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향후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
총선이 끝났다. 각 지역의 벚꽃축제 절정기와 거의 정확하게 스케쥴이 겹쳐서일까? 2024년 총선의 선거운동(election campaign)은 유난히 짧고 굵게 끝나버린 느낌이다. 최종 성적표를 받아든 당사자들은 승리에 잠깐 도취되어 있거나 혹은 패배로 인한 좌절감으로 괴로우시겠지만 이 굳건한 희비의 쌍곡선 또한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교차되기 마련이므로 교만도, 절망도 그 농도를 빨리 희석시키는 분들에게만 향후 4년간의 심신 건강이 보장될 것이다.
주요 신문의 서너페이지에 실린 300명의 당선자들을 한분 한분 들여다본다. 나도 모르게 의사 출신 의원들의 숫자를 세어보고 있다. 총선 직전, 의대정원 2000명 증원에 따른 의정갈등 사태에 대한 반향 덕분일까? 22대 국회의원 중 의사 출신은 8명으로 20대 4명, 21대 3명에 비하더라도 역대급이다. 간호사 출신도 두 명이다(치과의사 1명, 약사 1명, 한의사 0명, 수의사 0명). 지지 정당을 떠나 사심을 듬뿍 담아 응원했던 몇 분이 아쉽게도 낙선하셨다. 대신, 수년간 얼굴을 봐 와서 많이 익숙해진 주요 정당의 당직자 몇 분들과 잠시 국회 파견을 나왔다가 진료실에 서너번 들르신 인연으로 인사는 하고 지냈었던 행정부 공무원 몇 분을 명단에서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이제는 국장님, 실장님, 부원장님이 아닌 ‘의원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한다. 아직은 호칭이 입에 찰싹 달라붙지 않지만 이내 익숙해질 것이다.
스포츠 손상으로 인한 급만성 통증환자 ‘급증’
이 바쁜 선거운동 기간에도 큰 이벤트가 없는 평온한 시기에도 한의사들을 찾는 주요한 환자층은 뭐니뭐니해도 스포츠 손상으로 인한 급만성 통증 환자들이다. 일주일에 2∼3가지 종목을 번갈아 연습을 하고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아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운동에 열심인 분들이 많다. 밖에서는 세상 편해보이는 정년 보장 땡보직 공무원일지 모르겠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충 없는 직급 없고 급여든 연금이든 공무원들의 기를 죽이는 여건은 차고 넘친다. 상대적 박탈감 혹은 지속적인 야근 때문인지 공무원들도 신체정신적 양방향으로 피곤한 직업이다. 그래서일까? 다양한 스포츠 동아리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엄청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출근 전, 퇴근 후 운동을 통해 진정한 스트레스의 치유 효과를 느끼신다고들 고백해 온다. 물론, 운동 부상도 잦다. 아픈 부위를 설명할 때도 근육명은 물론이고 정형외과 의사들에게서 들은 진단명을 술술 읊으며 이미 유투브나 블로그를 통해 본인의 통증에 대한 주요 병리에 재활방법까지 깔끔하게 공부를 마치고 진료실로 입장한다. 누가 공무원들 아니랄까봐 정리왕에 이론왕들이다.
그렇게 알잘딱깔쎈(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쎈스있게) 스타일의 환자들이 나에게까지 온 이유를 초진시 가장 집요하게 묻는다. 많이 아는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해내야 한의학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과정과 종료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비결은 꼼꼼한 초진에 있다. 물론, 운동을 너무 많이 하는 환자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주로 숨쉬기 운동만 한다거나 차가 있는데 굳이 왜 걸어야 하냐고 반문하시는 운동 무관심파에 속해있는 분들도 진료실을 자주 찾는다. 이분들은 대개 아침에 일어나서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다가 목을 삐끗 했다거나 드라이어로 머리 말리려고 목을 뒤로 젖혔는데 갑자기 등에서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며 오시는데, 이들은 아무리 바빠도 절대 뛰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시는 분들로, 운동 욕구가 없으셔서인지 목소리도 발걸음도 조용하다.
운동 손상 관련 한의학에 관한 자료를 찾으면 대한스포츠한의학회의 다양한 뉴스들이 많이 검색된다. 한의 관련 소식들 중에 가장 반가운 분야가 바로 이 학회의 활동이다. 존경하는 후배 안산명의(이는 내가 붙여놓은 별명이고 실제 그의 실력은 안산을 뛰어넘어 이미 글로벌이다) 박 원장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회이기도 하고 그는 실제로 아마추어 복싱선수이자 여자프로배구팀의 팀닥터이다. 운동선수급의 기량을 갖춘 운동 잘 하는 한의사의 스포츠 손상 질환에 대한 식견과 치료내용은 탁월하지 않기가 어렵다. 운동이 무엇인지를 알고 본인이 직접 아파봤고 스스로 재활을 통해 회복을 해 보았기 때문에 관련 질환의 A to Z를 갖춘 박 원장이 나는 늘 자랑스럽고 부럽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박 원장에 비하여 체형적으로든 체험적으로든 절대적으로 열세인 내가 가지고 있는 건 50세라는 나이 대비 아직 꺾이지 않고 있는 체력 뿐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운동 관련해서 환자들과 기본 이상의 대화는 나눠야 하기에 나 역시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종목에 도전하기’가 새해의 단골 결심이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때마다 느끼는 각기 다른 부위에의 숱한 근육통은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에 “야, 기분 좋다!!”라는 함성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극복 중이다.
『롤모델(The Roll Model)』(질 밀러, 2018년 1월, 대성의학사, 원저는 2014년 11월 출판)
원저의 제목이 Role Model이 아니라 Roll Model이다. 해부학 및 운동 분야 연구를 통해 피트니스, 요가, 마사지, 통증 관리 분야 간의 연결고리를 구축해낸 질 밀러(Jill Miller)는 자신의 테라피볼에 피트니스 접근법을 통합했다. 자세와 통증, 근막과 고유수용감각, 필수적인 볼 테크닉, 호흡리셋, 부위별 신체리셋을 위한 구체적인 시퀀스, 휴식의 역할과 소울 롤링이 주요 내용이고 특히 볼운동을 통한 통증 개선과 질병 극복의 구체적인 증례들은 수술과 재활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은 만성적인 불편감으로 한의사들을 찾아오는 많은 환자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한의학적 치료방법을 병행하는 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줄 것이다.
『평생 써먹는 기적의 운동 20』(카르스텐 레쿠타트, 2023년 5월, FIKA)
독일의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스포츠 의학 전문의인 Carsten Lekutat의 저서로 “의사의 관점에서 볼 때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게 핵심일 때는 특히 더 복잡하다”, “일상생활 속 우리의 삶의 방식들이 얼마나 많은 질병과 직결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면서도 의사인 나조차 건강한 행동 방식으로 내 삶을 꾸준히 채워나가고 무엇보다 이를 유지하는 게 참 힘들다”, “우리의 삶은 위기와 기회로 마구 뒤섞여 있다” 등 공감 가는 내용이 많은 에세이다. 글 중간중간에 기적의 운동법으로 벽 운동(월 푸쉬업·다이아몬드 푸쉬업·월싯·월 사이드 플랭크), 의자운동(의자 스쿼트·의자 크런치·의자 삼두근 딥·의자 플랭크), 짧은 순간의 풀파워(점핑 잭·푸시업·크런치·의자 스텝업·스쿼트·플랭크·무릎 높여 달리기·런지·사이드 푸시업·사이드 플랭크) 등이 간단한 도해와 함께 운동방법과 운동효과가 요약되어 있다.
『등 한번 쫙 펴고 삽시다』(타카히라 나오노부, 2023년 6월, 리스컴)
굽은 등은 노화와 만병의 원인이다. 굽은 등의 3가지 유형 판별법(목-등-허리 굽음의 3유형)과 어떤 유형의 굽은 등도 고칠 수 있는 근막 라인 스트레칭(목-등-허리로 나눠서 소개), 굽은 등의 예방 수칙과 피할 수 없는 척추골절의 경우에도 예방이 가능하다는 사실, 식사와 보조약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수술에 있어서의 주의할 점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진료실에서 흔히 만나는 등통증 환자들을 위해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상체 밸런스 리셋』(네고로 히데유키, 2023년 9월, 포레스트 북스)
올바른 어깨뼈 운동과 호흡법을 개발하여 두통이나 오십견 등 근본 원인을 찾지 못해 각종 질환과 통증이 만성으로 이어진 케이스 또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를 포함한 대표적 성인병을 앓는 전 세계 수많은 환자들의 고통을 해결해 준 것으로 알려진 일본 의사가 저자이다.
“전체 혈관의 99%를 차지하는 모세혈관을 상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뻣뻣해진 어깨뼈이다. 모세혈관의 중요한 역할중 하나는 노폐물의 회수이다. 어깨가 굳으면 림프계 기능까지 악화되므로 피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몸, 잘 붓는 몸이 된다. 어깨가 굳으면 당뇨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깨뼈가 무너지면 뇌도 위험해진다.”
이 책을 읽은 후, 진료실에서 흔하게 만나는 오십견 환자들이 달리 보인다. 그들에게 주의당부 시켜야 하는 몇 가지를 당장 추가했으며 당뇨를 가진 오십견 환자들이 일반 환자들보다 치료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도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렸다.
『세상에서 가장 알기 쉬운 근육연결도감』(키마타 료, 2024년 3월, 중앙북스)
일본의 스트레칭 트레이너가 쓴 책으로 그야말로 근육과 연결 두 단어가 키워드이다. 근육끼리의 신체의 지탱을 위한 연결, 자세를 위한 연결, 동작을 위한 연결을 설명하고 있고 이 연결을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 심플한 도해와 함께 요약되어 있다. 전방연결, 후방연결, 외측연결, 나선연결, 심층연결, 운동연결의 큰 덩어리와 팔의 연결, 골반고관절의 연결, 배의 연결, 엉덩이의 연결, 발의 연결, 어깨팔의 연결, 체간의 연결 등 부위별 연결의 설명과 특정 연결의 개선에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다양한 스포츠 손상으로 내원한 환자들의 영상진단 기반 위에 비수술적 치료를 하는 한의사로서 손상 경위와 회복 경위를 설명할 수 있는 도해들이 잘 되어 있다. 무리한 운동의 복합 손상에 대한 환자 교육용으로 최적이다.
보건행정직 관료로 30년 이상을 근무하시고 퇴직을 하신 의사 선배 한 분과 20년째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암요양 한방병원에 취직을 하셔서 근무를 시작하셨다고 근황을 전해오신다. 대학병원 암센터를 오가는 지방 암환자들을 위한 정거장 병원으로 수술받은 병원을 오가는 셔틀 서비스, 숙박 그리고 항암식사, 거기에 암 관련 몇 가지 치료를 제공하는데 이 모든 비용이 실비보험에서 처리되니 지방 환자들이 몰려들더라며 본인이 행정직에 있을 때는 이런 류의 병원이 문제가 많아보였는데 막상 봉직의로 이 병원의 멤버가 되고보니 과도한 허위 청구만 아니라면 이보다 더 좋은 암환자 맞춤형 서비스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이신다.
위 선배님의 개인적인 소견에도 불구하고 실비 보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보도는 지속되고 있다. “보험사가 백내장 보험금을 통원치료 기준으로 지급하자 최대 보험금 지급 한도가 2000만∼3000만원에서 20만∼30만원으로 줄었다. 보험금 지급액이 줄자 백내장 수술이 90% 넘게 급감한 것이다.” <『백내장 수술 90% 이상 급감, 무슨 일 있었기에?』(경향신문, 2023년 6월 6일), 『보험금 줄자 백내장 수술 90% 급감, 관련 분쟁은 늘어』(YTN, 2023년 6월 19일)> “금감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 고시를 통해 신의료기술로 승인된 무릎 주사의 보험금 청구 건수는 같은 달 38건에서 올해 1월 1800건으로 보험금 지급액은 같은 기간 1억2000만원에서 63억4000만원으로 급증했다. 보험금 청구 병원도 정형외과 및 재활의학과에서 안과, 한방병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영양주사 등 비급여 주사제의 실손보험금 지급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실손 있죠?” 병원·환자 도수치료 1조 야합…건보까지 휘청인다』(중앙일보, 2024년 2월 7일), 『병원 갔더니 “실손 있으세요?”... 다른 병원 갈지 고민해야』(경향신문, 2024년 3월 24일)>
일차의료 전담의로서 한의사의 역할은?
비수술적 통증 치료 혹은 자세 재활 맞춤 운동 등의 특별한 이름으로 광고 되었지만 결국은 다 도수치료였고 이 명목으로 보험금을 챙겨가기 바쁜 병의원들의 과욕은 현재 진행형이다. 환자와 의사와 보험회사의 이해가 척척 맞아들어가며 형성되었던 이 실손보험의 생태계가 마지막에는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아름답지 않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다. 실비 보험으로 도수치료를 너무 과하게 받은 환자군과 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하고도 단 한 번도 도수치료 근처에도 가지 않은 환자군 사이에는 그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 과하거나 담 쌓거나, 뭐든 둘 중 하나이다.
최근 국회도서관에서 발간된 『THE현안』(4월15일)의 “주요국의 가치 기반 의료제도”에 대한 자료를 읽게 되었다. 의사의 진료행위 하나하나에 가격을 책정하는 현행 ‘행위별 의료수가제’를 개선한 대안적 모델로서의 ‘가치 기반 의료제도’에 대한 것으로 양보다 질적인 가치에 중점을 둔 의료시스템에 대한 모색에 관한 내용이다. 프랑스와 영미권 국가에서의 적용사례를 보면 환자의 건강이라는 성과목표를 달성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의사, 환자, 보험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가치 기반의 의료제도에서 정신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가족 주치의를 필수 의료기관으로 선정한다면 한의원이 최적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차의료 전담의로서 한의사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실비보험 타먹기 경쟁에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는 저 많은 개원가들의 삶이 보다 건전해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쿵푸팬더 4』에서 영적 지도자가 되어 비로소 내적 평화(inner peace)를 찾은 포(寶;Po)는 새로운 성장보다 지금 상태에 머무르고 싶으나 그의 스승은 그를 대신할 후계자를 찾으라고 명령한다. 그 앞에 여태까지의 모든 쿵푸 마스터들의 능력을 그대로 복제하는 강력한 빌런 ‘카멜레온’이 나타나고 이를 막기 위해 포(Po)는 쿵푸 고수 젠(陳;Zhen)과 힘을 합쳐 결국 카멜레온을 제거한다. 모든 미션을 마무리한 젠(Zhen)이 “핫한 침술원(acupuncture clinic)이나 차릴까?”라고 말하자 포(Po)가 그러지 말고 본인 후계자가 되어보는 건 어떠냐며 영적 스승(spiritual leader)으로의 길을 제안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핫한 침술원(한의원, 통증관리)에 영적 스승(정신건강 도모)의 역할까지를 해낼 수 있는 의료직은 한의사들이 유일무이하다는 과도한 해석을 덧붙이며 영화관을 나섰다. 총선 때문에 지난 몇 주 동안에는 정치에 과몰입 했었다. 잠시 휴지기를 가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당분간 내 유투브 키워드는 온통 운동과 관련된 용어들이다. 과하거나 담 쌓거나 운동의 양극단을 흐르는 환자분들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 아니 운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