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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6일 (월)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9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29

‘구경’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임상실습
“임상실습의 마지막에 학생에게 남아야 할 것은 ‘많이 보았다’는 기억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해볼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

한상윤 교수님(새 사진).jpg


한상윤 원광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원광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의과대학의 임상실습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들어간다. 학생들은 한방병원의 각 진료과를 돌며 실제 진료 현장을 경험하고, 졸업 후 한의사로서 환자를 마주할 준비를 한다.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의 임상실습 최소시간 기준인 1200시간 이상을 충족하며 열심히 실습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실습시간이 길다는 사실과 학생이 실제로 많이 ‘해보았다’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의미를 갖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우리 대학 한의과대학 학생들의 임상실습 경험과 교육 요구를 분석하여 「From observation to participation: a needs assessment of clinical clerkship in Korean medicine toward competency-based education」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연구에서 조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는데, 임상실습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83.3%로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학생들 가운데 42.9%는 현재의 임상실습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임상실습의 방향 ‘관찰에서 참여로’


만족하지만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이 응답은 얼핏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실습에서 가장 많이 경험한 것은 환자를 직접 문진하거나 진찰하는 일이 아니라, 교수의 진료를 옆에서 지켜보는 ‘환자 관찰’이었다. 실습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상당 부분은 ‘보는 것’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임상현장을 가까이에서 보고 교수의 진료를 경험하는 것 자체는 분명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오랫동안 ‘보는 것’에 머무른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임상실습은 임상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과정이 아니라 학생이 장차 환자를 직접 진료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의 제목을 ‘From observation to participation’, 즉 ‘관찰에서 참여로’라고 붙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의과대학 임상실습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이 짧은 표현 속에 상당 부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관찰은 중요한 학습이다. 숙련된 한의사가 환자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맥을 어떻게 보고, 수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을 중요하게 판단하며, 어떤 근거로 처방이나 침 치료를 선택하는지를 가까이에서 보는 경험은 강의실에서 얻기 어렵다. 특히 교수의 환자 대하는 태도와 의사소통 방식은 책으로 배우기 어려운 중요한 교육 내용이다.


문제는 관찰에서 끝날 때다. 수영을 아무리 오래 구경해도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을 배울 수는 없다. 임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수의 문진을 수십 번 보았다고 해서 처음 만난 환자에게 자연스럽게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침을 놓는 장면을 여러 번 관찰했다고 해서 자신의 손으로 정확하게 술기를 시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단과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내린 판단을 듣는 것과, 환자로부터 직접 정보를 얻고 스스로 가능성을 좁혀 치료계획을 세워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학습이다.


임상실습, 실제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


이번 연구에서 학생들이 가장 큰 교육적 요구를 보인 영역 가운데 하나가 의사소통이었으며, 학생의 40.5%는 임상실습에서 배운 술기를 졸업이후 실제 임상현장에서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학생은 실습에서 술기를 한 번 경험하는 정도에 그쳐 “실제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들은 환자를 직접 문진하거나 진찰해 볼 수 있는 참여형 실습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들은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보고, 틀려보고, 피드백 받고, 다시 해볼 기회를 달라는 요구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임상추론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났다. 학생들은 교수의 치료를 관찰하지만, 왜 그 치료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듣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환자에게 왜 특정 혈위를 선택했는지, 왜 그 처방을 사용했는지, 어떤 정보를 근거로 다른 가능성을 배제했는지가 설명되지 않으면 학생에게 남는 것은 결과뿐이다.


전문가는 많은 판단을 빠르고 자연스럽게 내린다. 오랜 임상경험을 통해 형성된 사고과정이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에게 그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교수에게는 당연한 판단의 연결고리를 학생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임상교육에서는 단순히 자신의 진료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소리 내어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증상 때문에 이것을 의심했고, 이 소견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낮게 보았으며, 그래서 이 치료를 선택했다”고 설명할 때 관찰이 임상추론 학습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의학에서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변증은 여러 증상과 징후를 종합해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가는 임상추론 과정이다. 망문문절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연결해 변증하고 치료방향을 결정하는 사고과정은 단순 암기로 익히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 과정이 교수의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진다면 학생은 처방명과 혈자리만 기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의사 가운데 상당수는 면허 취득 후 별도의 전문의 수련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차진료 현장으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학부 임상실습은 졸업 전에 체계적으로 환자 진료 역량을 연습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졸업 후 처음으로 환자 앞에서 문진과 진찰, 판단과 술기를 연습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무조건 실제 진료를 맡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환자 안전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무면허 의료행위에 관한 법적 제한 역시 존재한다. 필요한 것은 ‘관찰 아니면 독립 진료’라는 양자택일보다는 지도교수의 감독 아래 학생의 수준에 맞게 참여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 가는 구조이다.


처음에는 진료를 관찰하고, 다음에는 환자의 병력을 정리해 보고, 이후에는 일부 문진을 직접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모의환자를 대상으로 충분히 연습한 술기는 감독 아래 제한적으로 적용해 볼 수도 있다. 학생이 직접 환자의 문제를 정리하고 진단과 치료계획을 제시한 뒤 교수의 판단과 비교하며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다. 핵심은 학생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맡길 것인지 명확히 정하고, 그 역량이 향상됨에 따라 책임의 수준을 조금씩 높여 가는 것이다.


반복도 중요하다. 술기를 한 번 해보는 것은 ‘경험’일 수 있지만 곧바로 ‘역량’이 되지는 않는다. 충분히 반복하고, 관찰받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수행해 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OSCE나 CPX 역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이런 반복 학습을 촉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실습을 마치고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각 진료과에 따라 학생들의 실습 경험에 차이가 컸다는 점이다. 어떤 곳에서는 환자를 비교적 많이 관찰하고 교수와 활발히 질문을 주고받는 반면, 어떤 곳에서는 실제 환자를 거의 접하지 못하기도 했다. 임상실습의 질이 어느 병원, 어느 과, 어느 교수를 만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면 학생들이 졸업할 때 갖추게 되는 역량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역량중심교육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얼마나 오래 실습했는가’보다 ‘실습을 마치고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1200시간이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통해 학생이 환자에게 질문할 수 있는지, 필요한 진찰을 수행할 수 있는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자신의 치료계획을 설명할 수 있는지이다. 


임상실습의 풍경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환자의 동의, 법적 문제, 교수의 진료 부담, 학생 수와 교육 공간 등 현실적인 제약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임상실습의 목적을 ‘임상현장을 보여주는 것’에 둘 것인지, ‘학생이 진료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에 둘 것인지는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임상실습의 마지막에 학생에게 남아야 할 것은 ‘많이 보았다’는 기억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해볼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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