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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7일 (월)

“그냥, 내 방에서 눈감고 싶어요”

“그냥, 내 방에서 눈감고 싶어요”

한의약 웰빙 & 웰다잉 51
‘누군가의 헌신’ 덕분이 아니라 ‘준비된 체계’ 안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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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오래 편찮으시던 일흔셋의 어르신이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되뇌던 말이었다. 진료실 형광등 아래서도 웃음기를 잃지 않던 얼굴이었지만, 그 말을 뱉을 때만큼은 눈빛이 유독 단단해졌다. 평생을 산 낡은 아파트, 삐걱거리는 마루와 바라진 벽지,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골목, 아침마다 앉던 자리에서 보이는 화분 하나까지 — 그 모든 것 안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남편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그럼 저희가 뭘 준비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보호자에게, 나는 선뜻 하나의 답을 드리지 못했다. 집에서 편안히 지내실 수 있게 돕는다는 제도는 이런저런 이름으로 여러 개 있었지만, 정작 우리 가족이 그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무엇부터 신청해야 하는지를 친절하게 짚어주는 곳은 없었다. 


어떤 제도는 특정 요양 등급을 받아야만 이용할 수 있었고, 어떤 제도는 등급과 무관하게 거동이 얼마나 불편한지가 기준이 되었으며, 조만간 동네 병의원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된다는 제도도 있다고 들었다. 이름과 창구가 다르니 보호자는 며칠에 걸쳐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스스로 지도를 그려나가야 했다.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번은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보호자의 손에 빼곡히 적힌 메모를 본 적이 있다. 어느 기관에 전화해서 몇 번 안내를 받았는지,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던 사정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통증 조절은 이쪽에 문의하고, 몸을 씻기고 옮기는 일손은 저쪽에 신청하고, 남은 행정 처리는 또 다른 곳에 알아봐야 한다는 답을 들을 때마다, 보호자의 얼굴에는 피로가 조금씩 쌓여갔다.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느 날 그녀가 웃으며 던진 그 한마디가, 웃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숨에 가깝게 들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어르신이 원한 것이 그저 ‘집’이라는 공간 그 자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통증이 갑자기 심해졌을 때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밤사이 상태가 나빠지면 응급실로 실려 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다 지쳐갈 아내가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지 — 어르신이 진짜 바랐던 것은 익숙한 곳에서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실제로 어느 새벽, 갑자기 숨이 가빠진 어르신 곁에서 아내가 어디로도 연락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119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그제야 ‘집에서 지내고 싶다’는 문장 뒤에 얼마나 많은 조건들이 숨어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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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뭐라도 알아볼 걸 그랬어요”


문득 몇 해 전 만났던 다른 어르신이 떠올랐다. 그분 역시 똑같이 집에서 눈을 감고 싶어 하셨지만, 정작 그 뜻을 전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러운 상태 악화로 응급실에 실려 갔고, 결국 낯선 중환자실 침상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그날 보호자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뭐라도 알아볼 걸 그랬어요”라며 흘리던 눈물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같은 소망을 품었던 두 분의 마지막이 이토록 다르게 갈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이 문제를 계속 붙들고 있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병동에서, 그리고 이후 자택 진료 현장에서 크고 작은 임종을 지켜보며 배운 것이 있다면, 한 사람의 마지막은 결코 한 사람의 의료인이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통증을 조절하는 손길과, 몸을 씻기고 자세를 바꾸는 손길과, 남겨질 가족의 마음을 다독이는 손길이 제각기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향해 나란히 걸어가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작 그 손길들을 이어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은 누구의 몫인지 뚜렷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결국 가장 지쳐 있는 사람인 보호자가, 혹은 환자 자신이 여러 손길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 다리를 놓아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이 가족의 곁에서 전체 그림을 봐 주었더라면, 그 숱한 전화와 메모는 조금 줄어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어디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가?


고령 인구가 늘고, 언젠가는 혼자 살아갈 날을 그려야 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지금, ‘어디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 줄 촘촘한 그물이 아직 다 짜이지 않았을 뿐이다. 


여러 손길이 한 사람을 향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구조, 그리고 그 손길들을 조율해 줄 누군가가 분명히 존재하는 구조. 그 그물을 짜는 일은, 결국 환자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 데서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며칠 뒤, 어르신은 본인이 원하던 대로 집에서 가족들 곁에서 눈을 감으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다행이라는 안도와, 그 과정이 조금 더 수월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함께 남는 밤이었다. 


삐뚤빼뚤한 메모로 가득했던 그 종이 한 장이, 이제는 누군가의 노력이 아니라 당연한 안내로 대체되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다음번 보호자는 전화기를 붙잡고 헤매는 대신 남편의, 아버지의, 아내의 마지막 곁을 조금 더 오래 지킬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이런 바람이 ‘누군가의 헌신’ 덕분이 아니라 ‘준비된 체계’ 안에서 이뤄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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