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원 (우석대학교 한의학과 본과 4학년)
코로나19로 멈췄던 시간이 서서히 흐르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닫혀 있던 봉사활동의 문도 열리기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에는 나 역시 예과생으로서 여러 활동이 제한되었던 기억이 있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의료봉사 자체가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고, 기관에서 학생들을 받아주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엔데믹 이후 다시 의료봉사를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렘과 감사함이 함께했다.
올해 초, KOMIV(Korean Medicine International Volunteers) 단체의 일원으로 필리핀 카비테 주 테르나테 지역에서 진행된 한의학 의료봉사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이 지역은 의료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곳으로, 기본적인 감염 관리조차 어려운 환경이었다. 봉사 기간 동안 나는 현지 간호사들이 예진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침, 부항, 약침 등의 시술을 맡았다. 뇌졸중 후유증, 당뇨발, 혈전증 등 다양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준비한 치료 수단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당뇨발이 심한 환자를 치료할 때, 현장에서 가진 장비나 약재의 범위 안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치료 후 통증이 줄어들었다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던 환자의 반응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번 봉사를 준비하며, 우리는 봉사단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사전 스터디를 진행했다. 기본적인 근육학 복습부터 시작해서, 질환별 진단 및 치료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학습했고, 팀원들끼리 서로 실습을 해보기도 했다. 특히 추나요법과 약침 실습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대한표준원외탕전의 협조로 약침에 대한 실습 기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던 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준비 덕분에 현장에서 보다 자신감 있게 진료에 임할 수 있었다.
현지 주민들 중 일부는 드라마나 미디어를 통해 침 치료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침을 맞아보는 것은 대부분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의료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보이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치료 후 “생각보다 아프지 않고 시원하다”는 반응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진료 분위기가 더욱 편안해졌고, 한의학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봉사 이후에는 현지 주민들과 시청 관계자들로부터 “꼭 다시 와달라”는 요청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 초에는 KOMIV와 함께 전북 진안군 운주면 운주교회에서 진행된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본과 1·2학년 학생들이 예진을 맡았고, 나는 침 치료와 부항, 약침 등의 시술을 담당했다. 특히 봉사 전 학생들과 함께 모의 진단 및 치료 스터디를 진행했던 덕분에, 협착증 케이스 환자를 명확히 감별할 수 있었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진료 현장에서의 경험은 교과서 속 이론과는 또 다른 차원의 배움이었다. 직접 환자를 마주하고 치료한 뒤, “많이 좋아졌다”는 환자의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어떤 시험의 합격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한의대생으로서 봉사의 의미는, 단순히 환자를 돕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를 잘 치료하고 싶다는 마음은 스스로를 더 열심히 공부하게 만들고, 그렇게 쌓은 지식을 다시 봉사 현장에서 환자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동기가 된다. 봉사는 나와 환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봉사는 실력을 넘어서는 무모한 도전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나는 매 순간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려 노력하고 있다.
엔데믹 이후 다시 열린 봉사 현장은 나에게 단순한 활동 이상의 의미를 준다. 지역의 의료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에 한의대생으로서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내가 꾸준히 의료봉사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의대생과 한의사들이 지역과 세계를 향해 발을 넓히는 일이야말로, 한의학의 사회적 역할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