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대한여한의사회(회장 박소연)가 성폭력 피해자 대상 한의의료 지원의 제도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사업 구조 전면 개편에 나선다. 기존 설문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 객관적 평가 지표를 도입하고, 바우처 기반 지원체계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대한여한의사회는 22일 사무국에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상임대표 김혜정)와 간담회를 갖고, 올해 사업 추진 방향과 제도 개선 과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대한여한의사회 박소연 회장·신현숙 부회장·이채은 총무이사·김윤나 학술이사를 비롯해 전성협 김혜정 상임대표·박선경 공동대표가 참석했다.
여한의사회는 동일한 치료법임에도 의료 직역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달라지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소연 회장은 대표적으로 EFT를 사례로 들어 “한의과에서 먼저 신의료기술로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에서는 의과 시행 시에만 비급여 지원이 이뤄지고, 한의과 시행은 제외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의 의료 선택권이 제한되고 한의 치료 행위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치료용 첩약 등 트라우마 치료 목적의 한의진료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제도적 편견”이라며 “한·양방 간 형평성 확보를 통해 실질적인 의료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측은 현행 지원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진료 바우처’ 방식 도입에 집중했다. 기존에는 지역별 인프라 편차 등으로 본인부담금 지원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던 만큼, 바우처 지급 방식으로 이를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현행 제도에서 지원이 어려운 ‘사건 발생 2년 경과 피해자’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여한의사회는 자체 예산을 활용해 해당 구간의 비급여 진료를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토대로 향후 국가 지원 확대를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에게 바우처를 제공한 뒤 치료 완료 후 일괄 정산하고, 상담소와 여한의사회가 공동으로 대상자 관리 및 진료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사업의 정책 반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효과 검증 체계도 강화된다. 기존 만족도 조사 중심에서 벗어나 △PHQ-9 △GAD-7 △PHQ-15 △PCL-5 등 정신건강 평가도구를 활용한 사전·사후 비교 분석을 도입해 치료 효과를 객관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보건복지부와 성평등가족부 등 관계부처에 제출해 제도 개선의 근거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박 회장은 “현재는 자율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임상적 효과와 수요가 확인된 만큼 국가 차원의 제도화 필요성을 적극 제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업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참여 한의원 대상 표준 진료 가이드라인도 마련된다. 진료 횟수 및 비용 상한선, 적용 가능한 비급여 항목(약침·EFT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고, 환자 및 의료진 대상 안내 자료를 별도로 제작해 치료 연속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회원 교육 프로그램인 ‘트라우마 한의 일차의료 전문가 과정’을 고도화할 방침이다. 한의원 매칭 이후 온라인 설명회를 운영하고, 기존 네트워크 한의원 대상 보수교육을 강화해 진료의 질을 지속적으로 관리·표준화함으로써 지역 간 인프라 격차 해소에 주력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올해는 단순 지원사업을 넘어 정책화 기반 구축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며 “EFT 등 신의료기술의 임상 적용 사례를 축적해 비급여 한의진료 국가 지원 추진을 본격화하고, 성폭력 피해자뿐 아니라 범죄 피해자 전반으로 한의진료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이날 간담회에선 성폭력 피해자, 장애인, 청소년 등 취약계층 여성 건강 문제와 관련해 ‘재생산권’ 관점의 건강보험 적용 필요성도 함께 제기됐다.
한편 여한의사회는 향후 성폭력 피해자 한의진료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정책 자료 축적과 제도 개선 논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