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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7일 (수)

정우열의 노자이야기 29

정우열의 노자이야기 29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도는 형상 없는 형상 즉 ‘무물(無物)’, ‘홀황(惚恍)’ 한 것이기 때문에 앞에 나아가 맞이해서 봐도 그 머리를 볼 수 없고, 뒤에 따라가며 봐도 그 뒤를 볼 수가 없다.



형태가 있어야 머리도 보고 꽁무니도 보지, 보는 자가 보려고 하는 것 속에 들어 있으니 볼 수가 없다. 바로 눈이 눈을 보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뭐라고 비유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다시 ‘무물(無物)’로 돌아갈 수밖에. 그것이 바로 복귀어무물(復歸於無物)이다. 그러니 옛날의 도를 잡아서 오늘의 있음[有]을 맞아들인다면 옛날의 시원(始源)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御)’는 ‘다스리다’, ‘통어하다’ 따위로 읽어 “옛날의 도를 잡고서 지금의 있음을 다스린다”고 번역하였으나 여기서는 ‘어(御)’는 ‘맞다’, ‘맞아들인다’로 읽었다. 이는 김형효의 해석을 따른 것이다.



노자는 어떤 경우에도 도를 세상을 능위적(能爲的)으로 다스리거나 끌고 가는 의미로서의 뉘앙스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무위법(無爲法)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스린다’, ‘어거한다’ 따위의 능위적 또는 유위적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억제한다. 그래서 그는 그런 능위적 동사의 사용을 피하기 위해 “옛날의 도를 잡아 지금의 있음을 맞아들인다”고 옮겼다.



여길보(呂吉甫)의 주해에서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처럼 옛날의 도의 근원을 알아서 지금의 현상인 ‘있음’을 맞아들이면 옛날의 시원(始源)인 비롯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일컬어 ‘도의 실마리[紀)]’, 곧 ‘도의 근원’이라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여하시(如何是),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네 아버지 어머니가 나시기 전에 지녔던 너의 참 모습이 어떠하냐”고 하는 말이다.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있던 너의 본바탕이 뭐겠느냐는 것인데, 그게 불가에서는 부처님이요, 여기서는 도(道)라고 한 것이다. 『창세기』에서는 이를 ‘하느님’이라했다. 결국 도는 아리송하고 신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도를 가지고 그 원리에 입각해서 현상세계의 사물을 대하면 태고의 시원도 알 수 있게 된다.



존재는 모든 것, 있음[有]의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통해 그것들의 근원되는 비존재, 없음[無]의 세계를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도의 본질로 들어가는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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