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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5일 (목)

포스트모던 시대에 한의학에 상처를 내는 시대착오적 태도

포스트모던 시대에 한의학에 상처를 내는 시대착오적 태도

2157-23













한의학은 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야 한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가 아니라 ‘기술’의 시대다. 과학이 근대까지 유용했던 실재론이라면 기술은 탈근대 이후 현대의 경험론에 속한다.

과학을 바탕으로 기술이 발전했다는 편견은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를 묶어서 사용하는 한국의 언어사용의 착각에 있다.





21세기 인공지능시대에 이천년의 뿌리를 이어온 한의학이 처한 현실에 대한 이해는 한의학의 미래 방향을 가늠하는 시발점이다. 한의학 스스로 안고 있는 내부적 문제는 더 많은 한의사들의 노력으로 변화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의학의 대척점에 있는 서양의학 특히, 그 중에 한국 양의학계의 일부에서 보여주는 적대적 태도에 대해 우리들이 얼마나 올바른 관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듯이 시대도 선택할 수는 없다. 다만 동시대의 시대관을 공유해야 하는 것은 삶의 필요조건이기는 하다. 시대정신을 도외시하고 어떤 특정한 분야가 억압을 받는다면 이는 운명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직업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직업이나 학문이 부당하게 운명처럼 피해를 받는다면 이는 극복해야할 부조리이다.



최근 일부 병원들의 대기실에 ‘한약복용 금지’라고 붙여있다는 소문이 있음에도 누구도 법적인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의사들의 한의학에 대한 폄하와 공격은 한의사 직업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인권침해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될 지경이다. 이런 문제를 직업간의 갈등수준으로 보는 것은 너무 경솔한 판단이며, 더 깊게는 철학적 관점에서 따져보아야 한다. 역사성과 지역 정통성을 가진 한의학에 대한 폄하는 이미 폐기처분되었어야 할 서구 중심의 사고이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된 유라시아 전통의학 포럼에 참석하여 <전통의학의 생체정보의학-홍채유전진단학과 체질과학의 이해>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놀란 것은 러시아 의과대학의 로고에 인삼의 꽃과 잎이 중앙에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침과 뜸을 사용하고 한의학을 당연한 인류공통의 의료기술로 인정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오면, 마치 인종갈등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1960년대의 미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영국의 피터왓슨은 <생각의 역사>에서 15세기까지만 해도 동양이나 이슬람문명이 과학문명에서 서양을 능가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동양의 학문과 과학이 국가의 관 주도에 의해 이루어진데 반해, 유럽에서는 대학 중심으로 발달한 차이로 인해 서구문명이 역전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또한 그는 2017년 저서 <컨버전스>에서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나아가 심리학, 경제학, 철학 등의 학문이 함께 생성되고 융합하는 컨버전스(convergence)를 통해 통합하지 않으면, 현대과학은 그 돌파구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동무 이제마이다. 1894년 이제마의 사상의학의 창제는 중국의학을 뿌리로 해왔던 조선의학의 기술적 독립이라고 해석가능하다. 그 이유는 체질 과학적 생명관에 심리 사회 철학을 통합한 융합의학의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굳이 기술적 독립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양의학이 ‘과학’이라는 칼날로 한의학을 상처낼 때, 우리는 기술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의학이 단순한 동물실험에서가 아니라 환자를 직접 치료한 경험의 누적에 의해 완성되어가는 기술의학이며, 세포 단위가 아니라 오장육부의 장부 시스템적 생명관과 자율신경의 조절을 주요목적으로 하는 경락이론과 침구치료의 치료과학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인맞춤의학, 정밀의학, 유전체의학으로 번져나가는 서양의학의 통합적 태도를 보면 그들이 비과학이라고 비난하던 통일적 유기능적 생명관의 한의학이 가진 과학관을 우리 스스로 재발견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979년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출간한 리오타르는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철학자이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담론에 대한 불신’이라고 정의했다. 거대 담론이란 인류 역사나 지식 전체를 한꺼번에 아우르거나 하나의 구성체계로 설명하려는 이야기이다. 플라톤의 실재론철학의 중심인 이데아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단일한 진리나 믿음을 거부하는 것이 포스트모던의 철학 정신이다. 근대까지 목숨을 유지해온 실재론이 사라진 것이다. 리오타르는 과학적 지식이 축적될수록 사회가 진보한다는 관점도 거대담론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현대는 실재론이 사망하고 경험론이 지배하는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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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한 두려움을 한의학은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현대는 ‘과학’의 시대가 아니라 ‘기술’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이 근대까지 유용했던 실재론이라면 기술은 탈근대 이후 현대의 경험론에 속한다고 현대철학은 설명한다. 과학을 바탕으로 기술이 발전했다는 편견은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를 묶어서 사용하는 한국의 언어사용의 착각에도 반영되어 있다. 21세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과학정신에 의한 기업이 아니라 기술 가치를 극대화 하는 최고의 기업이다.

다른 측면에서 현대철학의 중심 사조인 포스트모더니즘을 축약하면 ‘의미의 상실’이다. 19세기 말 유럽은 실재론과 결별하고 지성의 유의미한 역할과도 결별했다. 근대까지의 인류역사는 가치가 의미에서 연역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을 지배하는 보편개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에, 실재론을 주장한다면 이는 마치 진리를 이미 알고 있는 자와 모르는 자간의 위계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위계는 권위와 특권과 권력이 늘 선호하는 수단이다. 이로 인한 교만과 위선의 세계관은 타자에게 상처를 준다. 위계와 차별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습관은 사실 무지함에서 발생한다.



1970년대 들어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일반대중의 이해를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계승되어 사회문화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쳤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텍스트를 해체한다는 것은 거대담론 메타담론, 신화 등이 권위적으로 누리려는 위계성과 선입견에 대한 부정이며, 의미를 앞장세우는 권위에 대한 거부이다. 결국, 과학이 누리던 무소불위 권력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며 기술이 과학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과학적 사실들이 본래의 진리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학이란 단지 과학자들의 동의에 입각한 것이기에 과학이 진리라는 공식은 파괴된다.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열등의식은 사라져야 함을 길게 설명하게 되었다. 반면에 경험론의 기술시대가 21세기를 AI시대로 이끈 시대정신인 것이다. 또한 한의학이 처한 희망적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한의학의 오래된 역사를 무시하는 것은 그 내면에 과학이라는 거대담론으로 양의학이 가장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려는 태도이다. 이러한 편견을 주입하려는 태도를 철학자 리오타르는 식민주의적 작업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21세기 한의학은 15세기 까지 세계과학을 주도하던 동양의 과학기술을 계승하여, 19세기 말 조선의 사상의학이 전체성의학으로 발전시킨 융합적 기술이다.



최근 사회현실은 건강제품을 팔기 위해 기업이 일반인에게 몇 만원에 유전자검사를 해주고, 미국은 가정에서 고객이 100달러 미만으로도 수십 가지 건강질병에 관련된 검사결과를 받아보는 시대가 되었다. 21세기 융합의학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한의학이 기술시대의 결과물인 진단검사기기를 비롯한 의료기술도구의 사용을 방해받는 것은 시대착오적 편견과 갈등을 넘어, 한의사 입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의료소비자의 권리 침해적 요소가 있음을 우리 스스로 직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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