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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1일 (토)

세무/노무/법률

알기 쉬운 법률 이야기 01

  • 작성자 : 한의신문
  • 작성일 : 20-09-03 16:39
  • 조회수 : 6,526

김민경 변호사님.jpg

김민경 변호사(대한한방병원협회 법률고문)

 

‘병원서 난동부리는 환자’

의료인은 진료거부금지 의무를 지켜야만 할까? 


“나는 환자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여겨 생명이 다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전력을 다하여 치료하겠나이다…”

한의사라면 한의대 재학 시절 허준 선서를 하며 가슴이 뜨거워진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한의사뿐만 아니라 그 외 의료인들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이팅게일 선서 등을 하며 의료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소명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러한 선서에 담긴 맹세의 내용은 직업적 윤리로서 작용할까요, 아니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의무로서 작용할까요? 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진료비를 내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환자가 고액의 진료비 발생이 예상되는 진료를 요청하는 경우나 지속적으로 난동을 부리는 입원환자의 경우는 어떨까요? 고귀한 소명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고 서약하였으니, 이 환자들을 계속 진료하여야 할까요?

우선 의료법에서는 제15조 제1항에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의료법에서 진료금지의무를 정하고 있으니 앞서 예를 든 환자의 경우에는 계속 진료를 해야 할 법적의무가 의료인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까요?


이상과 현실, 윤리와 법이 충돌하는 문제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상과 현실, 윤리와 법이 충돌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윤리적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해당 조항의 법적 해석을 말씀드림으로써 여러분의 판단에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진료계약은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사법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체결자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의료행위의 공공성을 터잡아 사법상의 기본원칙이 수정되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료인은 진료가 필요한 환자의 요청을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의료인의 직업윤리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윤리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가져와 형벌로써 강제하는 것은 의료인의 직업행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거부를 할 경우 의료인은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자격정지라는 행정처분에 처해질 수 있으므로, 의료인들은 사실상 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오히려 환자들이 진료거부금지 의무에 대한 내용을 더 잘 알고 있어 의료진을 고발하겠다고 하며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난동.jpg


경제적 이유로 진료거부는 정당사유서 배제


더구나 문제는, 진료거부금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 제15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를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일선의 병의원에서는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많이 참고합니다. 

보건복지부는 ‘정당한 사유’의 예시로 ‘시설 및 인력이 없거나, 진료일정 때문에 불가피하거나, 환자 등이 의료인에 대하여 모욕죄·명예훼손죄·폭행죄·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는 상황을 형성하여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행할 수 없도록 한 경우’ 등과 같은 8개 사항을 열거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이유(진료비 체납 등)는 정당한 사유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진료거부와 관련한 판례는 충분히 축적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의료현장에서 의료인이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드물기도 하지만, 혹여 진료를 거부당한 환자는 다른 의료기관에서 원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진료거부 및 진료거부로 인한 문제의 발생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 추측됩니다. 많지는 않지만 법원이 진료거부금지 의무에서의 ‘정당한 사유’에 대하여 판단한 사례가 몇 개 있으므로, 그 판례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원은 ①의사가 타병원에서 응급조치 받은 후 이송되어 온 뇌손상환자에 대하여 수술 후에 집중치료 할 중환자실의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타병원으로의 전원을 권유한 경우(대법원 1992. 10. 27. 선고 92누9180 판결), ②입원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할 필요성이 없어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퇴원을 요구한 경우(서울동부지법 2013. 7. 24. 선고 2012가단 67345판결), ③의료기관 폐업 과정에서 입원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킨 경우(창원지법 2014. 9. 26. 선고 2013구합985판결) 등에는 정당한 사유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④의사가 계류유산 의증이 있는 환자에게 낙태수술을 하기로 하고 수술 준비를 위하여 자궁에 카테터를 넣어 두었으나 의료보험문제로 시비가 있어 다음날 진료를 거부하여 환자가 다른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은 사건에서 의사의 진료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하여 진료거부로 인한 의료법 위반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서울형사지방법원 1981. 7. 2. 선고 80노8696 판결).


진료거부금지 의무에 대한 찬반 논의 계속


필자는 의료인의 진료거부금지 의무를 의료인의 직업윤리 문제에 더욱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윤리의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필자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의료법에서는 의료인의 진료거부금지 의무를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이를 단순히 직업윤리의 문제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법적으로는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료법상 진료거부금지 의무에 대한 찬반 논의가 계속되는 이유는 진료거부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유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인의 진료권 모두를 적절하게 보호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공론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출된 합의안을 기반으로 법령상 명시하게 되면 진료거부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때입니다. 


★ 관련 내용에 대해 궁금하신 점은 이메일(kmklawyer@naver.com)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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