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출근해서 항상 그렇듯 인터넷을 여니, 모로코에 대규모의 지진이 나서 30여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촉이 곤두섰다. 대규모의 지진인데 30여명 의 사망자, 이 사망자의 숫자는 곧 백 단위, 천 단위를 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뉴스 속보로 숫자는 시간당 100명씩 늘어서 천 단위의 사망자가 나왔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수십만, 수백만까지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대형 재난이었다.
모로코는 대학 후배인 길승재 원장이 몇 년 동안 코이카(KOICA)를 통해 결핵사업을 한 곳이라 평소 잘 알고 있었다. 국제적인 결핵사업의 매뉴얼은 결핵치료 시 반드시 본인이 직접 있는 상태에서 약물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를 들어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는 NGO로 탈북민 결핵환자가 찾아온다면, 이 환자를 치료해주어야 할까? 결론은 ‘치료하면 안 된다’이다. 아무리 결핵이 중한 병이라 해도 결핵약을 처방하여 본인에게 맞는 결핵약도 찾고 한 달 정도 치료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안에 쫓겨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된다면 이 사람은 결핵을 치료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몇 개월 뒤 생활과 거주가 안정되어 결핵을 치료하고자 해도 이미 결핵약에 내성이 생겨서 치료할 수 없기에, 생활과 거주가 안정되고 또한 반드시 6개월 이상 정기적으로 접촉이 가능한 사람만이 결핵치료의 대상으로 본다.
모로코에서는 도시빈민 가운데 결핵 유병율이 높은데 결핵환자에게 스마트 약 상자를 통해서 약물을 공급하였다. 환자가 일정한 시간이 결핵약을 복용하려고 약 상자를 열면 이 신호가 센터에 연락이 되어서 결핵약 복용 유무가 체크가 된다. 만약 약 상자가 열리지 않으면 매니저가 환자에게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서 약물 복용하지 않은 이유를 묻고 지속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현지 매니저로서 길승재 원장이 모로코 현지 직원들과 같이 잘 수행하고 돌아왔을 뿐 아니라 이 사업이 코이카 대표사업으로 뽑혀 여러 군데서 칭찬을 많이 받은 사업이라서 기억하고 있다. 이 사업을 전체 총괄한 박세업 본부장도 친분이 있어서 친숙한 나라에서 대규모 지진이라니 더 마음이 갔다.
이틀 뒤 월요일 출근하니 평소 내가 좋아하는 백은성 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백은성 원장은 글로벌케어 사무총장이면서, 그리고 내가 근무하는 광명한의원 아래 누가광명의원에서 진료도 하고, 주일에는 목사로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존재다. 그의 말은 ‘내일 아침 모로코 가는데 갈수 있느냐?’였다. 우리의 여행은 며칠 동안 준비하는 게 아니라 연락이 오면 24시간 내에 출발하는 게 일상이라서 여권이 어디 있나만 확인하고 갈 수 있다 말했다.
몇 달 전 튀르키예로 갈 준비를 다 하고 있었는데 가기 전날 현지 사정과 여러 가지 여건으로 취소가 되었는데, 모로코도 내가 가겠다고 무조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선은 의사를 표시하고 가족과 한의원 직원들과 환자들에게도 알리는 등 준비를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길이 열려 파리를 거쳐서 모로코 마라케시(Marrakesh)로 향했다. 의사인 백은성 글로벌케어 사무총장과, 해외긴급구호팀장이면서 한의사인 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간호사로 글로벌케어 간사를 하고 있는 김예신 간호사와 사역을 총괄하고 있는 남미영 팀장님과 함께…
마라케시란 도시는 모로코 역사에서도 중요한 도시로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느낌이다. 모로코가 예전 역사에서 흥왕해서 지금의 스페인까지 영역을 확장할 때 수도로서 예스러운 건축물이 많이 보전되어 있고, 관광적인 차원에서도 사막이나 산지여행의 출발점인 도시다. 이 도시에서는 17명 정도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하고,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모스크나 오래된 역사적인 유적에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13일 밤에 도착했을 때는 지진피해 지역에서 벗어나서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 14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에도 여진이 있었는지 건물이 흔들림이 있었고, 그래서 동물들의 소란도 있었다고 한다. 지진피해 지역에서 여진은 상수이다. 앞으로 몇 달, 길게는 1,2년 정도 진도 4-5의 지진은 항상 있을 것이다.
14일 아침에 일어나서 글로벌케어 모로코팀과 미팅을 하면서 현지 사정을 들었다. 지진은 마라케시로부터 남서쪽으로 70여 km 떨어진 산지에서 발생했다. 마라케시 등 도시 지역은 그래도 집이 튼튼하게 지어서 금만 갈라져 있지 대부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시골의 산지 마을들은 대부분 흙집이여서 피해가 컸다. 더군다나 밤 11시에 지진이 발생해서 사람들이 자거나 집에서 휴식하는 중에 지진을 맞게 되어 대피하지 못해서 피해가 더 컸다.
현재 모로코 글로벌케어에서 리서치하고 도와준 지역은 아미즈미르(Amizmiz), 위르간(Ouirgane), 이주오카(Ijoukak), 타르가(Targa) 지역이다. 대부분 여기까지는 도로가 뚫려있어 갈수 있지만 아직 도로가 뚫리지 않은 지역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 팀도 물품을 준비해서 피해지역을 방문하고 어디를 갈지를 정했다. 15일은 위르간, 이주오카, 16일은 아미즈미르, 17일 일요일은 하루 정비하고 18일은 다시 위르간과 이주오카지역 그리고 길이 더 나 있으면 갈수 있는데 까지 가서 보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했다.
15일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차를 타고 목표로 한 위르간, 이주오카로 향했다. 한 두 시간 동안은 길도 좋았지만 점점 산을 향해 들어가자 길에 낙석이 보이면서 도로가 파손되고 무너진 집들이 보였다. 2시간 반 정도 달려간 위르간 지역에는 큰 호수가 있었다. 이곳 상황은 집과 벽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형태는 보존되어 있었고, 도로 곳곳에 이재민을 위한 천막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 이주오카 지역까지 들어갔다. 호수를 벗어나서 이주오카 지역으로 가려는 도로는 낙석으로 도로가 파괴되어 비포장인 곳을 곳곳이 있었고 여러 중장비들로 낙석들을 치우고 있었다. 지도상으로 15km라고 하는데 거의 한 시간 이상 소요되어서 이주오카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주오카 지역은 원래 6000여 명이 살던 지역이고 계곡 중앙에 평지가 분포된 지역이여서 피해복구 베이스캠프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러 나라의 군대들도 주둔하고 있었고, 이동통신사들의 간이 중계소도 설치되어 있었고, 많은 NGO와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듯 했다. 현재 모로코에서 공식지원협조를 받아서 활동하고 있는 나라는 스페인, 카타르, 튀니지, 요르단, UAE, 영국 등이다. 이 나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왕이 있는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은 공식적으로 군대를 파견해서 돕고 있어서 스페인 국기나 카타르 국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운전과 통역을 맡은 하삼 씨에게 왜 여러 나라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2004년 모로코 북부에 큰 지진이 있었는데 그때는 여러 나라의 도움을 다 받았는데 이를 핑계로 여러 사람들이 들어와서 현지인들과 불화가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도움을 줄 때도 현지를 생각해서 재난당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200만 달러의 약품과 의료진을 파견한다고 했지만 막상 현지에서 원하지 않아서 대사관과 KOICA에서도 도움을 줄 여러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
우리는 조금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길이 나 있는 곳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돌무더기만 남아 있는 마을, 기둥만 조금 있는 집들, 계곡 건너편의 마을들을 보니 대부분 흙으로 지어진 듯한 집들이 보이고 간혹 벽돌들은 보이나 철근은 전혀 보이지 않는 건축구조물들이 있었다. 완전 폐허 된 마을들을 여러 군데 지나서 가면서 밤 11시에 이런 집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니 많은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가다 이프릴 이라는 마을을 지날 때 두 분의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자신들은 구호해주는 팀이 없으니 자신들의 마을로 가자고 했다. 이분들을 따라서 가니 도로 아래로 텐트 8-10개 정도 있는 작은 이재민 촌이 있었다. 촌장은 자신들의 마을에 텐트가 9개 정도 더 필요하다고 말하며, 여러 가지 부족한 것들이 많다고 했다. 아주머니들은 돕는 사람들이 없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프랑스에서 온 자원봉사자가 있었는데 이분은 응급구조사로서 배낭 한가득 응급물품들을 챙겨왔고 현지 모로코인과 같이 간단한 진료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픈 아이를 발견했는데 무너진 건물 속에서 발견돼 다리에 혈종이 있고 피가 가득 차 있어 부종이 있는 아이였는데, 응급으로 간단히 소독만 되어있고 상처는 노랗게 고름이 생겨 있었다. 박세업 본부장의 전공이 외과여서 프랑스인 자원봉사자가 가지고 있는 의료배낭에서 란셋과 붕대, 주사기 등을 지원받아 상처는 소독하고 혈종은 주사기로 빼내어 제거했다. 아이를 치료하고 텐트 내부로 들어가 보니 텐트 당 6~8명이 생활하고 있었고, 한 텐트에는 지진 때 밖으로 나오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아주머니가 있었다. 허리에 침을 놓아드렸더니 옆에 있는 할머니께서는 발목을 겹질렸다고 침을 놔달라고 해 침을 놓았고 발목을 붕대로 고정시켰다. 붕대는 프랑스 자원봉사자의 배낭에서 빌렸는데, 어떤 모로코인이 발목을 고정한 붕대위로 알코올을 붓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하니 열감이 있어서 열을 식게 하려 알코올을 붓는다고 대답했다. 현지에서는 이렇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돌아가면 한번 써먹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밖으로 나오니 또 다른 소녀가 어깨가 아프다고 왔다. 어깨는 소독이 필요해서 소독해 주었다. 이들의 필요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선 우리가 준비해간 진통제, 비타민, 젤 타입 파스를 소분해서 가정별로 봉투로 나누어서 그들에게 전달하고 왔다. 이들에게 붙이는 파스 대신에 젤 타입의 파스를 준 것은 이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피부에 털이 많아서 붙이는 파스는 잘 붙지 않기 때문이다.
의료도 문제이지만 먹는 것과 위생의 문제도 있어 보였다. 80~100명이 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는데 오물 처리 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우선 그들이 원하는 텐트와 요리에 필요한 프라이팬이나 냄비, 쌀, 참치, 설탕 등을 가지고 월요일 다시 방문했다(토요일 방문한 아미지미르 지역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지면상 다음번으로 미루고, 18일 월요일 지난번 갔던 이프릴 지역으로 우리는 다시 들어갔다).
이프릴로 가기 전 마라케시의 대형슈퍼에서 현지에 필요한 물품들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텐트도 구입했다. 모든 물품을 트럭에 싣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점심을 위해서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주문했다. 주문하는 도중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분이 지진피해 지역을 돕는 NGO냐고 물었다. 아마도 우리가 입은 옷 때문에 알아본 것 같았다. 본인이 젊을 때 군인이었는데, 8~90년대에 알제리와 세네갈에 지진이 났을 때 재난지역에 가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는데, 이런 일이 얼마나 보람 있는지 안다며 우리를 격려하며, 눈시울이 붉혔다. 그는 현재 65세인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머리에 상처도 있고 다리에 박힌 것이 많아서 걷는데 자연스럽지 못했다. 자신도 돕고 싶어도 가족들이 말려서 못가고 있으며, 대신 아들이 재난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어제도 늦게 들어와 모래가 묻은 채로 잠들고 오늘도 아침 일찍 나갔다며 한국인들이 모로코를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연신 감사를 전했다.
4시간을 달려서 다시 이프릴에 도착하였다. 다리에 염증과 부종이 있던 아이는 염증은 사라졌지만 반대쪽에 부종이 조금 남아있어 염증부위는 베타딘 소독을 하고 부종은 압박붕대로 감아두었고, 어깨 상처가 있던 소녀는 상처부위가 많이 줄어들고 깊이도 얇아져서 소독만 해주었다. 상처를 소독하고 있으니 소독이 필요한 새로운 환자들도 보였다. 머리를 꿰맨 환자였는데 근처 이주오카에서 머리를 꿰맸는데 꿰맨 후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소독을 해주었다. 그리고 지난번 허리에 침을 맞은 아주머니와 발목을 삔 할머니를 찾으니 그 두 모녀는 도시인 마라케시의 친척집으로 갔다고 한다. 대신에 또 다른 통증 환자분들에게 침을 놓고 왔는데, 치료 중 이야기를 들으니 이 도시에는 부항을 하는 곳이 있어서 사혈이 이들에게는 친숙한 치료라고 했다.
3일만인데 많은 것이 변했다. 지난번 같이 사용하던 공용주방에는 빨간 천막이 들어섰고, 다른 NGO에서 지원해 준 것으로 보이는 태양광 패널이 곳곳에 있었다. 이들은 자기들이 필요한 만큼만 원했다. 이프릴 마을에 우리가 준비한 모든 물품을 내려놓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들도 텐트도 필요하고 물자들이 필요하다고 하니 촌장이 이프릴에는 반 정도만 내리고 다른 곳에도 물자를 나눠주라고 했다. 다른 마을(Tassouakte)에 가서 그곳의 필요한 만큼 물자들을 나눠준 후 다시 이프릴로 오니 촌장은 각 가정에 필요한 만큼 물자들을 소분해 놓았다. 재난 지역에도 이들만의 삶의 방식과 나눔과 배려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6박 7일의 일정으로 모로코에 다녀왔지만 지금도 모로코에 대한 지원과 어떻게 도울지 고민은 계속 되고 있다. 현지에서 필요한 위생 사업을 위해서 간이 이동 화장실을 알아보고 있다. 재난 상황에서는 특히 여성들의 성적 착취가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통계가 있어 여성들이 안전하게 볼일을 볼 수 있도록 화장실 설치도 알아보고, 텐트를 대신할 이동식 숙소도 계획 중이다. 무엇보다도 재난 발생시점 한 달이 지나면 이젠 복구사업으로 진행되어지는데 이것들을 학교와 교육의 정상화와 같이 진행되기 때문에 글로벌케어는 학교의 재건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한의사 중 모로코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아래의 계좌로 마음을 합하면 좋을 듯하다.
국민은행 873201-04-287637 글로벌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