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의사고시제도 의학수준을 향상시키다”
高麗時代 醫師考試論
고려시대 의사 과거제도는 광종 9년(958년)에 후주 사람 雙冀의 건의로 시작됐다.
고려의 과거제도는 시부송과 시무책으로 진사를 뽑고 제술과 『尙書』, 『周易』 등을 주로 시험 보는 明經의 二業이 근간이다.
여기에 雜業으로 분류된 醫, 卜, 地理, 律, 算, 書, 何論 등이 포함되게 된 것이다. 광종에서부터 성종까지 의과에 합격한 인원은 7인이었다.
醫科는 文科, 武科에 비해 응시할 수 있는 신분층이 넓었으며, 등과한 자에게는 7품까지의 벼슬을 허용하고, 지조가 굳고 명망이 있는 자는 4품까지 오를 수 있게 했다.
醫業은 다른 학문에 비해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에 등과하는 자가 많지 않았으며, 醫科에 응시하는 자는 주로 의업에 종사하는 자의 자제나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고 또 신분상 관리로 진출할 수 있었던 향리의 자제가 많았으며, 양반의 자제나 서인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맹웅재 외, 『韓醫學通史』, 대성의학사, 2006).
인종 14년(1136년) 이후로 醫科는 醫業과 呪噤業으로 나눠 선발됐다.
醫業은 응시과목이 『素問經』, 『甲乙經』, 『本草經』, 『明堂經』, 『脈經』, 『鍼經』, 『難經』, 『灸經』 등이었고, 呪噤業은 『脈經』, 『劉涓子方』, 『癰疽論』, 『明堂經』, 『鍼經』, 『七卷本草經』 등이었다.
시험방법은 貼經(책 중의 1행을 보여주고 가린 다음 전후를 통독시키는 것), 讀經(책을 읽힘), 破文(文義를 해석하는 것), 義理(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 등의 방법이었고, 이것을 ‘机’라는 점수를 매겨서 합격과 불합격을 갈랐다.

시험 기간은 醫業의 경우 2일이었으며, 첫날 『素問經』 8條 와 『甲乙經』 2條 중 6條 이상 맞추어야 하며, 둘째날에는 『本草經』 7條와 『明堂經』 2條 중 6條 이상을 맞추어야 했다. 『脈經』 10卷은 讀經을 하되, 6机 중 4机(破文 및 義理)를 맞추어야 한다.
『鍼經』 9권과 『難經』 1권의 10권 중 6机를 뽑아 4机(破文 및 義理)를 맞추어야 했으며, 『灸經』은 읽어서 2机의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손홍렬, 『韓國中世의 醫療制度硏究』, 修書院, 1987).
呪噤業은 그 명칭상 呪噤 즉 巫術로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시과목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고, 鍼灸, 外科 등을 담당하는 전문적 의료인을 선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呪噤業에 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脈經』, 『劉涓子方』, 『癰疽論』, 『明堂經』, 『鍼經』, 『七卷本草經』 등은 診斷學(『脈經』), 外科學(『劉涓子方』, 『癰疽論』), 鍼灸學(『明堂經』, 『鍼經』), 약물학(『七卷本草經』)으로 구분할 수 있다.
呪噤業도 2일 동안 나누어 시험을 보는데, 첫날은 『脈經』 10條에서 6條 이상 맞추어야 하고, 둘째날 『劉涓子方』 10條 가운데 6條 이상, 『癰疽論』 七卷과 『明堂經』 三卷을 파문과 의리를 통해 6机 이상을 취득해야 하며, 『鍼經』를 讀經 10机, 破文 및 義理 10机 가운데 6机를 취득해야 하며, 『七卷本草經』은 讀經 2机, 破文 및 義理는 2机 가운데 2机를 취득해야 합격하는 것으로 했다.
醫業의 응시자격으로 品官, 吏屬(품관이 아닌 자로 중앙관직자), 鄕吏, 庶人이 가능했다.
仁宗 3년(1125년)에는 兩大業은 5品, 醫, 卜, 地, 律, 算은 7品까지 허용했고, 지조와 덕망이 있는 자는 4品까지 모든 科目에 응시 가능으로 개방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고시제도는 의학에 입문하는 인재의 인력풀을 넓혀주어 고려의학의 수준을 상승시켜 주었고, 사회적으로 의학의 붐을 일으켜 주었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