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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한의학 개척자 ? 趙 憲 泳 (1900~1988)

한의학 개척자 ? 趙 憲 泳 (1900~1988)

조헌영 선생의 존함을 처음 듣게 된 것은 필자가 1955년도에 동양의약대학 한의학과 재학시절 ‘한의학총론’ 강의시간에 알게 되었다. 당시 노동휘 교수님의 첫 번째 강의시간에 한의학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는 교재로 조헌영 저‘通俗韓醫學原論’을 추천하니 구입하여 보라고 하여 서울시 종로구 제동에 있는 행림서원에서 단기 4288년 6월29일(서기 1955년도)에 책을 사서 보았다.



그 책은 단기 4282년(1949년) 11월 25일 초판 발행했으며 단기 4286년 5월 20일(1953년)에 재판발행으로 2000부 한정판이었다. 발행소는 을유문화사, 임시정가는 400원이다. 책을 구입한지가 51년째이며 현재까지도 보관하고 있으며 한의학을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의학은 한문이고 설명이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들었으나 이 책은 문장이 현대적이고 해설은 과학적으로 논리정연하게 해설되어 있으며 문장은 쉽고 평이하게 풀이되어 있다. 또 한의학의 각파 학설을 비교하고 비판도 했다.



그리고 한의학과 양의학을 비교하여 조화롭게 썼으며, 임상 처방 치료에 있어 경험적으로 자세하고 친절하게 해설을 한 한의학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통속한의학원론’‘서문’과 ‘本著의 主眼’과 목차의 ‘서언’을 읽어만 보더라도 훌륭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서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시인 조지훈의 아버지

“내가 한의학에 관한 저서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30세가 되어서 한의학 서(書)를 처음 펴 보게 된 것은 그때 우리의 처지가 남달랐고, 대중의료가 실로 비참한 상태에 있었으며, 이 대중의료에 관하여 가장 공헌이 많고 위대한 공로가 있는 한의학이 날로 쇠퇴해가는 것이 애석하고 우려되어 그 부흥에 미력을 보태려고 한 것이며, 그 결과가 이 책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출저가 한의학 연구의 태도와 방법에 있어서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전혀 새로운 면을 개척했다는 것을 스스로 믿는 바이다.(중략) 이 책을 처음 출판한 것은 4267년(1934년) 갑술(甲戌)이요.(중략)”



조헌영 선생은 1900년에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난 민족운동가이며 정치가요 한의학자, 교수이다. 호는 海山이다. 시인 조지훈의 아버지이다.



해산 선생은 아버지로부터 사서삼경 등의 한학을 익히고 대구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고등사범부 영문과를 졸업했다. 와세다대학 재학중인 1927년에 신간회(新幹會) 동경지회장으로 항일운동을 했다. 또 재일본동경조선유학생 학우회장으로 활동을 하였다.



귀국하여 1929년 신간회분부 총무간사를 맡았으며 1931년 신간회가 해체된 후에는 한의학 연구에 몰두하며 동양의약사(東洋醫藥社)를 개설하였다. 이때에 한의학의 기초를 수업하였으며 오늘에 대한민국 한의학 개척자로 한국한의학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

해산 선생은 해방 후 제헌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의학의 제도권 진입을 위해 노력을 하였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 때에 납북되었다. 선생은 북한에서 평양의과대학 동의학부에서 교수로서 한의학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해산 선생은 한의학 연구에 탁월한 연구능력을 발휘하였다.



그의 저술로는‘통속한의학원론(通俗韓醫學原論)’에 이어서 ‘신경쇠약증치료법’(心氣證治, 1955), ‘폐병한방치료법’(肺 證治, 1955), ‘위장병치료법’(脾胃證治, 1955), ‘부인병치료법’(女科證治, 1955), ‘민중의술이료법’(民衆醫術理療法, 1955), ‘한의학의 비판과 해설’(1957) 등을 간행하였다. 이상의 책들은 문장은 현대적으로 해설은 과학적으로 요법은 경험적으로 썼다.



특히 1934년 간행된 ‘통속한의학원론’은 그의 학술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선생은 이 책에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비교 고찰, 서양의학의 장점은 취하고 동양의학의 우수한 점을 부각하여 계승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30년대 조선일보, 동양의약, 동아일보, 신동아, 중앙시보, 방송사를 통해 장기간 벌여진 한의학 부흥 논쟁의 중심에서 한의학의 부흥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조선일보를 통해 당시 양의사인 장기무, 정근양, 약제사인 이을호 등이 제기한 한의학에 대한 견해 등을 내용에 따라 찬동을 하고 비판을 하기도 하여 한의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유도해 내기도 하였다.



언론 통해 한의학 부흥 역설

이 논쟁은 해방후 1947년‘한의학의 비판과 해설’이라는 제목의 서적으로 출간하였다. 집필자는 장기무, 정근양, 이을호, 조헌영, 신길구 선생이다. 이책은 1930년대 조헌영 선생의 활동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통속한의학원론’은 유명한 저서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부언해서 조헌영 선생의‘통속한의학원론’을 주해한‘한방이야기’책이 출간되었다. 이책을 주해한 윤구병 선생은 1943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뿌리깊은 나무>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충북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발행소는 학원사이며 1987년 3월 15일 초판 발행되었으며 3판 발행은 1988년 4월 10일이다.





해산 조헌영선생 약력



1900년 경상북도 영양 출생.

1926년 재일본동경 조선유학생 학우회장.

1927년 일본와세다대학 고등사법부 영문과 졸업.

신간회(新幹會) 도쿄지회장.

1929년 신간회본부 총무간사.

1931년 동양의약사 개설. 주간.

1932년 조선이요회(理療會) 회장.

1934년 통속한의학원론 출판.

1935년 조선어학회「표준말」 사정위원. 「큰사전」 편찬전문위원.

1945년 임시정부 및 연합군 환영준비위원회 사무차장. 한국민주당 조직부장.

1946년 비상국민회의 대의원.

1948년 제헌국회의원, 헌법기초위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

1950년 무소속구락부 간사. 제2대 민의원. 6.25동란시 납북.

북한에서 평양의과대학 동의학부에서 교수 역임.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집행위원.

1980년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서기국장.

1988년 5월 23일 평양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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