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원광대학교에서 학장을 역임한 李昌彬 교수(1920〜1994)는 한의학 교육에 헌신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평안북도 영변 출신으로 1950년대 경희대 한의대의 전신 동양대학관을 1회로 졸업한 후 1953년 동양대학관이 서울 한의과대학으로 인가될 때 관장 朴鎬豊, 石柔順 등과 함께 대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1976년에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2대 학장으로 취임해 한의학 교육에 열정을 불태웠다.
수일 전 故최용태 교수(1934∼2017)의 유품을 수습하기 위해 경기도 분당구 자택에 방문해 이창빈 교수의 『理學原論』이라는 저술을 발견하게 됐다. 1982년 이창빈 교수가 출판한 이후 최용태 교수에게 저자 사인본을 증정한 것이었다.
이 책에 기록된 학술적 연구는 앞으로 더욱 상세하게 살펴볼 일이지만 수많은 易學的 그림과 설명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동양철학적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년 전 부산대 김기왕 교수로부터 이창빈 교수가 절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한 경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것이 분명하다면, 아마도 이 자료에 들어 있는 철학적 개념들은 불교철학의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 책은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돼 있다. 서론에서는 △우주의 정의 △철학의 체계를, 본론에서는 △우주의 본체(본질)론 △우주의 창조(생성)론 △우주의 현상(존재)론 및 설명방법론으로 說明單位說, 變化過程說과 태극설, 음양설, 삼분설, 사상설, 오행설, 육합설, 칠요설, 팔괘설, 구궁설 등으로 이어진다. 결론에서는 인간의 행위강령으로 정상행위=불간섭행위, 이상행위=간섭행위 등으로 구성돼 있다.
150쪽에 달하는 책은 40쪽에 달하는 개정증보판을 두차례나 간행할 정도로 보완이 이어졌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의학의 원리를 ‘理學’이라는 체계로 새로 정리하고자 시도한 것이리라. ‘氣學’, ‘氣哲學’ 같은 ‘氣’ 중심의 한의학적 논의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학설을 내놓은 것이다.
이창빈 교수는 ‘理의 定義’에 ‘理’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本然: 空間의 밑(本)과 끝(末)이 無限(無邊無際)하여 아득(沓)하고 까마득(玄)하여 밑과 끝이 그러(然)하므로 空間의 本을 기준으로 하여 무한한 공간을 표현하는 말이 本然이다.
○自然: 時間의 始發로부터(自) 終了할 때까지(至)가 無限(無始無終)하여 아득(沓)하고 까마득(玄)하여 비롯부터(自) 끝일 때까지(至)가 그러(然)하므로 시간의 自를 起始로 하여 無限한 시간을 표현하는 말이 自然이다. 그리고 造作이 아니고 스스로의 뜻도 된다.
○이와 같이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이 합치하여 本自然한 상태에 충만한 것을 ‘理’라고 한다. 그러므로 理는 공간적인 관념과 시간적인 관념을 초월한 本自然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本自然한 理는 無始無終한 시간과 無邊無際한 공간에 충만해 있다.
○우리말 가운데 理字가 들어간 말을 조사해본다.
○道理, 法理, 事理, 物理, 心理, 身理, 順理, 逆理, 天理, 地理, 正理, 歪理, 合理, 不合理, 生理, 病理, 有理, 無理. 원리, 진리, 논리, 학리, 성리, 윤리, 通理, 達理, 섭리, 추리, 궁리, 공리, 定理, 易理, 哲理, 文理, 妙理, 公理, 非理, 命理, 明理, 義理, 數理, 조리, 처리, 총리, 서리, 대리, 관리, 정리, 무리, 이상, 이지, 이해, 이유, 이기, 이발, 이학, 이법, 이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