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민보영 기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의 세계사적 가치는 서구보다 200년 더 이르게 예방의학의 개념을 정립한 데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봉성기 국립중앙도서관 고문헌과 학예연구관은 지난 14일 국립중앙도서관 개관 75주년 기념으로 열린 인문학 특별강연에서 ‘세계기록유산과 동의보감’을 주제로 온라인 강연을 진행하고 이 같이 밝혔다. 150여 명이 참여한 이 강연에서 그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과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된 의서를 소개하고, 허준의 탄생·가계도·주변인물 등 저자 정보와 동의보감의 편찬·활용·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봉성기 연구관은 “동의보감은 일반 백성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의학 지식을 종합해 수행된 혁신적인 공공의료사업”이라며 “서양에서 19세기 들어서야 공중보건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점을 감안하면, 동의보감은 예방의학과 공공 의료라는 개념이 없던 의학계에 선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선조는 치료보다 병이 발생하기 이전에 몸의 건강을 보살피는 ‘양생(養生)’에 초점을 둔 의서 편찬을 허준에게 주문했다. 당시 중국의 의서는 보기에 어려운 음양오행론에 기반한 의서가 대부분이어서,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당대의 향약의서를 집대성한 점뿐만 아니라 향약의 명칭을 한글로 병기했다는 점, 조선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면서 효과가 좋은 약재를 소개했다는 점 등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특히 조선의 풍토에서 나타나는 한약재의 특징을 중점적으로 서술한 점은 동의보감이 중국 의서를 표절했다는 일각의 주장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지역의 기후에 따라 서식하는 약초의 분포와 효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봉 연구관은 이 외에도 질병이 아닌 몸 중심의 서술, 소갈병 등 실질적인 임상 시험 여부, 국내외 유수 인사의 관련 발언 등을 들어 동의보감의 가치를 언급했다.
동의보감은 제1권인 내경편의 앞부분에 ‘신형장부도(身形藏府圖)’를 배치해 질병의 명칭보다 환자의 몸을 중시하는 세계관을 반영했다. 측면으로 그린 척추에는 조밀한 척추의 구조가 나타나 있으며, 물결 모양이 그려진 배는 호흡하는 인체의 모습을 상징한다.
현대의 당뇨를 의미하는 ‘소갈병’에 걸린 환자의 소변이 달다는 표현은 의학이론이 아닌 실제 임상 경험을 반영한 결과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1995년 한국을 방문해 동의보감을 “한·중 문화교류의 아름다운 역사를 빛낸 작품”이라고 평가했으며,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도 우리나라 3대 도서로 허준의 동의보감, 이이의 성학집요,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꼽았다.
조선의 14대 임금인 선조의 명에 따라 허준이 1610년 완성한 동의보감은 1613년 국가적 사업으로 간행됐다. 내경편 4권4책, 외형편 4권4책, 잡병편 11권11책, 탕액편 3권3책, 침구편 1권1책 등 5편의 편집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세부내용을 기록한 목록 2책 총 25책으로 구성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10개의 의학 관련 자료 중 동의보감은 중국의 <황제내경(黃帝內經)>, <본초강목(本草綱目)>보다 2년 빠른 2009년에 등재됐다. 동의보감이 이미 올라왔기 때문에 중국 의서의 등재도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거질의 의서에서 온역, 두창과 소아과, 부인과 등 전문분야만 특화해 편찬되기도 했던 동의보감은 20세기 이후까지 이어오며 질병에 관한 종합백과의서로 활용되고 있다.
그는 한의학의 발전 방안에 대해 “전통적인 경험만 추구하기보다는 현대 서양의학의 기술적인 부문을 흡수 공존해 나가야 더 나은 치료 및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이미 임상 치료로 증명된 경험방 등 의서와 함께 현대의학의 과학적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한방을 통한 치료 및 예방을 극대화 할 뿐 만 아니라 한방약의 성분이나 약리 연구 등 학문적 발전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성공적인 방역은 어쩌면 선조들이 갖고 있었던 유전자(DNA)를 발현한 결과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