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歲時風俗)에 담겨진 전통의학의 지혜
안상우 박사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의방유취』 식치편 湯餠 혹은 索餠 식치방 등장
『東國歲時記』에선 소발벽온(燒髮辟瘟) 습속 소개
건강관리 상당수 기원 전통의학서 유래된 풍속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명절을 맞이하는 세태도 크게 바뀌었다. 하지만 설 명절 연휴 고속도로 정체는 날로 심해지는 걸 보니 예전 같진 않다 해도 여전히 한국인들의 잠재의식 속에 귀향본능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차제에 고전에 기재된 세시풍속 가운데 세밑과 설, 그리고 정월대보름으로 이어지는 새해맞이 연례행사 가운데 의약과 유관한 몇 가지를 찾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설날하면 먼저 떠오르는 음식, 떡국은 한자로 병탕(餠湯)이라고 쓰는데, 멥쌀가루를 시루에 쪄서, 안반이라 불리는 널따란 통나무 판위에 부어놓고 나무 메로 찧어서, 이것을 손으로 뭉친 다음, 길고 둥글게 늘여 새끼줄처럼 가래떡으로 만드는 것이 1단계이다. 예전에는 이 과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되었기에 설을 앞두고 수일 전부터 미리 떡을 장만해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쌀만 불려 가면 방앗간에서 기계의 힘을 빌려 비교적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떡가래가 며칠 지나 끈끈한 정도가 적당할 때를 기다려 칼로 납작하고 둥글게 썰어 육수에 넣어 끓이는데, 이 떡국을 먹어야만 나이를 제대로 1살 더 먹은 것으로 대접했다. 설 차례는 한 해 동안 가족들과 함께 힘든 농사일을 겪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을 같이 하는 공동체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의방유취』 식치편에는 양고기와 가래떡을 함께 넣어 끓여먹는 탕병(湯餠) 혹은 색병(索餠)이라고 하는 식치방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보양음식에서도 떡국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새해 풍습으로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소발벽온(燒髮辟瘟)하는 습속이 있다. 단발령 이전의 조선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길렀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남녀 모두 머리를 빗질하여 넘겼는데, 한 해 동안 빗질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밀랍을 바른 종이에 싸서 한데 모아두었다가 설날 해질 무렵을 기다렸다가 문밖에서 태우는데, 이렇게 해야 온갖 돌림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이것이 『천금요방(千金要方)』에 “정월 인일(寅日)에 백발을 태우면 길하다”고 기재되어 있으니 여기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필자도 어린 시절 할머니가 비녀를 꽂기 전에 꼼꼼히 빗질을 하고 빗 새에 감긴 머리카락을 한 올도 버리지 않고 빗접에 고이 간직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랐다. 모아둔 머리카락은 간혹 바늘집이나 침통을 채우는 충전재로도 쓰였지만 그러한 용도보다는 방안에서 머리털이 날려 다니다가 음식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꺼려했기 때문에 위생을 고려한 예방적 조처로 이해된다.
건강을 기원하고 질병을 방비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은 주로 상원일(上元日)이라고 하는 정월대보름날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 보름에는 찹쌀밥에 대추와 밤, 잣 등의 실과와 기름과 꿀을 넣어 약밥을 짓는다. 이를 약반(藥飯)이라고 적는데,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의하면 멀리 신라 소지왕 때부터 유래한다고 적혀 있다. 임금의 목숨을 구한 까마귀에 보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고사를 갖고 있지만 각종 나물과 새로 나온 푸성귀의 싹을 거두어 함께 먹는 식습으로 보아 아마도 겨우내 푸른 채소나 과일을 먹을 수 없었던 한반도인들의 봄맞이 건강회복을 고려한 필요조처라고 여겨진다.
또 보름에는 박고지나 버섯과 함께 취나물, 고사리, 가지, 시래기 등 말린 나물, 즉 묵은 나물을 무쳐 먹는데, 이것 또한 아껴두었던 나물반찬으로 다가올 봄철 기력회복을 꾀하려는 조치이다. 이와 함께 배추 잎이나 김으로 쌈을 싸먹으면 더위를 물리친다는 속설 역시 같은 의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것을 복쌈(福裹)이라고 불렀다.
둘째, 아직도 널리 행해지고 있는 부럼을 깨물게 하는 풍습도 역시 의학적인 배려이다. 이른 새벽에 날밤이나 호도, 은행, 잣, 혹은 순무를 깨물어 먹게 하고 한 해 동안 무사태평하고 부스럼을 앓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이것을 부럼(작절(嚼癤) 혹은 고치(固齒)라고 씀)이라고 하는데, 영양결핍으로 피부병이나 창종에 시달리는 것을 막아주고 단단한 열매의 껍질을 깨물게 함으로써 이를 튼튼하게 하려는 목적이 우선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연말연시에 길거리에서 젊은 남녀가 어울려 엿을 깨물고 엿치기를 즐기는 모습도 세밑 풍경 가운데 하나였는데, 의주 지방에서는 이것을 치교(齒較)라고 불렀다 한다. 이러한 풍습 역시 이를 튼튼하게 하고 영양을 주려는 목적으로 보이는데, 설에 주는 엿을 교아당(膠牙餳)이라고 부른다.
셋째로 정월대보름까지는 세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때 어김없이 어르신이 내리는 청주 한 잔이 뒤따르는데, 이름하여 이명주(耳明酒)혹은 치농주(治聾酒) 곧, 우리말로 귀밝이술이라고 불리는 술이다. 아마도 추위를 무릅 쓰고 멀리서 찾아와 세배를 드리는 젊은이들에게 몸도 덥혀주고 술자리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겠지만 원래는 신기를 보강해주는 약재를 넣어 담가 만든 약술을 썼을 것이다.
한편 섣달 그믐날을 제석(除夕)이라고 하는데, 어린애와 젊은이들이 친척을 찾아뵙고 묵은 세배(舊歲拜)를 올린다. 또 그믐밤에는 먹거리를 장만해 놓고 철야하며, 밤새 잠을 재우지 않곤 하는데, 이를 두고 수세(守歲) 즉, 가는 해를 지킨다고 표현한다. 아마도 한해 못다 이룬 일을 아쉬워하며 멀리서 찾아온 친지나 오랜만에 만난 벗들과 함께 묵혀두었던 회포를 풀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연말연초에 마시는 술을 도소주(屠蘇酒)라고 하는데, 지식층들은 별도로 도소회라고 부르는 새해맞이 모임을 갖고 새해 인사와 함께 주연을 베풀었다. 이 도소주는 화타 혹은 손사막(孫思邈)이 창안한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백출과 방풍, 산초, 육계 등의 약재가 들어가 겨우내 울체되었던 기운도 풀어주고 과식으로 체증이 올까봐 이를 대비한 신의 한 수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우리 옛 풍속들은 대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경도잡지(京都雜誌)』 같은 풍속지에 기록되어 전해진다. 우리 의서에서는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와 같은 책에서 여기저기 찾아볼 수 있는데,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면 상당수 그 기원이 전통의학에서 유래된 풍속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