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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4일 (수)

“Dear Boss”

“Dear Boss”

2162-17-1









Laila가 서울에 왔다. 필자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3년부터 5년간 근무할 때 비서였다.



그녀는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에서 업무 능력이 가장 탁월하고 또 따뜻한 성품을 지닌 직원이다.



부임하던 당일 고질적으로 앓고 있던 편두통을 一鍼으로 고쳐주었는데, 그 뒤로 사무처 직원 30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 침 환자가 되었다.

필자는 WHO에서 그녀의 헌신적인 보좌에 힘입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녀는 5년간 같이 근무하는 동안 두 번의 승진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곁을 떠나지 않고 성실하게 보좌해준 부하이자 친구였다.

그런 Laila가 왔다. 며칠 전 메신저에 삽겹살과 김치가 먹고 싶다 해서 강남의 맛집을 찜해 놓았다.



같이 근무하는 동안 그녀가 몇 차례 울먹였던 기억이 난다.

우리들이 혼신을 다해 성사시킨 사업을 WHO 본부의 당시 전통의학 책임자인 쟝샤오레이가 훼방 놓고 트집을 잡을 때였다.

본부가 아닌 지역사무처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들이 계속 나오니 본부에 있으면서 속이 불편했었던 거다. 갖은 방해를 하였다.



필자는 그녀와 이메일로 여러 차례 攻防을 벌였었다. 그 메일은 모두 보관하고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WHO에 근무하는 수천명의 직원 가운데 전통의학 전문가는 손꼽을 정도도 안 된다. 서로 힘을 합쳐도 부족한 판국에 계속 동료의 발목을 잡고 뒷덜미를 낚아챈다.

물론 배후에는 세계 전통의학을 독점 장악하려는 중국 정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그녀의 질투와 시기는 지독했었다.

그녀는 필자의 전임자였던 일본의 쯔다니 기이치로 교수와 불구대천 원수사이다.



2162-17-1



원래 제네바 본부의 쟝샤오레이 자리에 쯔다니 교수가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일본의 나까지마 박사가 WHO 사무총장으로 가면서 중국에 대한 배려로 그 자리를 쟝샤오레이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둘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쯔다니 교수는 만날 때마다 그녀를 “lack of dignity”라고 했었다.



필자가 마닐라 근무를 시작한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 故 李鍾郁 WHO 사무총장이 마닐라 사무처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저녁 이 총장이 한국 출신 직원들을 마닐라 호텔의 McArthur Suite로 초청해서 저녁식사와 와인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잠깐 쟝샤오레이가 도마에 올랐었다. 이 총장이 취임하고 나서 쟝샤오레이를 공개 석상에서 혼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무총장 선거 유세 당시 공약 가운데 하나가 일부 특정 분야들을 본부에서 지역 사무처로 보낸다는 것(decentralization)이었다.



예컨대 말라리아는 아프리카에서 많이 발생하니 본부의 말라리아 부서를 아프리카지역으로 보내고 전통의학은 서태평양지역이 활발하니까 Manila로 보낸다는 공약이었다.



이 총장이 당선되자 쟝샤오레이가 제네바 주재 중국대사관으로 달려가 중국 대사에게 그것을 막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 총장이 사리분별을 못하고 외교문제로 비화시켰다고 야단친 것이다.

호들갑에 公私 구별이 안 되는 인물이다 보니 필자가 추진했던 전통의학 표준화가 눈에 가시였고 그래서 집요한 방해를 했었다.



2006년 이 총장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나서 홍콩 출신 마가렛트 찬이 사무총장이 되자 쟝샤오레이는 제 세상 만난 듯이 설쳐댔다.

비록 WHO에서는 지역 사무처가 본부와는 독립적으로 활동한다고 하더라도 지역 사무처 간부들이 본부쪽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니 천방지축으로 나대면서 방해하는 쟝샤오레이의 만행에 Laila가 몇 차례 분루를 흘렸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필자에게 괜찮냐고 묻기도 했었다.



WHO와 같은 국제기구가 겉으로 보면 그럴 듯하고 그래서 선망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간혹 상당히 伏魔殿과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총장이 갑자기 돌아가신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이십여 년 WHO에 근무하면서 그 내부의 비리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적폐를 개혁하려다가 직원들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혀 힘들어 했었다.



게다가 일 년의 절반 이상을 출장 다니는 격무에다 제네바 집에 돌아와도 혼자여서 누구와 털어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이 총장의 부인 카부라키 레이코 여사는 원래 修女가 되려 했던 일본인인데, 처녀 시절 한국에 봉사 왔다가 이 총장을 만나 그의 열렬한 구애로 결혼하였다고 한다.

사망 당시에도 레이코 여사는 남미 페루에서 봉사를 하던 중이었다.



이 총장이 돌아가시기 2년 전에 영국의 찰스 황태자에게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의 기조연설을 부탁했었는데, 막상 그 연설 바로 이틀 전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2006년 찰스 황태자의 WHA 기조연설이 세계 전통의학계로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는 연설에서 전 세계 인민들이 침과 한약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면서 말라리아 치료제로 개똥쑥에서 추출한 artemisinin을 예로 들었다.



그 10년 후 그 약을 개발했던 중국의 투유유(屠呦呦) 박사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78년 구소련의 Alma Ata에서 WHO와 UNICEF가 공동 주최했던 一次保健醫療 관련 회의에서 채택한 알마타선언이 나오고서 약 30년 또 40년 후의 일이다.

그 선언은 일차보건의료에 전통의학 시술자들이 참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최근 대한한의사협회에서 한의학의 일차보건의료로서의 장점과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그 궤를 같이 한다.

그 선언이 있고 나서 WHO 같은 국제기구에 전통의학 부서가 생기고 전통의학 전문가들이 일하기 시작했다.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에서는 일본 도쿄대의 쯔다니 교수가 80년대 처음으로 시작했고, 그 이후에 중국의 첸켄 박사, 그리고 필자가 세 번째 책임자로 근무했었다.



2003년 10월 침구경혈위치 국제표준을 만들기 위한 첫 회의가 마닐라에서 열렸는데, 韓 · 中 · 日의 그 세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자리에 모였었다.

당시 WHO 남태평양 대표로 나가 있던 첸켄 박사가 회의를 주관했던 필자에게 쯔다니 교수는 이미 WHO를 떠났는데, 왜 그를 회의에 불렀느냐고 불평했었다.

두 사람 역시 사이가 매우 안 좋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韓 · 中 · 日 세 나라 사이는 그러하다. 대부분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고 어쩌다 中 · 日관계가 좋아질 때는 한국 패싱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한국이 중재하고 균형을 잡아준다. WHO에서 용어와 경혈위치의 표준화를 할 당시 그런 삼각관계가 절묘하게 작용했었다.



경험한 바로 韓 · 中 · 日은 각기 특성이 있다. 회의를 하다보면 중국 참가자들은 오로지 대표 입만 바라보고, 일본은 회의 참가 전에 적어도 두세 차례 예행연습을 한 뒤 회의장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줄 그어가면서 철저하게 수행한다.



한국은 사전 연습도 없고 통일된 의견 없이 참석하여 각자의 소신대로 발표한다.



대개 중국이 처음에는 큰 소리 치지만 뒷심이 약하고, 일본은 처음에는 주저주저하다가 결국에는 마무리를 해내며, 한국은 특별한 색깔이 없다.



WHO에서는 예산이 2년 단위로 돌아가는데, 당시 전통의학 분야 예산이 5만 불 정도였다. 2년에 회의 한 번 하고나면 끝이다.



그래서 쯔다니 교수는 재임 6년 동안 3번, 첸켄 박사는 13년에 5번의 회의를 개최했었다.



WHO에서 주로 하는 일은 해당 분야의 방향과 현안을 설정 도출하여 관련 회의를 기획하고 각국의 전문가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개최하고 그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 책자로 내거나 가이드라인 등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의를 몇 번 했는가는 그 담당자의 역량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려면 그만큼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 필자는 5년 근무하는 동안 모두 32번의 회의를 주관했었다.



그 때 마닐라 사무처 내에서는 미쳤다고 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한국 보건복지부에서 일 년에 20~30만 불씩 지원해준 덕분이다.

당시 국회에서 예산 확보를 위해 한의사협회와 한국한의학연구원 이형주 원장이 도와주었었다.



십여 년 전 WHO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Laila가 왔다. “有朋而自遠方來”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아직도 생일 때나 가끔씩 보내오는 그녀 메일의 시작은 언제나 “Dear B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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