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가 많은 부모님이 계신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소중한 사람이 노환이나 중병으로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준다. 또 나이를 먹게 되니 점차 죽음이란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톨스토이가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듯이 '죽음'은 '삶'이 있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는 영원한 화두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바닥이다. 또 `죽음의 질'은 주요 40개국 중 32위다. 사망자의 70%가 병원에서 눈을 감고, 병원 사망자 80% 이상이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럽거나 의식 없이 사망한다. 현대의학이 행복하게 죽을 권리를 박탈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책에 실린 인디언의 "태어날 때 나는 울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웃었다. 이제 내가 죽을 때 주변 사람들은 울지만 나는 웃는다." 는 격언은 삶과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읽고 또 읽게 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예비하고 있다. 두렵다고 피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려움을 떨쳐내고 죽음을 맞을 것인가.
김종운 한의사는 평생 환자를 치료해 온 풍부한 경험과 지속적 연구를 통해, 미래의 의학은 인간의 몸이나 마음뿐 아니라 '영혼의 건강'까지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갈파하고 있다.
과학의 셰계에서는 영혼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자연과학의 한 분야인 서양의학도 당연히 영혼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물론 영혼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도 죽음을 다룰수는 있을 것이다. 인체를 물리· 생물학적 존재로만 인식하고 물리· 생물학적 존재의 죽음만을 다루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한의학적 배경을 가지고 생명을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영혼의 존재를 뺀 채 죽음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생명은 몸(精,육체) · 마음(神, 정신) · 영혼(魂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상호간에 氣라고 하는 생명 에너지가 조화롭게 흘러야 건강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 있기 전에 영혼이 있었고 죽음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빠져나가고 다시 영혼이 남는다는 것. 영혼에 기(氣)가 흐르면서 생명이 되고 생명에 기가 빠지면서 영혼만 남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이다."라는 새로운 한의학적 생명관을 제시하여 흥미롭게 설명해 주고 있다. 나는 이점을 매우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옳다고 믿는다.
한의학에서는 "기라고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을 이루는 뿌리(氣爲精神之根蔕)"라고 하였으며, 장자(莊子)는 "기가 모이면 살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다(人之生, 氣之聚也, 聚則生, 散則爲死)"라고 하였다. 이것이 동양에서 삶과 죽음을 보는 원칙이다.
따라서 氣가 왕성하게 활동을 하던 생명체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더 이상 氣가 활동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면 몸이 죽게 되고 따라서 마음도 의지할 곳이 없어 스러지게 된다. 결국 남는 것은 영혼이며 이러한 과정이 생명의 소멸과정이고 죽음이라는 것이다.
만약 생명이 육체와 마음만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면 우리는 죽음과 함께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명이 위에 말한 것처럼 몸, 마음, 영혼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죽음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완전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죽음을 대할 때, “몸과 마음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지만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단지 변화일 뿐이다.”라는 저자의 목소리는 깊은 울림으로 내 마음속에 다가온다.
‘죽음의 본질’에 대한 천착을 통해 생명의 본질이 ‘영혼’에 닿아 있음을 깨달은 김종운 박사는 옛 명의들이 터득한 양생대도(養生大道)를 자기 삶으로 실천하고 싶은 변곡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을 인지하기 어렵다. 저자는 지성과 감각을 개발하고, 명상을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감사하고 수용하는 마음을 통해 영혼을 인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느낌에 충실하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재미’를 추구하며 미소를 잃지 않으면 우리 생명의 가장 고차원인 영혼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죽음에 대한 공부는 생명으로서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정체성의 본질인 영혼의 존재를 인지하고, 영혼의 본성을 깨달아 현재를 의미있게 사는 것에서 끝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에 대비하라는 것은 결국 삶을 제대로 사는 공부를 하라는 얘기다. 더 나아가 고통 없는 죽음, 인격적으로 존중 받는 죽음, 태어날 때 축하받은 것처럼 떠날 때도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축하하는 죽음이 되도록 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결론적으로 영혼의 근육을 키우면 인간답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은 영혼을 연마하는 것이고, 철학함으로써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의 생각도 같다.
좋든 싫든 ‘오래 사는 것’은 이제 인간의 숙명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언제 죽느냐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 품격있는 죽음을 위해 오늘날의 생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진정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조홍건(趙 洪健) 옛날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