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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4일 (수)

Darkest Hour

Darkest Hour

22-1최승훈 / 한약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학교 교수








“한의약육성법이 명시하고 있듯이 세계 과학기술계가 이룩한 첨단 성과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국내 양의계는 전 세계 의학계의 발전과 성과를 직수입해서 자기화(自己化)하고 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방식과 장치를 작동해야 한다.”



올해 초 3만4000명이라는 매우 저조한 관객 동원을 기록했던 ‘Darkest Hour’라는 영화가 있었다. 국내 상영관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서 이른 아침 아니면 늦은 밤에만 상영했기 때문이다. 국제 영화계에서는 큰 호평을 받았고 처칠(Winston Churchill)로 분한 영국 배우 게리 올드먼(Gary Oldman)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도 거머쥐었다.

‘Darkest Hour’는 1940년 세계 2차 대전 발발 초기, 정확히는 영국의 세계대전 참전 직전의 짧은 시기를 말한다. 당시 여당이던 보수당에선 ‘무솔리니가 중재하는 히틀러와의 평화협상’ 요구가 비등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영국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처칠이 자신의 소속당과 심지어 국왕 조지 6세의 지지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불안정한’ 총리로 선출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처칠을 총리로 임명하면서 평소의 편견과 거부감으로 인해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국왕 조지 6세.

그러나 그는 점차 처칠에게서 진정한 용기와 리더쉽을 읽어낸다. 처칠이 히틀러와의 평화협정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을 때 조지 6세가 친히 찾아와 진심 어린 조언을 한다. “국민에게 가보시오. 그들이 가르쳐 줄 거요.” 이에 처칠은 의회로 향하던 차에서 내려 지하철의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탁상공론과 권력욕에 빠진 정치인들보다도 시민들의 훨씬 강한 애국심과 순수한 용기에 공감하고 그 자신 또한 큰 힘을 얻는다. 바로 내각을 소집하고 의회에서는 끝까지 항전할 것이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한다. 그리고 그의 결단과 용기는 결국 2차 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다.



그럼 우리 한의학에도 ‘Darkest Hour’는 있었을까?

있었다면 언제일까?

일 년이 좀 넘었다. 서울역 회의실에서 열린 한의학 정책 관련 세미나에서 토론자로 참석했던 한양의대 신 모 교수가 “한의계는 지금 아무런 대책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지났습니다. 무슨 특별한 사건이나 원인으로 인해 그런 것이라면 그에 맞는 대책이라도 마련할 텐데, 그야말로 한의계는 전면적으로 속수무책입니다”라고 발언했었다.

상당히 발칙하고 무례한 듯한 그의 발언에 대해 당시 자리를 함께했던 한의계 인사들이 반박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의 진단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고 책망할 기력을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한의학은 삼국시대 중국에서 수입된 이후 고려(高麗)를 거치면서 향약(鄕藥)의 기치를 들었고 ‘의방유취(醫方類聚)’를 거쳐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탄생시켰다. 당시 동아시아 의학의 최고 정점(頂點)을 찍었다. 그러나 제국의 쇠망은 언제나 그 절정에서 시작된다. 마치 ‘Darkest Hour’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조선(朝鮮) 의학(醫學)은 ‘동의보감’이 명말(明末)까지의 중국 의학을 집대성하고 난 다음 청대(淸代)에 이룩한 성과를 더 이상 수입하지 않았다. 예컨대 설진(舌診), 어진(瘀血), 온병(溫病), 변증체계(辨證體系), 중서의회통(中西醫匯通) 등이다.



과연 한의계는 과거 화려했던 시절로의

부활을 꿈꿀 수 있을까?

‘동의보감’의 절대적 권위에 눌려 조선의 의사들은 그 이상의 발전을 추동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정리 요약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방약합편’은 그 전형이다. 그리고 이어진 일제 강점기에 한의학은 바로 아사 가사(假死) 상태에 빠져들었다. 본격적인 ‘Darkest Hour’이다.

한편 우리에게 매우 뼈아픈 역사의 후유증은 한 세대를 넘어가는 일제 식민지배에서 비롯한다. 피식민 지배가 남긴 치명적인 해악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올바른 주체성과 주인의식의 결여로 인해 타자(他者)에게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진정으로 존중받아야 할 타자의 권위에 대한 존경도 없다. 각자도생(各自圖生),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지면서 생긴 구성원간의 불신과 배신과 기회주의. 전 세계적으로 식민통치를 받았던 대부분의 국가가 해방되고 나서도 여전히 과거 식민시대와 비슷한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해방 후 한의사제도가 부활하고 한의과대학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는 한의대에서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학자가 없었다. 더욱이 중국과의 교류가 단절되었던 때라 중단 없이 발전을 거듭해온 한의학의 수입도 불가능했었다. 그러다 보니 초창기 한의대 교과목과 교육 내용은 질적 양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본부터 잘못 자리 잡은 채로 굳어지면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 국내 한의대는 교육, 연구, 임상 등 분야에서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계는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국가 경제 번영, 민족문화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 시원찮은 양의학 등 자체 역량과는 무관한 요인(要因)에 힘입어 20세기 말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런 외적 요인들이 빠지고 뒤집어지면서 한의계는 꺼져가는 거품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잠시 타력(他力)에 의해 ‘Darkest Hour’가 걷히는 듯했었다.



한의계는 여전히 ‘Darkest Hour’에 머물고 있다.

무엇보다 한의학은 의료의 기본 요건인 유효성, 안전성, 경제성, 편의성의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그러한 요건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같은 학문 전통을 가진 중국과 대만을 벤치마킹하고 그들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배우고 가져와야 한다. 우리 한의학은 역사적으로 그렇게 발전을 거듭해왔다. ‘동의보감’이 그렇고 사상의학이 그랬다.

지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동시에 한의약육성법이 명시하고 있듯이 세계 과학기술계가 이룩한 첨단 성과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국내 양의계는 전 세계 의학계의 발전과 성과를 직수입해서 자기화(自己化)하고 있다. 그러니 고립된 한의계가 어찌 그런 양의계를 당해 낼 수 있겠는가? 우리도 그들과 같은 방식과 장치를 작동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드리워진 어둠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처칠처럼 국민에게 가야 한다. 장구(長久)한 세월 우리는 국민과 부침성쇠(浮沈盛衰)를 같이 해오지 않았던가?

“어떤 한의학, 어떤 한의사, 어떤 한의대를 기대하고 원하는가.”, 지금 국민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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