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키에 덩치가 큰 나는 오래 앉아서 공부를 할 때마다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온다. 어렸을 때 운동을 하다가 다친 뒤로 관절이 좋지 않았다. 부산대에 입학하기 전 허리 수술을 한 차례 받았지만 1학년 때 무릎 통증까지 찾아왔고, 급기야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 후 일주일간 입원을 하였고, 난 딱딱한 침대에서 링거를 맞으며 어두운 굴속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꼈다.
퀴퀴한 병원 냄새. 집이 아님을 확실히 알게 해주는 차가운 시트와 하얀색 바닥. 무릎에 이식된 연골판은 회복해가고 있었지만 정신은 하루하루 메말라만 갔다. 그렇게 방학은 끝이 났고 2학년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동네 한의원에 가서 침과 뜸 치료를 병행하며 아픈 부위를 재활하였는데 갈 때마다 나에게는 큰 의지가 되었다.
맞춤 정장 같은 한의학
한의학의 치료법은 부드러우며 개개인의 체력이나 생활환경을 고려해서 치료법에 변화를 준다. 비슷한 증상이면 모든 환자에게 거의 같은 치료법을 쓰는 서양의학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편한 슬리퍼를 신고 들어가 따뜻한 전기장판에 누워 핫팩을 대고 침을 맞으면 자는 것처럼 편했고 뜸에 향과 한약재 냄새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내 몸에 맞게 제작된 맞춤 정장처럼 그렇게 한의학은 나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처음 한의학에 관심을 가졌던 때는 중학교 3학년 때였지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아버지께서 암으로 투병하시던 스무 살 무렵이다. 아버지께서는 당시 간암 말기였는데 양방으로 치료를 받으시다가 호전이 안 돼 유명한 한의학 박사님께 한의치료를 같이 받으셨다. 결국 돌아가셨지만 한의에서도 암 치료를 한다는 것을 드라마가 아닌 현실로 마주하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인생에 과도기를 겪었고, 난 평소 관심이 있었던 명리학을 틈틈이 공부하였다. 생년월일과 시간만으로 내 성격과 과거, 현재, 미래를 맞추는 것이 놀랍고 매우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한자를 써가며 풀이를 한다는 게 뭔가 합리적으로 보였다.
한의전에 입학한 후 우연찮게 들어간 편집부에서 책을 만들었는데 그때 나는 명리학에 대한 기사를 썼다. ‘미신인가 이론인가 명리학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기본부터 명리학에 대한 내 생각을 기사 내용에 담았다.
처음 학교에 들어와 한의학에 대해 배우면서 한의학 개념이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나 자신이 혹시 이상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명리학을 접하면서 동양철학에 관한 책을 자주 읽었고, 그래서인지 나는 한의학에 좋은 점만 보였다.
한의학, 부드러운 치료가 장점
한의학을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는 서양 의사들도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의학은 사주나 관상과는 전혀 다른 실용적인 학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약이 효과가 강한 것이고 한약이 효과가 약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수술이나 응급사항을 제외한 모든 질병은 부드러운 치료법으로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한방 과목과 양방 과목을 모두 배우는 기초과정을 계속 거쳐나가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모두 서양의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걸 알았다. 또한 서양의학적인 진료 결과를 가지고 찾아온 환자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신속하게 서양의학적인 치료로 완치할 수 있는 환자에게 한의학적인 치료를 고집함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환자 진료에 질 향상을 위해서 기초적인 서양의학 지식은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서양의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접해서 포괄적으로 연구해야 될 필요가 있다는 걸 한의학을 공부하며 느꼈다. 처음에 한의학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나는 배움을 통해 합리적 의심과 비판을 경험하면서 기존에 익숙해있던 서양의학과의 차이점을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한의학에 장단점을 정확히 인지해야 올바르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겪은 통증을 접목해서 연구를 하고 싶다.
하고 싶은 연구는 전립선 질환과 디스크 질환이다. 허리 수술을 받았을 때 수술과 더불어 입원 후, 두 달간 교정기를 차고 생활했는데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디스크 환자들의 아픔을 되도록 빨리 해소할 수 있는 한의치료법을 연구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내게 있어 한의학이란 예전에 일상이었던 학문이 지금은 그 자체로 내가 되었다. 늘 한의학의 도움을 받았고 새로운 희망도 얻었다. 그 희망으로 지금은 한의학도의 길을 걸으며 온전히 나 자신을 한의학에 쏟아 부으려 노력하고 있다. 절망이 있는 곳,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게 하는 일. 한의학이 곧 나 자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