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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8일 (목)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8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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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基茂의 “漢方醫學復興策” 한의학 부흥론의 서막을 열다



1934년 2월16일자 朝鮮日報에는 醫師 張基茂의 “漢方醫學復興策”이라는 제목의 글이 기고된다. 張基茂(1886~?)는 1906년 官立醫學校를 졸업한 후 醫師가 된 洋醫界의 인물로서 1916년 中外醫藥申報를 창간한 인물이다.



張基茂는 이 글에서 한의학 부흥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된 데에 대한 이유로 “現下 危機에 直面한 斯業界 情勢는 筆者로 하여금 安忍坐視할 수 없어 敢히 一得의 見을 草하여 斯業界 人士에게 參考材料로 提議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하였다. 張基茂가 보기에 당시 한의계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어떠한 방안이 나와야 할 시점에 와 있었다.

그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할 방법으로서 네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네가지는 그대로 그의 글의 소제목으로 쓰이고 있다. 네개의 소제목은, 一. 集團의 必要, 二. 術語의 改定問題, 三. 硏究所 設置案 附 醫育問題, 四. 報導言論機關 등이다.



첫째, “集團의 必要”에서는 먼저 당시 한의계 단체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한의 단체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가 한의계를 비판한 내용의 골자는 당시 존재한 기존 한의단체의 행태가 몇몇 야심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고, 과학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가치없는 架空的 학설을 내뱉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한의계의 各派를 網羅할 學術硏究의 機關을 創建하여 한의학 전반에 대해 과학적으로 지도원리를 수립하고 점차 부분적으로 강연을 통해 토론에 전력하여 논문과 治驗 같은 것도 수시로 공개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에 공통적으로 “現代科學醫術의 通例에 依하여 周密愼重하게 取扱할 것”이라는 대원칙을 전제하였다.



둘째, “術語의 改定問題”를 “한의학 개혁의 시급한 근본문제”라고 꼽았다. 이 문제의 근본은 한문으로 쓰인 한의서의 ‘文短意長’한 특색과 관련이 깊다고 보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는 부득이하게 現代學術用語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術語審査委員會 같은 기관을 학회에 병설하여 現代醫學術語와 考究對照하여 한의학술어사전을 편찬한 연후에 古醫書를 번역하여 이것을 교재로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통일된 술어는 入門者들의 이해를 쉽게 할뿐 아니라 이후 醫書의 간행물에도 통일된 술어로 사용되어 구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셋째, “硏究所 設置案 附 醫育問題”를 현대 과학연구에서 실험을 중시하는 추세를 쫓아가기 위해 필수사항으로 꼽았다. 硏究所를 만들되 거기에 診療所도 병설하여 경제적 문제도 해결하면서 발전시키자는 것이 그 골자이다. 말미에는 한의학 교육 문제를 거론하면서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講習所같은 형태의 교육기관을 이 연구소 내에 설치하여 의사 출신의 코스와 고등학교 졸업자의 코스를 차등을 두어 양성한 후에 醫生試驗을 점차적으로 면제시켜 주자는 것이다.



넷째, “報導言論機關”은 한의학 관련 언론기관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여기에서 당시 일본에는 30여종의 보건위생 관련 언론기관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상당한 기반과 세력을 가지고 있는 의학 관련 기관이 6종이었고 학술잡지는 백여종이었던 것을 예로 들어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한의계도 이러한 언론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네가지 주장들은 당시 조선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져주었다. 이제까지 관심이 없었던 한의학의 발전방안에 대한 주위를 환기시켜 논쟁의 시작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의 문제 제기는 당시 한의학에 관심있는 한의사들과 의사들의 관심을 일으켜 “한방의학 부흥론”이라는 제목의 論戰을 시작하게 하였다. 이 논전에 참여한 인물은 鄭槿陽, 李乙浩, 趙憲泳, 申佶求, 姜弼模 등이었다. 이들의 논쟁은 『한의학의 비판과 해설』이라는 제목의 책자로 만들어져 수차례 간행되었다.



張基茂는 다음과 같은 말로 미래를 예측하였다.

“漢方醫學의 沈滯不振함도 時代力으로 그리된 것이오, 漢方의 復興運動도 時代力으로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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