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본란에서는 중국 상하이 중의약 박물관 견학과 남경 중의약 대학의 제1 부속병원인 강소성중의원을 참관한 주성완 강남구한의사회 기획이사의 소회를 게재한다.
중·서의 서로 적대감 없이 우호적…현대 의료기기도 장벽 없이 사용
강소성중의원장 “우리도 현대의학 하는 의사” 국가의 전폭적 지지 덕분

강남구한의사회 이사가 되고 난 이후 처음으로 해외 행사에 참여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중국 여행 자체가 처음이었다.
강남구한의사회에서는 집행부의 능력 계발을 위해 2년에 한 번 정도씩 해외 탐방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한다.
5월5일 새벽 인천공항에서 만나 상하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짧은 비행 후 상하이에 도착하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다행히 극심한 미세먼지는 만날 수 없었다.
첫 방문은 상하이 중의약 박물관이었다.
처음 보자마자 상하이 중의약 박물관의 외부 규모에 놀랐다.
대학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도립이나 시립 박물관 수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중의학의 역사를 소개하는 관, 중의학 본초를 소개하는 관 등으로 각 층을 차별화 하여, 체계적이고 세련되게 정리 및 안내가 되고 있었다.
비록 전공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가족들끼리 와서 보기에 부담이 없고 즐거운 시간이 될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남짓 박물관을 다 둘러보자, 그들의 중의학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또 굉장히 부러웠다.
이 글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하겠지만 이번에 중국 여행을 하면서 크게 느꼈던 것은, 중국은 자신들의 전통 혹은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전통과 정체성이 버림받는 한국의 여러 가지 현실이 대비되어 여행 내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튿날 오전에 상하이 홍챠오 역으로 가서 고속전철을 타고 난징으로 향했다.
상하이 역은 외관상 규모가 인천공항보다도 컸다.
인상이 깊었던 것은 마치 공항처럼 여권과 신분증을 가지고 예약을 하고, 타기 전에 검색대에 소지품들을 검사하고 인적 사항을 확인해야 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에 대한 통제가 아주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마 전혀 제어가 안 되어서 그랬으리라.
아무튼 국내 고속열차보다 빠른 속도의 것을 타고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지나 난징에 도착하였다.
중국 여행 이튿날에는 난징의 중산릉과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중산(中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쑨원(孫文)의 호다.
중국인들은 쑨원의 정치사상을 최고로 생각하며, 그를 위대한 인물로 존경한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묘와 주변의 기념 공원을 거대한 규모로 만들어두었다.
쑨원이 죽을 당시 중국의 인구가 3억9200여 명이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능까지 오르는 계단을 392개로 만들어두었다는데, 개인 묘를 가기까지 그렇게 많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선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강남구한의사회 박성우 회장님과 개인적인 담소를 나누면서 392개의 계단을 오르자 눈 아래로 드넓은 풍경이 펼쳐졌다.
끝없이 펼쳐진 안개 낀 숲은 중국의 기개가 느껴지는 장관이었다.
그러한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새삼 중국은 본인들의 긍정적인 역사를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에 뭉클해졌다.
중산릉을 내려와서 난징대학살 기념관(이 관의 정확한 명칭은 侵華日軍南京大屠殺遇難同胞紀念館이다)으로 이동하였다.
난징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난징에서 30만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한 그야말로 잔인한 학살의 현장이었다.
일본인 장교 두 명이서 경쟁하듯이 일반인 머리 빨리 자르기 내기를 했을 정도이니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잔혹했을지 짐작이 간다.
단지 당시 국민당의 수도가 난징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전쟁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들이 죽어나가고, 그 트라우마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곳.
그러한 참극을 잊지 않고 새기기 위해 그들은 거대한 기념관을 만들어두었다.
난징인들의 자부심이 중산릉이라면, 난징인들의 내재화된 분노가 난징대학살 기념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 역시 굉장히 체계적으로 안내가 되고 있었는데, 대학살의 생존자들이 살아남아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최근에 찍은 가족사진들이 전시가 된 마지막 관에 이르러서는 여행에 참여했던 모두가 울컥해하는 것이 보였다.
전시관을 나오면서 적은 문구가 아직도 머리에 맴돈다.
‘용서는 하되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를 기억해 미래의 스승으로 삼아야한다.(历史可以宽恕 但不可以忘却. 前事不忘 后是之師)’
마지막 3일째는 아침부터 남경 중의약대학의 제1 부속병원인 강소성 중의원에 참관을 가게 되었다.
사실상 이번 여행의 핵심인 셈이었다.
중국 의료의 상황에 대해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일단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그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강소성 중의원은 일 평균 외래 환자 수가 무려 3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중국 내에서 연구 성과나 진료 실적에 대한 중의 병원 평가 2위를 한 곳이란다.
그 수없이 많은 환자가 아주 질서 정연한 시스템 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병원측에서는 강남구한의사회 임원단 일동을 아주 크게 환대를 해주셨다.
꽤 장시간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긴 시간 동안에도 모두가 미소를 잃지 않고 상세히 설명을 해주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한국의 한의학 현실과 다른 핵심적인 부분은 중의와 서의가 상당히 서로에게 호의적이라는 것, 중의들도 현대 진단 의료기기를 큰 장벽 없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중성약을 비롯하여 중약 역시 과학화를 이루어가고 있어서 현대적인 의료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등이었다.
해당 병원의 병원장님은 ‘우리는 서의가 아니지만 현대 의학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아주 자부심이 넘치게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분께서 어떻게 중의학이 그렇게 발전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자 병원측에서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다’라고 답변을 했다.
전폭적인 지지, 그렇다.
2015년 개똥쑥으로 만든 말라리아 치료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탄 투유유 여사도 사실상 전통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중국의 문화가 이루어낸 쾌거였던 것이다.
중의 의료진과의 대담은 대한민국의 한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많은 청사진을 얻는 시간이었다.
이후 병원측의 가이드를 받으며 병원 이모저모를 둘러보았다.
한국의 한방병원처럼 처방을 직접 달여서 주는 형태가 아니라 원내 약국에서 한약재를 담아서 주는 방식으로 처방이 되고 있었다.
80~90년대 한국의 한방병원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진료실, 입원실, 약국, 대기실을 막론하고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이야 말로 중의학의 전성기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소성 중의원 참관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중국에서의 일정은 끝이 났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을 돌아보았다.
여행을 오기 전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은 중국이 그렇게 쉽게 생각할 국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본인들 스스로 중국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나라, 본인들의 자랑스러운 혹은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나라,
본인들의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나라, 그러한 거대한 문화적 흐름의 끝에 중의학이 있었다.
향후 중의학이 대성을 한다면 전통을 존중하는 국가와 국민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향후 중국이 대성을 한다면 전통과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생각의 끝에 한국의 현 상황과 한의학의 현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자부심이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전통을 존중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값진 역사를 사랑하는가?
쉽게 답하기가 힘들다면,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