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교수
경희대 기후-몸연구소, 한의대 의사학교실
기후의 변화와 기후변화
2024년 여름은 전대미문의 폭염으로 기록되었다. 고공 행진하는 최고기온과 35도를 상회하는 체감온도, 그 고온들이 지속되는 날들의 수 부문에서 지금까지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것은 마치 한 육상선수가 100미터, 200미터, 그리고 장거리인 10,000미터까지 석권한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열대야 일수도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가장 더웠던 해인 1994년과 2018년의 16.5일과 비교해도, 20일을 넘어선 올해 여름의 열대야 일수(20.2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1위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기록들이 기록으로 남을 기간이 얼마일까에 관한 것이다. 앞의 문장들에서 사용했던, “전대미문,” “기록을 갈아치웠다,” “독보적 1위” 등의 수사가 무색하게도, 내년에 또 새로운 기록이 세워질 수 있다. 기후위기 속,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를 넘어 지구비등화(global boiling)에 다다른 지금의 상황에서, 올해의 폭염기록에 놀라는 것이 무의미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 EU 산하 기후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는 올해 북반구의 여름(6월~8월) 기온이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되었다고 발표했다1). 이것은 종전 기록을 경신한 것인데, 가장 더웠던 이전 여름은 바로 작년 여름이었다. 내년에도 새로운 기록이 세워지는 여름을 맞는다면, 날씨에 관한 한 “기록적”이라는 말은 사용하기 힘든 용어가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기후의 변화가 아니라 기후변화의 상황이기 때문에 “기록적”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퇴색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기후의 변화가, 당연히 변화하는 기후를 의미한다면, 이것은 기후위기 시대 이후의 기후변화와 차별화된다. 봄여름에서 가을겨울로, 대한에서 경칩으로, 대서에서 처서로 기후의 변화는 일어났었고, 우리의 옷과 가옥 그리고 일상은 그러한 순조로운 흐름에 맞추어져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사용하는 기후변화는 기후의 변화와 다르다. 이 변화에는 순조로운 흐름이 없다. 갔다가 돌아오는 그리고 다시 가는 모양새를 벗어난다. 여름이었다가 가을이 되는 것과 같은 변화가 아니라, 이 여름 날씨가 가을까지 장악한다.
여름 더위도 한 번은 기록적이었다면, 다음 해는 덜 더운 여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지만, 기후위기 시대의 기후변화는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기 일쑤다. 이것은 호흡이 불규칙한 상황이다.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어야 하는데,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해야 순리인데2) 그것이 없다. 강약과 리듬과 가락이 없는 상황에서 기후 전체가 만들어 내는 하모니가 없다. 상시적 기록 경신의 기후는 불협화음의 괴성과 같다. 귀가 아프고, 몸도 아프고, 지구도 아프다.
최고 기온과 최고 체감온도
기록적 폭염으로 (아직까지는) 기록될 2024년 여름 한 철 동안, 전에 없던 더위만큼 우리는 날씨 뉴스를 자주 접했다. 날씨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날들이 적지 않았다. 날씨 뉴스에서 우리는 두 온도에 대한 이야기를 흔히 들었다. 최고기온과 최고 체감온도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할 때부터 일기예보 뉴스에는 최고기온과 체감온도가 주 테마가 되었다. 아예 체감온도를 내세우는 뉴스도 있었다. “불볕더위 격화, 체감온도 40도 육박”과 같은 날씨 뉴스를 어렵지 않게 접했다.
과거에는 일기예보에서 기온만 발표했지만, 갈수록 체감온도를 중요하게 다룬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기온보다는 체감온도다. 최고기온에는 “기온”을 사용하고 체감온도에는 “온도”를 사용하는 것은, 기온 자체가 공기의 온도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체감하는 기온은 공기의 온도가 아니므로 체감기온이 아니라 체감온도라고 한다.
기온은 백엽상에서 측정되지만, 체감온도는 정해진 공식에 의해 구해진다. 여기서 변수는 습도다. 습구온도와 상대습도를 변수로 해서 공식이 만들어진다. 여름과 겨울 사이 체감온도 공식에 차이가 있는데, 여름과 달리 겨울은 바람이 체감온도의 변수가 된다. 육기(六氣)의 개념으로 여름과 겨울의 체감온도를 다시 살펴보면, 여름의 경우는 풍한서습조화 중, 서와 습을 통해서 체감온도를 계산한 경우라고 한다면, 겨울의 경우에는 한과 풍을 통해서 체감온도를 산출한다. 체감온도는 기상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온도이지만, 기후위기 시대에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 고찰할 부분이 적지 않다.
기후위기 시대의 체감온도
기상청 발표에서는 최고기온과 최고 체감온도 두 온도를 발표하지만, 실제 체감온도는 더 많다. 더위를 더 많이 타는 사람도 있고, 불볕더위에도 별로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같은 체감온도 36도라고 하더라고, 그것이 청년들에게는 견딜만한 기온이라고 한다면, 노년들에게는 치명적인 온도가 될 수 있다. 체감온도 37도에서 습기에 더 취약한 사람이 있고, 작렬하는 햇볕을 더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같은 최고기온 34도라고 하더라도, 도시에서 맞는 34도와 시골에서 맞는 34도는 그 체감온도에서 큰 차이가 있다. 도시 열섬 현상은 최고기온 34도를 못 견디게 체감하게 한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체감되는 상황은 다르다.
집과 다니는 건물마다 지하주차장이 있고, 에어컨이 상시 가동되는 공간에 주로 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여름에도 실외에서 활동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의 경우 체감온도를 체감할 기회가 거의 없다. 자동차 엔진 열이 높이는 지하주차장의 온도만 잠깐 견디면 된다. 하지만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힘들다. 기록적 체감온도를 체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실내라고 해도 같은 실내가 아니다. 필자는 서울의 한 쪽방촌에서 한의사와 한의대생들이 진행하는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한의학의 의료적 도움을 전달하는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다. “온전한(온기를 전하는 한의사들)”이 활동을 하는 종로구의 쪽방촌에는 에어컨을 보유한 건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건물도 있다.
서울시의 지원과 기업체의 기부로 에어컨이 있는 건물에서는, 한여름의 열기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에어컨 냉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더라도, 방마다 개인적으로 에어컨을 보유하는 것은 아니고, 복도에 설치된 공용 에어컨을 사용한다. 말 그대도 쪽방촌의(방을 쪼갠다는 의미에서 왔다고 한다) 작은 방에서 에어컨 기기를 설치할 공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각각의 방에 에어컨이 있다면 실외기를 설치하는 것도 감당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에어컨이 없는 건물도 있다. 가운데 마당이 있고 방들이 그 마당을 둘러싼 구조에서는 공용 에어컨도 설치할 수 없는 경우다. 한국의 가구당 에어컨 보유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에어컨을 보유할 수 없는 집들도 있다.
기록적 폭염으로 고공행진의 기온이 계속되면, 에어컨을 보유한 실내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들은 더 열심히 에어컨을 가동하고, 더위를 피한다. 피할 수 있다.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체감온도는 체감되지 않는 온도다. 하지만 실외에서 활동을 해야하는 사람들, 실내에 있어도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는 사람들은 기록적 체감 온도를 체감하지 않을 수 없다. 체감온도를 체감하는 방식에 이미 기후불평등이 있다.
기후의 변화가 아닌 기후변화가 일상어가 되면서 체감온도는 점점 더 중요한 용어가 되고 있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기후를 체감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체감온도는 기상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온도이지만, 감기(感氣, 기에 감촉됨)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각 상황의 관계 속에서 돌아볼 여지가 생긴다. 체감온도에 사회, 경제, 공간, 건물의 이슈들이 얽힌다. 기후위기 시대에 체감온도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체감온도로 읽을 수 있는 몸, 의료, 사회의 문제가 다수 있다.
(인류세의 한의학35에서 계속)
1) 다음 자료 참조.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409061617001
2) 일음일양지위도 一陰一陽之謂道를 염두에 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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