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철 원장(유니드한의원·스포츠한의학회 명예회장)
2018 Volleyball Nations League 대회를 다녀오다
올해부터 새롭게 개편된 ‘Volleyball Nations League’는 16개국이 한 번씩 경기를 가져 승자를 정하는 방식으로 지난 해에 조 편성을 해 home-and-away 경기 방식을 바꾸어 5주간 5개국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하게 된다. 남자팀의 경우, 한 주씩 폴란드, 브라질, 프랑스, 한국, 이란 순으로 긴 비행을 하면서 15개국과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필자는 프랑스만 담당하고 선수들과 함께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비행시간과 시차와의 적응이 선수들 컨디션 조절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이런 부분들이 결국 부상의 악화로 연결되기 때문에 적잖이 신경이 쓰여지는 대회이다.
느림의 미학과 테제베(TGV)
한국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온 후 드골공항서 테제베를 이용해 4시간을 타고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에 도착해서 프랑스 조직위원회에서 준비한 차로 다시 액상프로방스에 도착하니 집을 출발한지 만 24시간이 되었다. 삶을 즐기고 여유롭게 사는 프랑스인들이 고속철도를 개발한 것을 늘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용을 해보니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해가 되는 면도 있었다.
유로 존을 오가는 사람들은 많은 짐을 갖고 여행을 자유롭게 하는데 차로는 거리가 너무 멀지만 비록 짐이 가득한 큰 가방을 갖고도 쉽게 이동 가능하도록 구조로 되어 있어서 여행하는데 불편을 못 느끼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승객 수송 위주의 KTX와는 다른 점이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낯익은 선수들과 대표팀에 처음 선발되어 온 선수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녁 10시에 짐을 풀고 늦은 저녁식사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해치운 후 본업인 선수들의 치료로 바로 들어 갔다. 2주간 선수들 치료를 한 박지훈 원장의 care 덕분에 회복되는 과정의 선수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돌봐야 하는 선수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에 놀랐었다.
새벽의 상쾌한 공기
새벽을 밝히는 여명이 커튼 사이로 들어 오고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에 일어나보니 5시30분. 비록 충분히 수면을 취하지는 못하였지만 너무나 신선한 새벽공기가 몸을 새털처럼 가볍게 만들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난 후 주 경기장으로 최종 연습운동을 하러 갔다. 체육관과 호텔을 오고 가며 보이는 프랑스 남부의 목가적 풍광은 공해로 오염된 눈을 신선케 해 주었는데 특히 폴 세잔(Paul Cezanne)이 그림으로 남겨 더 유명해진 생트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을 멀리서나마 보게 되어 감개가 무량했다.
세계의 벽을 넘기 힘든 하루
드디어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세계 랭킹 9위이면서 작년 이 리그게임 우승국인 프랑스와의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았다. 초반은 한국과 프랑스가 대등한 경기를 펼치면서 가다가 고비마다 한국팀의 연이은 에러가 경기를 어렵게 풀고 가다가 역전을 허용하는 등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부족했다.
앞선 2주간의 6경기까지 합치면 7연패를 기록 중이다. 선수들이 호흡을 맞춘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지 않은 작은 실수들이 고비 고비마다 점수를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어 아픈 결과를 낳았다.
경기는 저녁 8시 45분부터 약 1시간 10여분 만에 간단히 끝났지만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시차적응과 허탈감에 피로가 물밀듯이 엄습하였다. 그러나 부상선수들의 치료는 계속 진행해야 되기 때문에 치료와 상담을 하고 나니 새벽 1시가 훌쩍 넘어갔다.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과 프랑스 요리?
새벽의 공기가 너무 좋아 일찍 일어나 호텔 앞 수영장 옆 산책로를 걷는데 맑은 공기와 더불어 아침 햇살이 매우 따가워 해변에서 선탠을 하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전 가벼운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감독의 집 식구들이 멀리 이탈리아에서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해서 비빔밥을 만들어 주었다.
프랑스 전의 경기 스케줄이 폴란드, 브라질이었는데 브라질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고 음식의 천국이라는 이 곳 프랑스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감독 식구들의 정성이 가득한 비빔밥을 혁대 한 구멍 더 늘어날 정도로 먹고 나니 선수단에 활기가 솟아 선수들의 목소리 톤이 달라질 정도였다.
드디어 저녁 9시에 세르비아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2012년도 올림픽 최종예선전에서 세르비아와 경기를 한 경험이 있어서 필자는 사뭇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 당시 비록 3대1로 지기는 했어도 만만치 않은 경기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3대0 패배. 지긋지긋한 패배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허덕이게 되어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 희망
세계 랭킹 7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대등한 양상으로 진행이 됐으나 역시 한국팀의 실수가 역시 문제였다. 그동안의 경기 내용 중에 가장 좋은 내용이었으나 결과는 셧아웃 3:0 패배. 마지막 희망은 물거품으로 변해 선수들의 어깨는 더욱 쳐져서 애처로웠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 다시 호주 이탈리아 중국과 경기를 해야 한다. 9전 전패로 귀국하는 선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도 팀닥터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이다. 치료를 하면서 선수들의 마음에 다시 희망의 싹을 심어주면서 프랑스의 마지막 날을 마감했다.
에필로그(epilogue)
비록 경기는 3연패를 하였지만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팀을 위해 서비스 정신을 발휘한 오르리 아가씨, 호텔과 경기장을 오가며 파란 언덕과 풍성히 핀 양귀비 꽃, 프로방스의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저절로 새털처럼 날아가게 몸을 힐링 시켜주는 신선한 공기, 양지바른 곳에 수줍게 피어나는 보라색 라벤다, 액상프로방시시내의 세잔느 동상 등 많은 추억을 뒤로 하고 귀국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