다.
이런 다양한 접근방법은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연구개발 과정에서 제도적·경제적·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여 무엇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서양약물의 경우 미국 FDA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 있지만, 한약 연구의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방식으로 연구개발해야 하는지는 아직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승부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과학적 정보를 얼마나 많이 제시할 수 있느냐, 그 과학적 정보들이 재현성이 확보되느냐에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