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재한 원장이 경희대 의사학교실을 방문했다. 정재한 원장은 한방내과학(순환신경내과, 제2내과) 전문의이며 한의학박사다. 그는 경희대 한의대 94학번으로 입학한 대구광역시 출신 한의사다.
그런데 이날 정재한 원장은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醫書 자료를 기증하겠다고 했다. 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대구광역시한의사회 회장을 역임했던 鄭鉉坤 先生(1911〜1976)이라는 것이다.
차로 실어온 세 통의 박스 속에 가득 담겨 있는 의서들을 보니 정현곤 선생이 한의사로서 어떤 학문관을 가지고 살았는지 느껴진다. 고전 의서뿐 아니라 일본의 근현대 침구학 관련 서적이 절반을 차지했다.
鄭鉉坤 先生은 대구시한의사회 회장으로 봉사했던 인물이다. 1956년 경상북도한의사회 회장이 그동안 겸해왔던 대구시한의사회 회장을 분리해서 새로 선출하게 됨에 따라 초대로 대구시한의사회 회장에 선출됐다.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으로 뜻한 바가 있어 1942년에 일본 大阪西澤高等鍼灸學院에 입학한 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朝鮮民報社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1955년에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대구에 영험한의원을 개설해 진료를 시작하였다. 정현곤 선생의 동생분인 정섭곤 선생도 한의사이며, 정섭곤 선생의 아들도 이중면허를 가진 한의사라고 한다.
鄭鉉坤 선생은 1957년 『東方醫藥』 제3권 제4호에서 ‘漢醫學의 現代化와 實力向上에 힘쓴 硏究家’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으로서 일본 大阪 西澤고등학교 출신으로서 조선민보사에 8년간 근무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일찍이 일제시대에 한약업사를 하다가 1955년 한의사시험에 합격해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당시에 영험한의원 원장으로서, 경상북도한의사회장으로서 경상북도 한의사 사회에서 유명 인물이었다.
그는 한의학의 현대화를 위해 연구와 실력 향상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학계의 조직을 공고히 하여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손자 정재한 원장의 말에 따르면, 정현곤 선생이 한의사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첫째와 둘째 아들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잃게 되어 한의학 공부를 해야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서이다. 두 명의 아들을 저 세상에 보낸 후, 첫째와 둘째 아들(실제로는 셋째와 넷째인 셈)인 정기준과 정명호가 경희대 한의대 10기로 입학해서 한의사가 된 것도 이러한 가문의 내력과 관련이 깊다.
정재한 원장은 넷째 아들(실제로는 여섯째) 정문기 선생의 둘째 아들이라고 한다. 정재한 원장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의 진로를 한의사 이외의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회상한다. 어린 시절부터 한의사 집안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東方醫藥』 제3권 제4호에 나오는 ‘漢醫學의 現代化와 實力向上에 힘쓴 硏究家’라는 인터뷰를 통해 정현곤 선생은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히고 있다.
“첫째, 醫友 相互親睦하야 一致團結로 協力하며 温故知新을 基本精神으로 하여 한의학의 現代化와 學界組織發展에 專心專力을 傾注하여야 한다. 둘째, 나의 天職使命을 完遂하기 爲하여 나 自身이 患者의 立場에 있는 心境으로서 創意에 努力하며 親功과 精誠을 다하여 治療에 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