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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7일 (월)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 19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 19

효능 정의가 한의학 과학화의 출발점이다
― 청열사화로 본 효능과 주치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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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 교수

(주)뉴메드 대표이사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글에서는 계지의 효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계지의 발한해기, 온경통맥, 조양화기 같은 효능은 처음부터 『신농본초경』에 그대로 있었던 말이 아니라, 처방 속에서 계지가 맡은 역할을 후대 본초학이 다시 정리한 말이었다.


이것은 계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본초학 전체와 관계되는 문제다. 우리는 한약의 효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청열사화, 청열해독, 활혈거어, 대보원기, 온경통맥 같은 말을 배웠지만,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치료하는 효능인지 묻는다면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한의사에게 “청열사화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대개 “열을 식히고 화를 꺼 주는 것”이라고 답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만 알면 석고의 청열사화와 지모의 청열사화를 이해할 수 없다. 황련, 금은화, 생지황과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하기 어렵다. 모두 열을 식히는 약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효능은 글자풀이가 아니다. 효능은 약재의 한의학적 약리작용을 정리한 말이다. 그리고 그 작용은 반드시 주치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어떤 효능이 있다면 그 효능이 어떤 병증을 치료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효능은 암기할 단어일 뿐이다.


청열사화는 모든 열을 내리는 말이 아니다


청열사화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고열, 더 정확히 말하면 실열을 치료하는 효능이다. 여기서 고열은 열이 충만하여 밖으로 드러난 병태를 가리킨다. 고열과 번갈이 있고, 땀이 나며, 맥이 크고 힘 있는 백호탕증이 그 전형이다.


다른 하나는 장부열 또는 장부화다. 열이 폐로 들어가면 폐화가 되어 해수가 나타나고, 간으로 들어가면 간화로 목적종통이 나타난다. 심으로 들어가면 심화로 인한 불면, 불안, 심계, 정충이 나타나고, 위로 들어가면 위열이 된다. 신열은 신허열과 구분되므로 여기에 넣지 않는다.

그러므로 청열사화는 단순히 “열을 내리는 효능”이 아니다. 고열 또는 장부열을 치료하는 효능이라고 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청고열, 청폐지해, 청간명목, 청위생진처럼 나누어 설명할 수도 있다. 


효능어는 역사 속에서 정리되어 왔다


이런 효능어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전 본초에는 오늘날 교과서처럼 효능과 주치가 나뉘어 있지 않았다. 『신농본초경』을 보면 “무엇을 주한다”는 문장 안에 증상, 병명, 작용, 오래 먹었을 때의 효과가 함께 들어 있다. 고전의 주치는 오늘날의 효능표가 아니었다.


후대로 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금원대 이후 의학 이론이 정교해지고, 명청대 본초를 거치면서 청열, 사화, 해독, 양혈, 보중, 익기 같은 말이 더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오늘날 교과서식 효능 체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고전에는 재료가 있었고, 후대 본초학은 그것을 다시 정리했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형태로 굳어진 것은 1950년대 중반 중국에서 중약학 교육 체계를 세우는 과정에서였다. 대량 교육에는 통일된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00년 북경중의약대학을 방문했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안정화(顔正華) 선생은 자신이 그 작업에 참여했다고 말씀하셨다. 청열약을 청열사화약, 청열조습약, 청열해독약, 청열량혈약, 청허열약으로 나누어 가르치는 방식도 이 흐름 속에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이 흐름을 뒤늦게 받았다. 내가 학생이던 1980년대 초의 본초학은 청대 『본초비요』의 효능으로 배웠고, 1993년 교과서에 와서 중국의 효능 체계가 본격적으로 실렸다. 그러다 보니 그 이전에 본초를 배운 세대와 이후에 배운 세대의 효능 지식이 같지 않다.


효능어는 고전 그대로도 아니고, 현대에 와서 마음대로 만든 말도 아니다. 고전의 주치, 처방 경험, 병기 이론을 후대 본초학이 교육 가능한 언어로 다시 정리한 말이다. 어느 시대의 본초를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다만 오늘날 교육과 임상에서 함께 쓰는 공통 언어가 되려면, 효능과 주치가 원칙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김호철 교수님2.jpg

 


같은 효능은 같은 주치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이 있다. 같은 효능은 원칙적으로 같은 주치를 가져야 한다. 마황에도 산한해표가 있고 계지에도 산한해표가 있으며 소엽에도 산한해표가 있다면, 산한해표라는 효능이 가리키는 주치는 같아야 한다. 물론 강하거나 약할 수는 있다. 마황은 지해평천과 이수소종을 함께 가지기 때문에 계지와 달라 보인다. 그러나 산한해표라는 효능 자체의 주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청열사화도 마찬가지다. 석고의 청열사화와 지모의 청열사화가 서로 다른 주치를 가진다면 같은 효능이라고 할 수 없다. 청열사화라면 고열 또는 장부열을 치료하는 공통된 주치 범위가 있어야 한다. 다만 지모에는 청허열이 더해지고, 교과서에서 청열조습약으로 분류하는 황련에는 청열조습과 청열해독이 더해지기 때문에 실제 쓰임이 갈라진다. 약재의 차이는 같은 효능을 제각각 다르게 풀이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효능의 강약과 효력, 그리고 함께 가진 다른 효능에서 설명해야 한다.


번역이 정확하지 않으면 실험은 한의학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이 문제는 교육과 임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의학을 과학화하고 객관화하려 할 때 더 중요해진다. 실험은 환원론적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혈압이 몇 mmHg 떨어졌는지, 체온이 몇 도 내려갔는지, 특정 염증매개물질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본다. 그러나 한의학의 효능은 전체적인 병증과 임상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대부분의 효능은 그 자체로는 용량-반응 곡선의 종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한약을 실험하려면 한의학의 효능을 현대 실험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번역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청열사화는 소염, 활혈은 혈액순환 개선, 보익은 면역증강이라는 식이다. 이렇게 놓고 실험하면 결과는 나온다. 그러나 염증매개물질이 줄었다는 결과가 곧 청열사화를 설명한 것은 아니다.


청열사화를 소염으로만 보면 석고, 황련, 금은화, 생지황이 모두 비슷한 항염증 약재가 된다. 그러나 이 약들은 각각 청열사화, 청열조습, 청열해독, 청열량혈에 속한다. 모두 열을 다루지만 같은 열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활혈도 마찬가지다. 혈류가 증가했다고 해서 활혈거어를 설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한약을 대상으로 적지 않은 시간과 연구비가 들어간 실험이 쌓였다. 그러나 출발점의 번역이 정확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특정 약재나 성분이 어떤 지표를 움직였다는 자료로 남을 뿐, 청열사화나 활혈거어라는 효능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한의학의 객관화와 과학화는 실험의 수가 늘어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을 검증한 것인지 한의학의 언어로 되돌려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효능의 주치를 아는 것이 본초학의 첫걸음이다


본초학에서 효능을 안다는 것은 효능 이름을 많이 외운다는 뜻이 아니다. 그 효능이 무엇을 치료하는 말인지, 곧 주치를 아는 것이다. 산한해표라면 발열·오한·두통·신통을 치료하는 효능이고, 청열사화라면 고열과 장부열을 치료하는 효능이다. 청열량혈은 혈열로 인한 발반과 출혈을 치료하고, 청열해독은 열독으로 생긴 옹종·창양·인후종통 등을 치료한다.


주치가 빠지면 효능은 막연한 말이 된다. 약재의 차이도 흐려지고, 실험 결과를 한의학적으로 해석할 기준도 사라진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효능 이름을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미 쓰고 있는 효능이 어떤 주치를 치료하는 말인지 정확히 밝히는 일이다. 본초학의 정리도, 임상의 정밀화도, 한약 연구의 객관화도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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