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박현수 학생의 ‘23.5℃’는 제5회 동제신춘문예 소설 부문 우수작으로, 일상의 공간인 기숙사 방을 배경으로 청춘의 내면과 삶의 온도를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본란에서는 차가움과 온기의 대비를 통해 청춘의 좌절과 자기 수용의 과정을 담아낸 작품을 소개한다.

23.5℃
도어락이 해제되는 전자음이 복도의 정적을 날카롭게 갈랐다. 삐비빅. 둔탁한 현관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것은 온기가 아닌, 폐부 깊숙한 곳을 찌르는 서늘한 냉기였다.
6평. 회사 기숙사라는 이름으로 내게 할당된 이 공간의 면적이다. 현관에서 침대까지 세 걸음,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두 걸음. 그 짧은 동선 안에 나의 30대 초반이 구겨져 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뉘는 곳이라기보다는, 그저 잠시 보관되어지는 물류 창고에 가까운 느낌이다.
금요일 밤. 일주일간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온 안식처치곤 너무나 가혹한 온도였다. 신발을 벗고 내디딘 첫 발자국은 냉랭할 뿐, 나는 이내 습관처럼 벽에 붙은 보일러 컨트롤러를 확인했다. 녹색 백라이트가 껌뻑이며 숫자를 토해냈다.
‘설정 온도 25℃’
‘현재 온도 20℃’
변함이 없다. 오전 내내 가동했고, 출근하면서도 외출 모드가 아닌 난방 모드로 켜두고 나갔음에도 숫자는 요지부동이었다. 마치 파업을 선언한 노동자처럼, 혹은 붓을 꺾어버린 5년 전의 나처럼, 보일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하........”
입김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숨에는 분명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외투를 벗어 행거에 걸었다. 바스락거리는 패딩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씻어야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욕실의 타일 바닥은 얼음장일 게 뻔했기에. 나는 씻는 것을 유보하고 침대 위, 웅크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불은 차가웠다. 나의 체온이 이불을 데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짧은 유예의 시간 동안, 나는 사색의 바다에 잠긴다. 이 좁고 네모난 방은 거대한 수조다. 그리고 나는 가라앉지 못해 둥둥 떠 있는 부유물이다.
바닥은 깔끔했다.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는 강박적인 청소 덕분이었다. 그것은 내가 이 방에서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온도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청결만은 내 의지대로 되었다. 대학 시절, 캔버스 위에 젯소를 바르고 또 바르며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상태를 만들던 습관이 바닥 청소로 전이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불 속에서 고개만 내민 채 맞은편 벽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흰 벽지. 본래 꿈이 화가였던 남자의 방치고는 지나치게 삭막했다. 그림 한 점, 스케치 한 장 없다. 스케치북을 덮고 붓을 꺾었을 때, 나는 색채를 버린 대신 숫자를 택했다. 영업 실적, 보고서의 페이지 수, 통장의 잔고, 그리고 지금 저 빌어먹을 보일러 온도까지.
벽지에 미세한 주름이 잡혀있었다. 습기 때문인지 시공 불량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주름이 거슬렸다. 주름. 그것은 시간의 흔적이다. 접혀버린 가능성의 은유였다. 내 미간에도, 그리고 내가 포기해 버린 캔버스 위에도 보이지 않는 주름이 져 있었다.
진지하게 그림을 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색 하나, 선 하나에 우주를 담으려 했던 치기 어린 진지함. 하지만 그 진지함은 어느 순간 ‘얽매임’이 되었다. 더 잘 그려야 한다는 욕심,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그러지 못한 결과. 그것이 나를 짓눌렀다. 슬럼프는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이 아니었다. 화룡점정이 아닌 용두사미로 끝난, 욕심의 무게로 끝내 무너진 재능의 지반이었을 뿐.
졸업 후 입시 미술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들의 기계적인 붓놀림 속에서 나를 보았을 때, 나는 구토감을 느꼈다. 그리고 도망쳤다. 미술과 무관한 중견기업 영업직. 그것이 나의 도피처였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더니, 도망친 곳에는 추위만이 가득했다.
추위는 사람을 비굴하게 만든다. 겨울을 맞이하더라도 나는 이 단열 잘 된 신축 기숙사에서 반바지와 반팔 차림으로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11월이 지나고 12월의 문턱을 넘으면서, 밤은 늘 추웠다. 해가 지면 이 방은 난방이 무색한 공간이 된다.
일주일 전부터 나의 실내복은 급격한 진화를 겪었다. 반바지 반팔에서, 양말에 반바지와 반팔로. 종아리가 시려오자, 양말에 긴바지와 반팔로. 그리고 어젯밤, 나는 기어코 양말에 긴바지, 긴팔 티셔츠까지 껴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수면 양말까지 신을까 고민하다가 그건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관두었다.
“온전한 나의 온기로 달을 보내고 해를 맞이하고자 했던 마음도, 추위 앞에서는 객기에 지나지 않았던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텅 빈 방에 낮게 깔렸다. 보이지 않는 20℃의 벽. 보일러 설정 온도를 마무리 올려도 실내 온도는 20℃에서 멈춰 있었다. 되려 25℃를 희망하는 나의 욕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밤이 깊어지면 18℃까지 떨어졌다.
직장인의 비애는 집에 문제가 생겨도 직접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나는 결국 근무 중에 짬을 내어 관리실에 연락을 취했고, 관리 기사님은 내가 없는 빈 방을 다녀갔다.
첫 번째 방문은 지난주 화요일이었다.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 문자를 확인했다.
[대리님, 보일러 순환 모터 쪽엔 이상이 없네요. 배관에 공기가 좀 차서 뺐습니다. 이제 관찮을 겁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답장을 보냈다.
[네,바쁘신데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날 밤, 퇴근 후 확인한 온도는 여전히 20℃였다.
두 번째 방문은 목요일이었다.
[컨트롤러 센서 오류일 수 있어 교체해두었습니다. 지켜보시죠.]
회의 도중 온 문자였다.
[네,감사합니다.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나는 책상 밑으로 몰래 답장을 보내며 또다시 고개를 숙였지만, 방은 여전히 20℃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오늘, 금요일 오전. 세 번째 문의를 남겼다. 퇴근 무렵 도착한 답장.
[오후에 방문하여 점검 마쳤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세 번째 방문, 세 번째 감사. 나의 감사는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을까. 나는 예의 바른 사회인의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끓어오르고 있었다. 대체 왜? 왜 나만? 옆 동 동기 녀석은 더워서 반팔만 입고 지낸다고 했다. 왜 내 방만 이 모양인가. 이놈의 방구석은 마치 나를 닮았다. 남들은 쉽게 도달하는 온도에, 죽어라 애를 써도 닿지 못하는 나를.
화가 치밀었다가, 서글퍼졌다가, 다시 무기력해졌다. 이 감정의 파고는 사해(死海)의 부력처럼 나를 둥둥 띄워 놓았다. 가라앉아 쉬고 싶은데, 소금기 가득한 현실이 억지로 수면 위로 밀어 올리는 기분.
나는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어둠 속에서 나는 보일러를 생각했다. 금요일 밤, 모두가 불타는 밤을 보낼 때 나는 식어가는 방구석에서 20℃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도무지 20℃에서 오를 생각이 없던 너. 그 모습이 참 고집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20대 초반의 나 같았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를 거부하고, 나만의 온도를 고집하던 시절. 교수님이 원하던 화풍을 거부하고, 선배들이 조언하던 입선 요령을 무시한 채, 오로지 내가 느끼는 감각만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그때. 그것은 영원한 젊음의 순간을 믿는 자만심이었고, 청춘의 특권과도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의 고집은 ‘개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미숙함’으로 치부되었다. 결국 나는 꺾였다. 아니, 스스로 부러뜨렸다. 그렇게 사회로 나와 회사 기숙사라는 규격화된 공간에 들어왔건만, 이 공간마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흘러간다. 내 얼굴엔 보이지 않는 주름이 늘어가고, 마음엔 미련이라는 찌꺼기가 쌓인다. 보일러가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애쓰고 있는 걸까, 아니면 헛돌고 있는 걸까.
지친 몸은 추위 속에서도 수면을 요구했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뜨니, 커튼 틈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주말이었다.
그런데 공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어젯밤과는 다른 뉘앙스. 코끝이 시리지 않았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발이 덜 차가웠다. 나는 부스스 몸을 일으켜 반사적으로 컨트롤러를 확인했다.
‘현재 온도 23.5℃’
눈을 의심했다. 어젯밤 20℃에 머물러 나를 절망케 했던 숫자가, 하룻밤 사이에 21℃의 벽을 넘어 23.5℃를 가리키고 있었다. 고작 3.5℃의 차이. 하지만 그 3.5℃가 만들어낸 공기는 완전히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밤새 날카롭던 냉기가 둥글게 다듬어져 있었다.
“올랐네......”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일주일. 세 번의 문의와 세 번의 점검. 기나긴 과정을 통해 얻어낸 내 방의 온도. 주말의 늦잠과 함께 맞이한 인사는 고작 23.5℃였지만, 그것은 어떤 위로보다 따뜻했다. 양말, 긴 바지, 긴팔로 꽁꽁 싸매고 잠들었던 지난밤의 추위가 무색하리만큼, 방 안은 훈훈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디뎠다. 차가움 대신 미지근한 온기가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딱딱한 바닥이 등뼈를 눌러왔지만, 따뜻해서 좋았다.
그때,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세 번째 감사에 대한 답장이었다.
[어제 낮에 해당 호실과 아래층 사이의 배관 점검 및 청소를 진행했습니다. 아마 이제는 온도가 좀 오를 겁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나는 문자의 뒷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해당 호실은 건물의 가장 끝 쪽, 북향이라 일조량이 적어 온도 상승이 다른 호실보다 더딜 수 있습니다. 단열은 잘 되어 있으니, 온도가 한번 오르면 잘 식지는 앉을 겁니다. 그럼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북향이라 온도 상승이 더딜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었다. 북향. 해가 들지 않는 방. 그래서 데워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으로 직접적인 햇살은 들어오지 않지만, 북향 특유의 은은하고 차분한 산란광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너를 청춘의 고집에 대입하고,나의 실패에 투영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건 스스로를 비추던 거울이었을 뿐이다.
너는 고장 난 게 아니었다. 너는 나를 거부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너는 북향이어서,해를 등지고 있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대신 한 번 따뜻해지면 쉽게 식지 않는다는 그 말처럼, 너는 밤새 묵묵히 그 온기를 품으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20대도, 나의 그림도 그랬을까. 재능이 없어서, 실패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북향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서 조금 더뎠던 것은 아닐까. 남들처럼 빠르게 끓어오르지 못했지만, 한 번 품은 열정은 쉽게 식지 않았던, 그런 둔한 재능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옷을 하나씩 벗었다. 답답했던 긴팔 티셔츠를 벗고, 긴바지를 벗고, 양말을 벗었다. 다시 반팔과 반바지 차림이 되었다. 살갗에 닿는 23.5℃의 공기가 부드러웠다.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웅크리지 않았다. 주말 오전의 여유를 만끽하며 몸을 길게 펴고 누웠다. 침대는 사해(死海)다. 높은 염도의 물이 나를 띄운다.직장 생활의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 지나간 꿈에 대한 미련.. 그 모든 소금기들이 오히려 나를 가라앉지 않게 지탱해 주는 부력이 된다.
북향의 방. 햇살이 들이치지 않아 어두침침한 곳이라 여겼던 이곳이, 이제는 다르게 느껴졌다. 은은한 그늘이 있는 곳. 직사광선에 색이 바라지 않고, 본연의 색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곳. 그래서 화가들의 아틀리에는 북향이 많다고 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포기한 내가 가장 그림을 그리기 좋은 방에 누워있다.
“23.5....”
적당하다. 너무 뜨거워서 데일 염려도 없고, 너무 차가워서 얼어붙을 걱정도 없는 온도. 어쩌면 지금의 내 삶도 이 온도 쯤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화가라는 뜨거운 꿈은 25℃를 향해 있었지만, 현실의 나는 23.5℃에서 안정을 찾았다. 이것은 타협일까, 아니면 적응일까.
상관없다. 적어도 오늘 아침은 춥지 않으니까. 나는 늦게 깨달은 나의 룸메이트에게,소중하고 더딘 이 공간에게 속삭였다.
“그래, 천천히 가자. 우리 둘 다 북향이니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주름은 늘겠지만, 그 주름 사이사이에 온기가 스며들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사색의 바다 위로, 따뜻한 부력이 나를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