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교수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맥락을 읽는다는 것이다. 어떤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그 일이 일어나게 된 맥락이 있게 마련이다. 그 맥락을 당시의 사람들의 행위, 의지, 생각,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내는 일이 역사 공부다. 그 일의 앞뒤의 일들도 중요하다. 역사(歷史)라는 말 자체가 시간의 맥락[歷] 속에서 일들을 위치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맥락 속에서 일, 사건들을 파악하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3.1 운동이라는 100년 전의 일도 맥락 속에서 읽어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사실, 3.1 운동 자체는 수긍이 안되는 면이 적지 않다. 일본 제국주의의 서슬이 퍼렇던 무단통치 시절 왜 그 많은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을까? 무기를 든 것도 아니었고, 만세운동이라는 평화 시위가 독립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무엇이 사람들을 나서게 하였는가? 어떻게 당시까지 역사의 전면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 낮은 계층의 사람들까지 거리로 나서게 되었는가? 총을 앞세운 진압에 목숨을 잃으면서도, 투옥되면서도 만세를 불렀던 것인가? 맥락을 통해 이러한 질문들을 궁구하는 것이, 3.1 운동의 역사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의생규칙, 제도 이상의 의미 가진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의학이 경험한 일들도 맥락을 통해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한의학에 대한 중요한 역사 공부가 될 것이다. 한의학 역사 공부는 그 역사와 이어져 있는 지금의 한의학에 대해 고찰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한의학을 위해 의생규칙[1913년 공포, 1914년 시행]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생규칙 시행, 그 자체만 보기보다는 맥락 속에서 그 사건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의생규칙은 단순한 제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의료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정치, 문화 영역의 변화를 추동하려던 힘의 양상을 상징한다.
의생규칙은 당시 한반도를 점거하고 있던 유사국가 체계에 의해 시행이 된다. 흔히 총독부로 대표되는 식민체계다. 당시 한반도에는 국가가 없었다. 하지만, 국가체계는 있었다. 근대 유럽에서 기원한 국민국가(nation-state)라는 국가체계가 그것이다. 제국주의 시기 이후 우리는 이 유럽산 국가 형태를 당연시 하고 있지만, 국가는 하나의 체계가 아니다. 조선도 국가고, 청나라도 국가다. 메이지 이전의 일본의 막부체계도 국가다. 하지만, 국민국가는 아니었다. 막부 체계와 국민국가 사이의 변화는 엄청난 변화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그 변화를 실험하고, 국민국가 체계를 한반도에 가져온다.
국민국가라는 국가 체계는 의료에 대한 국가의 관리와 통제가 특징적이다.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절 탄생한 국민국가는, 국민(혹은 인구)에 대한 관리를 통해 생산력을 끌어 올리는 것을 중요한 존립 근거로 탄생한 국가체계다. 이러한 맥락 때문에, 의료 분야는 전대미문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전면적 면허제도, 국가에 의한 의료인 관리, 또한 의학교육기관에 대한 관리가 그 변화의 내용들이다.
대한제국 ‘의사’ 정의는 한의학에 기반하고 있다
근대 유럽의 국민국가에도 몇 가지 스타일이 있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국민국가를 모델로 근대국가를 만들면서 한 스타일에 올인하지 않았다. 각 부문을 자신들의 사정에 맞게 가져온다. 의회와 정치 시스템은 영국의 것을 가져온다. 국민국가 의료체계는 독일의 체계를 수입한다. 독일의 국민국가 의료체계는 의료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중앙집권식 체계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위생경찰이 통제를 강조하는 독일식 국민국가 의료체계의 산물이다(위생경찰이라고 번역되지만 독일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의료경찰(medizinal polizei)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 만들어졌고, 가장 오랫동안 독일에서 존속했던 의료경찰은 하지만, 19세기 후반이 되면 사어화된다. 당시 유럽에서 발전하고 있던 민주주의와 병립할 수 없을 정도로 권위적인 체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어화된 의료경찰은 아시아의 일본 식민지에서 20세기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민국가 의료체계 중 가장 권위적이고 비민주적 체계였던 독일의 의료체계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그 강압적인 국가의 개입의 형태로 드러난다. 일본 총독부가 발표한 의생규칙과 대한제국이 발표한 의사규칙의, 의생과 의사의 정의를 비교해 보면 어떤 변화가 읽힌다.
의사(醫士)규칙에서 의사는 “의학을 관숙하여 천지운기와 맥후진찰과 내외경과 대소방과 약품온량과 침구보사를 통달하여 대증투제하는 자”를 말한다. 즉 대한제국의 의사 정의는 한의학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관숙”, “통달” 등의 말이 지시하는 것과 같이 환자를 잘 낫게 할 수 있는 진료의 경지를 강조하고 있다. 1913년 총독부 관보로 발표된 의생규칙에서 의생에 대한 정의는 이와는 차이가 크다. 여기서 “의생이라 함은 본령의 규정에 의하여 면허를 받고 의업을 하는 자”이다. 이 정의에는 면허를 주는 자의 권위에 방점이 있다. 즉 당시 한반도를 장악하고 있던, 총독부로 대표되는 유사국민국가를 의료의 강력한 주체로 등재시키고 있는 것이다.
“3.1 운동 100주년, 역사 속 한의학을 다시 생각”
면허는 의술을 실천할 수 있음과 없음을 정하는 배타적 선을 규정하는 제도다. 그러므로 그 면허를 주거나, 안줄 수 있는 주체는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면허부여권을 가진 국가가 가지는 특징 중 하나는 배타적 권위를 가지는 대신 의료의 질 관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의료의 질 관리는 국가의 면허부여 독점을 정당화해 왔다. 하지만, 의생규칙에서 의료의 질과 관련된 규정은 없다. 1913년에 같이 발표된 의사규칙에는 ‘의학교를 졸업한 자’와 같은 규정을 내세워 의료의 질을 담보하려 하지만 그러한 내용이 의생규칙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의지 없음은 일제 강점기 내내 지속된다. 의학교를 통한 의료의 질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다음 세대를 위한 한의학의 지식 전달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한의학의 존속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의생규칙은 인구관리를 위한 인력을 동원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의생 관련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총독부의 관보들을 살펴보면 한의학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고, 출생/사망신고, 위생관련 활동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또 하나의 식민지였던 대만에서는 기존의 주민자치체 장들에게 인구관리 임무를 맡겼기 때문에 의생제도를 존속할 이유가 없었다(대만에서는 1902년 단 1회 의생면허가 부여된다. 그 이후 사망 등으로 인해 의생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어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에는 40명 이하로 감소된다).
3.1 운동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고집하던 강요된 변화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었다. 1919년 3.1 운동은 의생규칙이 시행된 지 5년 뒤에 일어난다. 한의학에서는 자체 교육기관 설립, 한의학 서적 발간, 한의학 잡지 발행, 의서 저술을 통해 저항의 몸짓이 드러났다. 그 저항의 연속선 위에 지금의 한의학이 있다.
3.1 운동 100주년. 역사 속의 한의학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