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物二陳湯의 加減法을 따져보자”
조선 효종시기 御醫들의 八物二陳湯論
『承政院日記』 효종 8년 9월16일(1657년)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하였다.
“藥房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臣等이 엎드려 보건데 內下의 症錄에서 즉 內殿의 熱候가 밤낮의 사이로 進退가 항상되지 못하니, 臣等이 憂慮를 이길 수 없습니다. 즉 尹善道·柳後聖·趙徵奎·愼應悌 및 모든 御醫들과 반복해서 相議하니 모두 다음과 같이 보았습니다. 『醫學入門』 浮脹條에서 모두 二陳湯을 爲主로 하고, 氣虛에는 四君子湯을 합방하고, 血虛에는 四物湯을 합방하는데, 낮에는 가볍고 밤에 심해지고 아침에는 편하고 저녁 무렵 급해지면 血虛하기 때문입니다. 內殿의 症候는 氣血이 모두 虛한데다가 낮에는 가볍고 밤에 위중해지는 증후가 나타나니 어제 議論한 八物二陳湯이 熟地黃이 痰을 泥滯시킬까 두려워서 제거하고 인삼과 백출은 각각 2分씩 줄였습니다. 지금 夜間의 熱候가 조금 줄어든 것 같은데 낮에도 또한 煩熱의 증후가 있으니 人蔘과 白朮을 本方에 의거하고 줄이지 않는 것이 합당할 것인데 이미 人蔘과 白朮을 加한다면 本方의 熟地黃도 빼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어제밤에 침이 마르고 목구멍이 마르는 증후가 있었으니 血分의 藥을 더욱 제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熟地黃을 薑汁炒한 것을 七分 다시 집어넣고 麥門冬七分도 또한 더 집어 넣는데 麥門冬은 制肝의 功을 겸해서 가지고 있으니 사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어넣은 약중에 蘇梗은 비록 창만을 치료하는 약재이지만 긴요하게 관련된 약은 아닌 것같고 약의 종류도 많은 것 같아서 빼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고 합니다. 八物二陳湯三貼을 이에 의거해서 加減하여 약제로 들이는 뜻을 감히 우러러 아룁니다. 이에 올린대로 하라고 하였다.”(필자의 번역)
위의 기록은 효종의 부인 인현왕후 장씨의 질환을 논의하는 장면이다. 이 논의에 참여한 인물로 尹善道, 柳後聖, 趙徵奎, 愼應悌 등이다.
尹善道(1587∼1671)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서 효종 초기에 예조참의를 했다가 서인의 모함을 받아 관직을 접었다가 위의 기록이 나오는 1657년에 71세의 나이로 새로 관직에 오른 상태였다.
柳後聖(인조부터 현종년간)은 醫官 出身으로 인조, 효종, 현종 년간에 궁중에서 御醫로 활동한 인물이다. 1646년(인조 24년) 典醫로 근무한 기록이 나오며 1658년 고양군수에 취임한 후에도 수시로 임금이 질병이 있을 때마다 불려와서 침을 놓기도 하였다. 1662년(현종 3)에는 大王大妃의 병을 완쾌시켜 정1품 輔國崇祿大夫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趙徵奎는 의관 출신으로 1658년 사복시주부에 특제되는 인물이다. 愼應悌도 醫官이었다.

위의 기록에 八物二陳湯이라는 처방의 기록이 나온다. 八物二陳湯은 『醫學入門』을 출전으로 하는 처방으로서 『醫學入門』 外集卷之四에 나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勞發은 痰火이니 日週하기를 기다림. 평소에 痰火가 있는데 조금 勞動을 하고 나서 바로 寒熱을 발하면 완전히 傷寒과 비슷해진다. 가벼운 경우에는 조섭을 하여 하루가 지나면 저절로 낫게 된다. 위중한 경우에는 목덜미, 겨드랑이, 어깨, 사타구니의 사이에 마침내 덩어리가 부어오르고 뭉치는데 혹 消下되는데 다시 노동을 하면 발하게 된다. 八物二陳湯에 降火和解시키는 藥을 가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八物二陳湯의 처방에 대해서는 『醫學入門』 ‘八物湯’조문에서 “氣血이 모두 虛한 것을 치료한다. 남자, 부인의 百證과 小兒疹痘에 通用하니, 즉 四君子湯과 四物湯을 합한 것이다. 물에 끓여서 따뜻하게 복용한다. 가감하는 방법은 앞과 같다. 痰이 있으면 二陳湯을 합하니 八物二陳湯이라고 한다”고 게재돼 있다.
『承政院日記』에서 이 무렵 八物二陳湯을 가지고 논의를 시작한 것은 이 기록 1주일전인 9월 9일부터이다. 9월 8일 처방한 淸胃瀉火湯을 중지하고 “調氣和血시키면 熱氣가 저절로 제거된다(調氣和血, 則熱氣自當去)”는 멘트와 함께 八物二陳湯 처방을 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