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가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정확한 워딩으로 표현하자면, AI에 의해 대학은 교육 개혁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너무 급격하게 변화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에 몸담고 있는 나이가 많이 차오른 교수의 입장에서 이러한 흐름은 거스릴 수 없는 도도한 순류라고 생각하게 된다.
AI에 의해 세계적으로 형성된 대학 교육 페러다임의 변화 요구를 바라보면서 그 변화의 본질적 의미를 짚어본다.
삶을 살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며 살아왔지만 인간에게는 변화를 싫어하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필자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평생 살면서 경험한 변화 가운데 인공지능이 정말로 가장 ‘큰 변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커지고 있다. 대학의 교육자로서, 특히 한의학을 교육하는 교육 기관에 몸 담고 있는 입장에서 이러한 사회의 거대한 변화에서 우리의 대학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
AI의 장점은 인간의 잠재력을 키워주어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AI의 ‘융합적 특성’에서부터 출발한다.
한의학의 입장에서 ‘융합적 특성’을 극대화하여 창의성을 극대화시켜 학문적 성취를 크게 이룬 인물이 누구일까 생각해보니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떠오른다. 정약용은 과학과 경학을 융합하여 거중기를 개발해 수원 화성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융합하여 유교적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가 경영 시스템의 설계했다.
한의학과 관련된 측면을 살펴본다.
먼저, 정약용은 법학과 한의학의 융합을 통해 생명존중사상을 강조했다. 이것은 『흠흠신서』에서 억울한 옥살이가 없도록 과학적인 증거 수집과 합리적인 추론을 강조한 것에서 읽어볼 수 있다.
둘째, 정약용은 유학자이면서 한의학자의 입장을 견지하여 『마과회통』이라는 전염병 치료 전문서적을 간행하여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것은 유학과 한의학의 융합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필자가 2009년 『마과회통』 번역 작업에 참여했던 경험(2009년 현대실학사에서 김남일, 안상우, 정해렴 역주로 출판)으로 살펴볼 때, 이 책은 정약용의 융합적 창의성의 결과물이다.
셋째, 정약용의 한의학 중심의 학제간의 융합은 그의 명저 『의령(醫零)』에 독특하게 나타난다. 2019년 10년의 작업 끝에 출판된 『다산학사전』(다산학술문화재단, 2019)의 집필자의 한사람으로 선정되어 활동하면서 정약용의 의학적 노력을 살펴본 필자의 입장에서 『의령』은 그의 융복합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한의학 서적이다.
『의령』은 한의학의 기초 이론에 대한 논평을 담고 있는 정약용의 저작이다. 담고 있는 글의 제목을 중심으로 본다면, ‘六氣論’(오운육기학설의 비판), ‘外感論’(외감학설에 대한 자신의 견해), ‘裏證論’(기존의 內傷學說에 대한 비판), ‘虛實論’(오장육부의 허실에 대한 기존의 학설에 대한 비판), ‘非風論’(기존의 중풍 판단에 대한 증상 인식의 반대 논증), ‘劑量論’(조선과 중국의 약제의 차이에 대한 주장), ‘時令論’(여름과 겨울의 인체 상태에 대한 자신의 견해), ‘近視論’(근시와 원시에 대한 기존 인식의 근본적인 비판), ‘人面瘡論’(인면창이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 부스럼이라는 설을 비판한 것) 등이다. 이외에도 많은 글들이 있지만 지면 관계로 생략한다.
이와 같이 정약용의 학문 활동은 현재 대학에서의 학제간의 융합, 학문간의 간극 극복 등의 난제를 AI라는 도구를 통해서 발전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정약용이 학습하고 정리한 한의학, 사회과학, 법학, 철학, 역사학, 천문학, 지리학, 경제학, 생명과학 등 넓은 분야의 스펙을 고려할 때 한의학 교육자의 입장에서 AI형 창발형 교육자 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로 평가된다.
정약용의 표준 영정과 필자가 번역자로 참여한 마과회통과 다산학술문화재단에서 편찬한 다산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