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윤 대전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대전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날 학생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갑자기 이거 보니까 저희도 이런 거 하면 어떨지요” 언론 기사 링크가 바로 이어졌다. 한의학 임상 실습에 A.I.를 활용한다는 타 학교 교수님의 실습 교육에 관한 내용이었다.
곧 졸업을 앞두고 있으면서 국시 준비에 한창인 본과 4학년 학생이 이런 기사를 공유해 주었다는 것이 굉장히 고마웠다. 관심 가져주고 건의해줘서 고맙다는 나의 인사에 그 학생은 “아닙니다^^ 학교가 발전하길...”이라는 답을 주었다. 학교 교육 환경이 더 나아지고 다른 후배들은 본인이 받았던 교육보다 더 나은 한의학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선의가 느껴져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다.
2년 전 ChatGPT가 출시된 지 5일 만에 사용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되어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생성형 A.I.를 활발히 활용하고 있고 그에 따라 A.I.에 대한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A.I. 장점 살려 효율적인 교육 설계
교육 분야 역시 A.I.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연구 성과도 빠른 속도로 발표되고 있다. 일단 ChatGPT를 보자면 대화형 언어 모델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문제 해결, 학습 자료 분석 등 다양한 학습 활동을 지원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즉, 인공지능을 학습에 활용하는 이점은 학습자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과 학습의 효율성 증대, 심화학습 유도, 교육의 객관화와 표준화에 기여, 의사소통 역량 향상 등이 될 것이다.
특히 한의학교육에서는 이러한 장점을 십분 살려 보다 효율적인 교육을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임상 실습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진료수행평가(CPX)에서 학생의 모의 진료 상대로 환자 역할을 하는 표준화환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실제 진료 현장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이 배우들의 섭외와 교육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 표준화환자를 A.I.가 맡는다면 학생들은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문진을 통해 진찰,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는 학습을 반복적으로 시행할 수 있고 보다 완전히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학과나 교수 입장에서도 표준화환자 섭외와 교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매우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교육은 학생들이 환자를 대하는 의사소통을 간접 체험하게 함으로써 의사소통 역량을 점검하고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으로만 접했던 지식에서 벗어나 그 활용을 익히고 실제 임상을 경험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A.I.가 가진 잠재력과 한계를 동시에 이해
그러나 ChatGPT를 기반으로 하는 시뮬레이션 교육은 자칫 잘못하면 학생들에게 오개념을 심어주거나 오히려 임상 역량의 향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질환별 시나리오에 따라 제한된 질문과 답변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ChatGPT가 언제나 완벽하고 정확한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때때로 ChatGPT의 답변이 실제 환자의 응답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A.I.가 가진 잠재력과 한계를 동시에 이해한 상태에서 교수자나 전문가의 가이드 및 피드백이 동반되어야 더욱 적합한 교육 방식이 될 것이다.
기초 한의학 역시 ChatGPT를 활용한 교육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의대는 현재 수직 통합, 수평 통합 등의 통합 교과 개설을 요구받고 있으며, 임상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임상 실습 시수의 증가를 토대로 한 교육과정 개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기초 한의학 교과는 그 시수와 비중 면에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기초 한의학 학습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ChatGPT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 볼 만 하다.
하지만 임상 분야와는 다르게 기초 분야에서는 ChatGPT의 도입을 신중히 해야 한다. 광범위한 지식을 빠르게 검색, 제공하며 학습 효율을 높이는 측면은 좋지만, 지식의 적용 및 활용 차원이 아닌 기초 의학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습득하기 위한 단계에서는 ChatGPT의 사용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대언어모델의 편향성이나 적절한 응답이 아니더라도 문맥에 맞게 그럴듯한 응답을 하는 환각(hallucination) 등은 도리어 학습 효율을 저해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거대언어모델에 의존한다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능력이 개발되기 어렵다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A.I.를 교육에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 강구
다양한 분야의 저널을 관리하는 Elsevier 출판사는 A.I.의 부정확성이나 불완전성, 편향성 등을 근거로 하여 A.I.가 논문의 저자가 될 수 없다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A.I.를 교육에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함과 동시에 학습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각 교과의 특성과 학습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여 ChatGPT 등의 A.I. 도입의 규모와 방식에 대해 가이드를 만들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올바른 ChatGPT 활용법, 비판적 사고와 윤리 교육, 주제 탐구 심화 학습 등의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될 필요가 있으며, 교수들에게는 교수 학습 자료 제작법, 문항 출제 및 과제 평가, 학습 컨텐츠 발굴 및 교재 개발 등의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학생들을 힘들게 했던 번역이나 에세이 쓰기, 독후감, 리포트 작성 등의 과제는 이제 학생들이 너무 손쉽게 해결하는 시대가 되어 과제로는 적절하지 않게 되었다. 학생들은 교수보다 한발 더 앞서 A.I.를 활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통합교과의 교육 컨텐츠부터 임상실습에 이르기까지 한의학교육에서의 효과적인 A.I.의 도입과 활용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 기술이 가져다 준 편리함을 넘어 실제 교육의 질을 제고하는 멋진 도구로 A.I.가 기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