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광 호 /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산업화의 수혜자는 기업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국민이다. 그렇다면 산업화의 역군인 기술자와 기업의 역군들은 그만큼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사실 누리긴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구식 기술들이나 구시대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나이를 먹기 때문에 퇴출이나 명퇴 혹은 퇴직의 대상이 된다. 물갈이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나중에 안다. 토사구팽 당하는 운명을 맞는 것이다.
결국 기업내에서 공헌을 한 사람의 운명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서 일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에 대해서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고 변화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이나 무력화가 불러오는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방산업 정책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이 대답은 당연히 한방산업을 일으키는 기업과 국민이다. 한의사는 수혜자가 될 것인가? 한의사는 자신의 역량을 나눠주면서 많은 능력을 기업이나 국민에게 나눠주어야 한다. 그래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당연히 생존과 번영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변화하지 않으면 퇴장당할 것이다.
한방산업의 수혜자는 분명히 한의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의사협회는 왜 한방산업정책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은 불공평하여 모든 분야에 걸쳐서 산업화가 골고루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각 직능과 이익과 이해와 관련하여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분야가 있고 산업화가 느리게 진행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한의사는 수혜자가 될 것인가?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영역은 진보적인 영역이며 산업화가 느리게 진행되는 영역은 전통적인 영역으로 보존의 가치가 높은 분야일 것이다. 문제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영역과 전통적인 영역이 공존하면서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영역은 규모의 경쟁에서 전통적인 영역을 빠른 속도로 추월하고 억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며 나중에는 흡수하게 된다.
다시 생각해 보자. 양방영역은 어차피 세계 경제의 추세에 따라서 빠른 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반대로 한방영역은 전통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아주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래서 얻은 결과는 규모의 싸움에서 절대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달았다. 산업화가 되어서 양의사들이 얻은 이익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양방의료 영역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치료 경쟁력을 확보하여 한방을 압박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왜 그럴까? 학문적 영역의 개발을 기업이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상업적인 마인드로 치료기술을 개발하여 의사에게 보급하고, 의사는 이것을 적극 수용하여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강화한다.
그리고 막대한 경제적 규모를 바탕으로 그렇게 밀어부친다. 정부는 이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그 이익은 기업에게 돌아갈 것이며 국민도 상당부분 혜택을 본다. 그러나 의사는 무엇인가?
사실은 빠른 기술적 진보 때문에 투자대비 이윤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유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첨단 기술이라고 도입한 시스템이 5년도 안되어 구식 기술이 되면서 또 다른 투자를 불러 온다. 그래서 얻는 이익은 반감되며 또 피곤한 새로운 기술 습득의 학습여정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기가 빨라진다.
초기에는 5년이었는데 지금은 1년 내지 6개월 정도의 수준으로 아주 빠르게 변화한다. 마치 6개월된 컴퓨터가 구식이 되듯이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변화에 순응하는 의사들을 양성하고 결국은 나이 먹어서 순응하지 못한 늙은 의사들은 젊은 의사에게 능력싸움에서 밀리며 퇴출되는 운명에 처한다.
한의사도 한방산업이 진행된다면 빠르게 그렇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영역을 상당부분 잃을 것이며 치료기술 쪽으로 재보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도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이나마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역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양방영역에 흡수될 것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과연 한방산업을 구축하면서 생존과 규모의 싸움에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한방산업을 포기하고 전통적인 영역으로 남아서 박물관에 박제가 되는 것이 좋은가?
수혜자가 못되더라도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무조건 한방산업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산업화는 그 시작이 늦었다고 늦은 것이 아니며 선행 산업이 아무리 번영해도 쇠퇴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추월이 가능하다.
우리가 양방을 추월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면 당연히 시도할만한 모험이지 않은가? 한방산업 정책 드라이브는 그래서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그 수혜자가 한의사가 아니라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