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강환웅 기자] 최근 한기춘 MC맥한의원장(이하 한)·서정철 우리경희한의원장(이하 서)·최순화 보광한의원장(이하 최)은 동의보감에 다양한 판본이 있음을 밝히고자 20여 년간 전국의 동의보감을 찾아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진으로 보는 동의보감 판본 연구’ 시리즈 3부작을 출간했다. 본란에서는 나이도, 사는 지역도, 출신학교도 모두 다르지만, 고서를 통해 연을 맺게 됐고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는 저자들로부터 동의보감 판본학 연구에 대해 들어본다.[편집자주]
Q. 판본학이란 무엇인가?
·최: 판본학은 고서를 연구하면서 알게 된 분야다. 지적 소산을 문자의 수단으로 표현해 담은 물리적 형체를 책의 형태라고 할 때, 판본학이란 그 형태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고, 그것들이 시대에 따라 어떠한 특징과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그 중 어떤 것이 초기의 것으로 본문에 오·탈자가 없는 좋은 자료인가를 감정하는 일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다루는 분야다(한민족대백과사전 참조).
Q. 3명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한: 제가 블로그에 올린 고서 사진을 보고 최순화 원장이 처음 연락했고, 그 뒤로 친분을 쌓으며 계속 고서 수집과 연구를 하던 중 유사한 연구자를 인터넷 고서 경매 사이트에서 알게 됐는데 바로 서정철 원장이었다. 우리는 학연이나 지연이 아닌 고서 애호가로서 동의보감을 구매할 때 서로 과도한 경쟁 대신 상황에 따라 어느 1명에게 양보하고, 그렇게 구매한 동의보감을 서로 돌려보기로 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셋이 친교를 넘어 같이 연구하게 됐고,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를 하여 의형제로 지내고 있다.
이렇게 서로 경쟁을 자제하고 협력해 동의보감을 수집하다 보니 한의대 도서관에서 소장하지 못한 동의보감 고서도 삼형제 중 한 명은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게 됐고, 이를 공유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Q. 동의보감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서: 동의보감은 1613년 초간된 이후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았고 여러 번 간행됐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판본이 혼재하고 있지만, 많은 한의사는 판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동의보감은 세계기록유산이자 보물로 지정돼 있는데도 여태까지 정확한 정본화 작업이 되어 있지 않았다. 기존의 동의보감 판본에 대한 연구 방향과 결과물인 책이나 논문에 오류가 너무 많은 점에 아쉬움을 느껴 직접 연구해 보기로 했고, 처음부터 하나하나 동의보감 판본에 관련된 오류들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Q. 임상한의사로서 느끼는 고서의 매력은?
·최: 작금의 한의서와는 달리, 고서 연구 중 특히 醫書나 醫人에 대한 연구는 마치 고고학과 같아서 새로운 물증을 발굴하게 되면 기존 학설을 버리고 다시 새롭게 정의해 가야 한다. 고서라는 실체와 당시 시대 상황을 통해 그 인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그 학술사상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게 됨으로써 한의학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인 것 같다.
Q. 판본 연구 시리즈를 출판하게 된 계기는?
·한: 판본 연구 과정에서 얻은 동의보감 판본별 사진을 우리들만 소장하고 있는 것이 아깝기도 하고, 지금까지 연구한 자료들이 향후 연구에 반석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구에서 얻은 사진자료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출판을 결심하고, 책 제목을 ‘사진으로 보는 동의보감 판본 연구’로 정하게 됐다. 가능한 많은 사진을 싣고자 했으며,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독자라 하더라도 이 책을 보면 동의보감 판본의 체계를 잡을 수 있도록 했다.
Q. 동의보감 판본 연구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서: 공동연구자 3명 모두 임상가로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그 가운데 시간을 쪼개 연구한다는 점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고, 더욱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날 기회가 잘 없었던 점이 힘들었다. 낮에는 진료 중 틈틈이 텔레그램 메신저 프로그램을 이용한 의견 교환을, 저녁에는 전화로 통화하면서 수많은 토론과 교정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실제 연구에 있어서는 동의보감 고서 중 충분한 자료가 없는 판본이 있어 어려웠고, 고서 자료가 국내 유일본이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 자료를 직접 가서 확인하기 위해 휴진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또한 동의보감이 워낙 巨帙이다 보니 25책 가운데 여러 판본이 혼재된 경우가 수없이 많아, 연구를 하면 할수록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Q. 연구를 하면서 보람됐던 점은?
·한: 동의보감 판본에 대한 연구는 국가연구비로도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마저 포기하면 안되겠다 싶어 서로를 다독이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고쳐먹고 연구에 매진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 동의보감 판본에 많은 곡해가 있었던 것을 실물을 바탕으로 고증해 바로 잡고, 동의보감 고서들의 간행시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또한 첫 단추를 끼운 연구자가 잘못 기록하면 그 권위에 눌려, 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후학자가 연구에 인용하다 보니 잘못이 침소봉대되어 후대 연구자가 잘못 알게 된 점을 이제부터라도 바로 잡는 실마리를 마련했다는 점이 보람이며, 향후 연구의 초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Q. 동의보감 판본 관련 논문도 나왔는데.
·서: 이번에 나온 4권의 책은 ‘동서의학’ 2023년 9월호에 실린 논문인 ‘동의보감의 판본 종류와 간행시기 연구’를 보충한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기존 연구자가 진행한 동의보감 정본화 작업 가운데 甲戌嶺營開刊에 대한 오류를 수정했을 뿐만 아니라 甲戌嶺營○刊과 甲戌嶺營改刊 판본이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특히 甲戌嶺營改刊 판본은 간기 외에도 여러 권에서 補板이 이뤄졌다는 것을 밝혔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의보감 판본의 계통화를 바탕으로 현존하는 판본의 종류를 밝히고, 동의보감에 날인된 藏書印主의 생몰연대를 근거로 동의보감의 간행시기에 관해 연구한 결과를 보고했다.
Q. 지금까지 동의보감 판본 연구 중 古本의 결과를 알려준다면.
·한: 동의보감 중 초간본과 내의원본 사이에 위치하는데 刊記가 없는 판본을 저자들은 古本이라 명명했다. 선행연구에 의하면 동의보감 일부 권에 한정해 이러한 고본의 존재를 밝혔는데, 이는 필자가 수집하고 분석한 고본의 종류에 비하면 극소수에 해당한다.
즉 당시 연구자들이 확보할 수 있는 것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이었을 뿐, 전체 고본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저자들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동의보감 판본들 가운데 접근 가능한 한도 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각도로 비교했다. 이와 같은 광범위하고 계통화한 자료 조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동의보감 판본 중 고본은 개별 권마다 최소 6회에서 8회 간행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