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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4일 (수)

한의원에서 만난 ‘SKY캐슬’ 학생들

한의원에서 만난 ‘SKY캐슬’ 학생들

C2201-25

임형택 자하연한의원 원장



부모들은 더 잘 달릴 수 있는 처방을 달라고 하니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뛰어야 하는 우리나라 입시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저 답답할 뿐이다.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최근 절찬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임형택 자하연한의원 원장이 한방신경정신과 관점에서 분석한 내용을 싣는다.








‘스카이캐슬’ 이라는 드라마가 연일 화제였다. TV를 잘 보지 않는 나조차 오랜만에 꼭 챙겨 봤던 드라마이다. 우리 집 아이들도 조금 있으면 딱 예서와 예빈이 나이가 된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속 이야기가 남 일 같지만은 않았다. 더군다나 한방신경정신과 진료를 보며 예서같이 공부잘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 나로서는 매회 시청할 때마다 복잡해지는 심경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스토리의 중심에는 예서 엄마(염정아)가 있다. 극한 상황을 수도 없이 맞이하면서도 웬만해서는 멘탈이 무너지지 않는 강한 캐릭터다. 그래서일까. 예서 엄마 같은 스타일은 사실, 한방신경정신과에서는 만나기가 거의 힘들다. 굳이 병원을 찾는다면, 불면증이나 만성두통 정도로나 찾아올까?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갑상선암이나 유방암 같은 큰 병을 얻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강한 멘탈만큼이나 신체가 따라주지를 못해서 생기는 결과일 것이다.



한방신경정신과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건 예서 같은 아이들이다. 요즘 대학입시는 사실 10년짜리 공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썽 한번 안 부리고 죽어라 공부만 해서 반에서 계속 1등만 해도 이름 들어본 서울권 대학에 겨우 가는 정도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친구를 잘못 사귀거나, 게임에 빠지는 등 단 한 번만 삐끗해도 인서울이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예서같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둔 엄마들은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른다. 아니,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시키는 대로 척척해내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아이가 그냥 원래 잘나서, 혹은 그게 아이의 욕망이라고 착각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부모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1등이든, 2등이든 상위권에 있는 아이들은 그 성적을 지켜내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평균 100km로 달릴 때 예서같은 아이들은 180km로 달린다. 그러니 작은 돌부리 하나만 있어도,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그걸 다잡고 계속 그 속도를 유지한다는 건, 어른들도 해내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안타까운 건, 막상 공부 잘하는 아이의 부모들이 이런 부분을 더 이해 못 한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아파서 한의원을 찾아와서도 “잠을 조금만 더 줄이면, 쉬는 시간을 조금만 더 줄이면 성적이 더 오를 텐데…” 이런 속상함을 토로하는 부모들이 정말 많다. 그러면서 집중력을 높여주고 공부도 더 잘할 수 있는 처방을 해달라고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잠을 충분히 자고 휴식을 충분히 취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아이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한눈에도 위태위태해 보일 때가 많다. 여지없이 이런 친구들은 불안장애, 강박 증세 등이 심하게 나타난다. 마음 같아선 몸과 마음에 여유를 주고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쉴 수 있는 처방을 주고 싶다. 그런데 부모들은 더 잘 달릴 수 있는 처방을 달라고 하니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뛰어야 하는 우리나라 입시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저 답답할 뿐이다. 다만, 이런 아이들을 치료할 때 부모님을 살짝 불러서 꼭 해드리는 말이 있다.

집에 돌아가면서 아이가 부모에게 의사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묻거든 나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하라는 것이다. 이 어려운 공부를 쉬지 않고 하느라 너무나 힘들었을 아이를 인정도 안 해주고 뭐했냐고! 원래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지금도 얼마나 힘들게 공부를 하고 있는지 좀 알아주라고! 그리고 꼭 눈을 바라보고 정말 고생했다고 얘기해주라고 했다고 말이다. 이 얘기를 듣는 많은 부모들의 눈시울이 젖는 것을 보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있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은 쓸모가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놀고 쉬는 것은 자칫 쓸모없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 잘 놀고 잘 쉬는 만큼 쓸모 있는 것도 없다.

또 하나, 예서 같은 친구들을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삶에는 단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를 걷기, 중고등학교는 달리기, 대학교는 자전거, 취업은 오토바이, 관리자가 되는 것은 자동차로 비유를 해보자.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달리기에 익숙한 친구들이다. 그런데 대학에 가면 달리기가 아니라 자전거를 잘 타야 한다. 연애도 하고 동아리활동도 하고 여행도 가는 등 그 나이에만 할 수 있고 그 나이에 꼭 배워할 것 소중한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처럼 계속 달리기만 하는 아이들이 있다. 내가 잘 하는 게 그거 밖에 없고 그걸로 인정도 받고 이득을 봤기 때문에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친구들은 사회에 나가고 취직을 해서도 주구장창 달리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업무능력만큼이나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법도 중요한데 말이다. 나이와 경험이 쌓여 관리자가 되면 미래를 보고 큰 계획을 세운다거나, 인력을 잘 관리하는 등 더 중요한 능력들을 요하게 된다.



한마디로 삶의 단계마다 그때그때 잘해야 하는 것, 필요한 것들이 너무 다르다. 이걸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달리기와 자전거 사이, 그 인생의 환절기에 쉽게 무너지곤 한다. 한방신경정신과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이들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인생이란 참으로 긴 게임이다. 그리고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겪는다. 하지만, 그 실수와 실패가 결국은 가장 큰 공부인 셈이다. 예서 엄마가 눈앞의 서울대 의대 합격보다 예서의 더 긴 인생을 바라보고 힘든 결단을 내렸던 것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용기가 아닌가 싶다.

스카이캐슬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역시나, 예빈이다. 19화에서는 정말 사이다였다. “할머니가 의대 가지 그랬어요?” 하는 대사에서는 짜릿한 통쾌함마저 들었다. 저 정도로 똑똑한 아이는 못본 것 같다. 상상 속에나 있는 캐릭터 아닐까.

우리 아이들도 예빈이처럼 커주면 좋겠는데, 이 또한 욕심이려나.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만큼이나 기대도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제나 결국은 사랑이 이기는, 그런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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