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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7

김남일의 儒醫列傳 17

해부학적 지식 중시하는 의학적 견해 피력



동양에서는 해부학적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한의학이 서양의학에 뒤질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과 동양에도 해부학이 있었으므로 한의학도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모두 서양의학의 잣대로 한의학을 판단하는 함정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모두 한의학에 대한 몰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는 주장들이다.

한의학에서 해부학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한의학 자체의 학문적 특성상 해부학에 대한 지식이 서양의학에 비해 적게 요구되기 때문일 것이다. ‘東醫寶鑑’에 등장하는 身形臟腑圖, 다섯 개의 五臟圖 모두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해부를 하여 정확히 그려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그림들은 아마도 인체의 기능에 대한 기왕의 논의를 바탕으로 허준이 유추하여 그려놓은 ‘人體生理圖’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한의학이 해부학적 지식을 중요하게 여겨 이를 바탕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은 한의학의 학문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부학적 실증보다 기능을 중요시하는 관념은 조선 중기까지 계속 이어져 왔지만,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인체의 해부를 중요하게 여긴 이단아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유형이다.



전유형은 임진왜란 때 조헌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후에 여러 차례 조정에 상소를 해서 선조의 칭찬을 받기도 하였고, 그가 제시한 여러 가지 개혁안은 유성룡 등에게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문집으로 ‘鶴松集’이 있다.



그의 개혁가적인 성격은 의학 연구에도 이어져 기존의 인체 생리중심의 연구경향에 반하는 해부학적 지식을 중요시하는 의학적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임진왜란 때 길에 널려 있는 시체를 여러 차례 해부해 보아 이를 바탕으로 사람 치료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당시 의학계의 분위기에서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광해군 때에도 시약청 등을 드나들면서 그의 의학적 능력을 발휘하여 여러 차례 의술로 이름을 드날렸다.



아쉽게도 그가 인조반정 이후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고 나중에는 이괄의 난과 관련있다는 모함을 받아, 그의 의술이 후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그의 사후에 그에 대한 해괴한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전쟁기간에 시체를 해부해서 그 벌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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