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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조선무약 창립·독립운동 등 한의학 육성 이끈 한의약계 巨星”

“조선무약 창립·독립운동 등 한의학 육성 이끈 한의약계 巨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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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협회 회장, 성균관장 등 폭넓은 활동

‘솔표 우황청심원’ 등 고유의 한방생약 개발



一松 朴性洙 선생은 1897년 8월12일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에서 儒家의 가문에서 출생했다. 13세 때부터 한의학에 뜻을 품고 한의학계에 몸 담은 이래 朝鮮貿藥 합자회사를 창립, 대한한의사회 회장에 취임하여 한의학교육 확립, 한의사제도 정착, 협회 육성에 크게 이바지한 한의약계의 巨星이다.



이외에도 우국노인회 한국노인회 회장, 유도회 총 본부장, 한국漢詩협회 회장, 성균관장 등 폭넓은 사회활동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고 1989년 2월15일 자택에서 93세로 타계하셨다. 19일 오전10시 회사장으로 영결식을 갖고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 선영에 안장됐다.



박성수 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은 1918년 3월 상경하여 한문사숙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고, 3월에 경성한약전수학원을 졸업하고, 1920년 3월 나라에 애국하는 일이 국민을 무지로부터 해방시키고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판단하여 한성약업사 및 대창약업사를 창립하였다. 그해 9월 선생은 일제로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을 되찾고자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감되어 옥고까지 치르기도 했다.



한약제제 현대화 선각자 역할

1924년 3월14일 한의학의 선진화를 위해 ‘솔표 조선무약’ 합자회사를 설립하여 ‘솔표 우황청심원’등 전래 고유의 한방생약을 개발함으로서 오늘의 한약제제의 현대화라는 선각자적 위치를 확립했다.



‘우리 민족의 건강을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창업 이념으로 푸른 건강의 의지를 심어온 솔표 조선무약은 2007년 3월14일로 창립 82주년을 맞이한다. 조선무약의 요람인 修養韓醫院은 1950년대 초에 개설됐다. 현재는 대를 이은 2세 경영으로 이어가고 있다.



朴大圭(약학박사)씨가 1965년 8월 입사하여 1985년 3월에 사장에 취임하였다. ‘우리는 하나, 그 뿌리는 솔표’라는 슬로건으로 오늘도 세계 속의 솔표로 거듭나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선생은 1955년 3월10일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전신인 동양의약대학을 설립하고 한의학의 세계화를 더욱 촉진하고 후학들에게 한의학을 전수하고자 杏林學院 이사장과 교수로 취임하여 강단에 서기도 했다.



1957년 1월30일 동양의약대학 박호풍 학장이 문교부로부터 대한민국 최초로 한의학 교수증을 받은데 이어 1957년 11월8일 박성수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김장헌 동양의약대학 한의학과장, 홍성초 동양의약대학 교수 등과 함께 두 번째로 한의학 교수증을 받았다.



1956~1965년 한의협 제3·4대 회장

선생은 또 6.25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갔던 대한한의사회가 서울 수복 후 초대 2대 이우룡 회장에 이어 1956년부터 1965년까지 제3·4대 회장을 역임하며, 한의학교육 확립, 한의사제도 정착에 앞장서 한의학 발전과 협회 육성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일송 박성수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1960년대 필자가 재경회원으로 있을 때에 서울시 대의원 및 중앙대의원 시절에 정기대의원 총회와 새해 인사차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소재 수양한의원을 방문했을 때다.



첫 인상은 접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과묵하셨다. 큼직한 안면에 영롱이 빛나는 두 눈, 우뚝선 코, 그리고 카이제 수염을 걸맞게 기르신 모양, 꽉 다문 입술 등 지성형 용모가 지금까지도 인상에 남는다.



선생은 필자 신상에 관한 것을 물어보시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한의사 본연의 양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 신진 한의사(청년한의사)들이 단합해서 협회를 이끌어 가야 한의학이 발전하니 노력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영향으로 필자는 중앙이사를 비롯한 각급 위원회에서 현재까지도 협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대기실에 진열된 솔표 우황청심원, 솔표 우황포룡환, 사향소합원, 흥양자춘원, 호생단, 안심원, 영신환 등 조선무약 제품을 일일이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셨다.



국내외 각종 행사서 한의학 위상높여

박성수 선생은 1957년부터 1961년까지 우국노인회 한국노인회 회장, 儒學의 발전을 위해 유도회 총본부장, 제7·8대 성균관장, 성균관대학 재단이사를 비롯한 서울대의대, 성균관대, 한국외국어대 후원회장 등 한의약계, 교육계, 정치 문화 사회 활동과 각종 국가 행사에도 초청되어 한의사 위상을 드높였다.



1969년부터 1979년까지 일본제약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한의학 세미나를 개최하여 한의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으며, 또 일본 완제품 수출의 날에 수차에 걸쳐 수상도 하였다.

1974년부터 1985년 한국漢詩협회장을 역임하면서 미국에서 개최된 세계한시대회에 참가, 한시의 우수성을 널리 전파하기도 했다.



박성수 선생은 90여년이라는 한 평생 동안 한학자, 한의학자, 제약실업가, 교수, 독립운동,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으로 현재까지도 존경받고 있는 한의계 거목이자, 거성이다. 마침 2월15일은 박성수 선생께서 서거한지 18주기를 맞는 날이다.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임일규 강원도한의사회 명예회장

본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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