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생들의 일본 연수기
‘의인은 환자와 같은 시선으로 말한다.’ ‘If you use politely the damaged tea cup, you can preserve it for long.’
지난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우리 둘은 하네다 공항의 한국행 비행기 좌석에 앉아 사카시타 병원장님께서 하신 말씀과 게이오 의과대학병원 와타나베 켄지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인 위의 두 문장을 조용히 읊조리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사실 우리가 일본으로 ‘특성화 실습’을 가는 준비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일본으로 ‘특성화 실습’의 기회를 빌어 연수를 가보고자 정한 이유는 일본은 한의사 제도가 따로 있지는 않지만, 상한론을 기초로 한 일본 특유의 한방(漢方)의학이 발달되어 있으며 의사가 한약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만큼 한·양방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체계가 잘 발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일본 가기 전 준비과정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이 지면을 꽉 채울 수 있다. 일본에서도 한의학으로 저명한 두 분을 만나게 된 건 우리에겐 엄청난 행운이었다. 재학 시절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일본의 한의학’에 대한 특별 강의를 해주신 최병학 원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본행 실습은 준비단계에서부터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4개의 신약 개발에 성공하신 伊藤正春(이또 마사하루) 박사님을 최 원장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일본 현지에서의 연수뿐만 아니라 일본 최고의 의약박물관을 직접 안내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데 이토 마사하루 박사님께도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다.
우리의 일본에서의 특성화 실습은 4주간 이루어 졌는데 2주는 사카시타(坂下) 병원에서, 2주는 게이오 의과대학병원 한의과(한방과)에서 진행되었다.
사카시타(坂下) 지역은 나고야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일본에서 대표적인 국민건강보험의료시설 중 ‘지역 포괄 의료의 선진지’인 坂下病院답게 사카시타 지역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도록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힘쓰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병원장님께서는 사카시타(坂下) 병원은 ‘CURE’ 보다 ‘CARE’ 에 집중하며, 원내에서의 치료뿐 아니라 지역포괄의료사업을 진행하고 계셨는데 그 지역 포괄 의료사업의 일환으로 가정간호, 재활 복지 및 운동교실 운영, 건강 증진 인형극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역 포괄 의료사업을 통해서 한의학의 미병 예방관점을 실생활에 폭넓게 적용하고 있음을 느껴볼 수 있었다. 또한 병원장님께서 중요하다고 여기시는 환자의 눈높이에서 진료하고 치료하라는 뜻이 담긴 문장인 ‘의인은 환자와 같은 시선으로 말한다’를 마음 속에 새기고 다음 연수 장소인 도쿄로 이동하였다.
남은 2주간의 도쿄 소재의 게이오 대학병원 한의과에서의 실습은 앞선 2주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세계 각국의 의학도들이 게이오 대학병원에 모여서 한의과를 비롯한 다양한 과에 소속이 되어 공부하고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다.
게이오 대학병원은 일본 내 최고의 명문 사립대학으로 특히 의과대학과 병원이 매우 발달되어 있으며 몇 되지 않는 한방과가 분과되어 있는 일본의 종합병원이었기에 해당기관 내에서의 일본 한방의 임상현장을 직접 보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순간들이었다.
일본의 한방 전문의들은 보통의 경우 일반 의학과를 졸업한 후에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이후 세부전공으로서 한방과를 선택하여 한의학을 공부하거나, 혹은 한의학 관련 학회 등의 커리큘럼을 통해 한의학 공부를 따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한·양방이라는 구분에 치우치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제도 하에서 진료를 보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특히 게이오 대학병원 와타나베 켄지 교수님께서는 복부 근육의 긴장도를 진찰하고 특수한 부위에 위치한 반응점을 통해서 몸의 이상이나 질병의 원인을 유추하는 ‘후쿠진’ 이라는 일본 특유의 전통 복부 진찰법에 정통하셨기에 이를 직접 관찰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큰 행운이었다.
와타나베 켄지 교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환자를 대하는 자세와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강조하셨다. 질병을 금이 간 그릇처럼 소중히 다룬다면 깨뜨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환자를 소중히 대하라고 당부하셨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우리는 ‘If you use politely the damaged tea cup, you can preserve it for long’라는 앞으로 의사로서의 삶과 사명에 큰 귀감이 될 만한 고귀한 문장을 품에 안고 소중한 한달간의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이미 많은 한의사들이 일본에서 공부하고 다양한 교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연수를 진행했던 사카시타 병원과 게이오 대학병원의 병원장님 및 교수님들도 한국의 다양한 의사와 한의사 선생님들과 친분을 가지고 교류를 하시고 있었다. 하지만 한의대 학생 신분으로 학생들간의 교류는 아직까지 매우 미진한 상태인 부분이 아쉬웠다.
의과대학의 경우 의학과 및 의전원 소속의 학생들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연수를 신청하여 경험을 쌓고 있었으며 더러는 약대 학생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졸업하기 전 학생 신분으로서 다른 나라에서의 의료 형태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후의 ‘관’을 형성하는데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많은 이들이 학생일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이들이 말하는 ‘세계 속의 한의학’을 이루는 데 힘을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일본에서의 경험이 많은 이들과 공유되고 더욱 발전되기를 바라며 연수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