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47년 11월17일 수요일 오후 3시에 觀海館에서 경남한방의약회 창립기념좌담회가 열린다. 본 좌담회에 대한 내용은 1948년 2월1일 경남한방의약회에서 간행한 『한방의약』 창립기념집에 기록되어 있다.
이 기념집은 ‘경남한방의약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진 것을 기념해 유지자들이 사재를 털어서 원고를 모아 만든 80쪽에 달하는 잡지형식의 간행물이다. 해방이 되어 아직 정부도 구성되지 않은 시점에 이러한 간행물을 만들어낸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한의학의 부흥을 위해 노력해온 한의사들의 열망이 크게 작용된 것이었다.
이날 창립기념좌담회에 참석한 인물은 경남 보건후생국장 盧永民, 의무과장 盧在冕, 약무과장 尹友植, 의무계장 權道鉉, 약무계장 趙翊濟, 마약계장 金秉鎬, 釜山府 보건후생국장 설영식, 보건과장 배창현, 경남약제사회 회장 金根奎, 경남약품주식회사 사장 오학섭, 慶南醫生會 회장 鄭泰鎬, 경남한방의약회 회장 申世均, 총무 김태안, 재무 권의수, 상무 김한준 등이다. 좌담회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의약 관련 공무원과 한의사, 약제사, 약품회사 사장 등 각계각층의 무게있는 인물들이 모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좌담회는 회장이었던 신세균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사회자 신세균의 발언에 따르면 경남한방의약회는 1947년 11월17일에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창립되었다. 그에 따르면 창립의 취지는 “수천년의 장구한 역사와 무궁신묘한 효과를 가진 한방의학이 서양의학의 수입으로 퇴보의 일로를 밟아 오늘과 같이 피폐될 현상이므로 이를 부흥하여 과학적 체계를 수립하고 서양의학의 장점과 동양의학의 장점을 취하여 서로 어깨를 겨누고 국가사회의 보건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남 보건후생과장 노영민의 발언에 따르면 1946년에 삼천포를 중심으로 사천 등지에 있는 인사들이 會를 만들겠다고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해방 직후인 관계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에 부산을 중심으로 이러한 결실을 맺게 된데에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김근규는 서울에 가서 이 회와 비슷한 단체가 조직되는 것을 보아서 경남에서도 만들었으면 했었다는 것을 회고했다. 설영식은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정태호는 1946년 11월20일 첫 공식모임을 갖고 慶南醫生會를 탄생시키고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한의사다. 그는 해방 후 경남·부산 지역 醫生들을 모아 일제의 한의학 정책을 청산하고 한의학 부흥을 위해서는 한의사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여 경남의생회라는 한의사 단체를 발족시켰다. 정태호는 한의사제도를 입법화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부산출신 한의사 모임인 5인 동지회(李羽龍, 權義壽, 尹武相, 禹吉龍, 鄭源熹) 가운데 한의사 정원희의 부친으로 유명하다. 이 좌담회에서 한의사 정태호는 한의학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설파하고 있다. 고려시대 설경성이 원나라에 파견된 것과 일본에 파견된 모치에 대한 이야기, 일본 근대 동양의학의 활약 등을 나열 설명하면서 한의학의 높은 가치를 주장하였다.
노재면은 한의학의 뛰어난 점이 신체 전체에 대한 처방을 사용한다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권의수는 훗날 5인 동지회로 활동했던 한의사로서, 이 좌담회에서는 한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위한 교육기관과 연구소의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