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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신미숙 여의도 책방-58

신미숙 여의도 책방-58

명상과 몽상 사이

신미숙02.jpg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크러쉬(Crush)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2016년 5월 한강 멍 때리기 대회에서 90분 동안 목석 같은 자세를 유지한 크러쉬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뉴스 덕분이었다. 멍 때리기 대회? 그 때만해도 생소했다. 요즘에야 물멍, 불멍, 숲멍 등등 온갖 멍 때리기가 다양하게 분화되어 힐링의 한 장르로 추천되기도 하지만 40∼50대들이 청소년기였던 그 시절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는 학교에서는 “거기 멍 때리고 있는 사람 누구냐?”라는 야단을, 집에서는 “숙제 다 했냐? 책이라도 봐라. 아니면 방청소라도 하든가!”라며 등짝스매싱을 피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빈둥빈둥은 어쩌면 몽상과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기 딱 좋은 막간의 자유 시간이었는데, 그 시대 멍 때리기는 결코 칭찬받지 못할 일이었다. 


어린 시절 꽤 많은 시간을 독서와 독서 사이사이의 긴 몽상으로 채웠다는 한강 작가님의 인터뷰기사를 떠올리면 누군가에게는 몽상이 창의력의 산실일 수도 있었겠다. 한강님이 몰고온 문학열풍은 분명히 짧겠지만 젊은 세대에는 다른 방식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듯하다.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클래식한 표현 대신 독서와 기록을 즐기는 사람들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텍스트 힙(text hip)’이라는 현상이 최근 여러 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커피멍이든 카페멍이든 책멍이든 텍스트 힙이든 다 좋다. 모두가 스마트폰에 심신을 의탁하고 있는 흔한 풍경 속에서 그 누구라도 책을 펼쳐든 모습은 귀하고 보기 좋은 건 사실이니까. 


“누군가에게는 몽상이 창의력의 산실이 될 수도”


N잡러나 멀티태스커는 효율과 능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빨리빨리 정신을 실천하는 근면 성실 한국인의 또 다른 이름으로 통용된다. 극과 극은 통하고 한 분야의 극점은 정반대의 다른 극점에 극적 현상을 유발한다. 수초만에 수십가지 일들을 동시에 해내는 수많은 분야의 초능력자들이 쏟아지는 요즘같은 시대에 그저 멍 때리기만 해도 기억력과 창의력을 높여준다는 건강섹션의 기사 몇 줄은 우리 모두에게 잠시나마 캔커피 광고 속의 한 줄기 산들바람같은 나긋나긋함을 선사한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최신작 『관조하는 삶』(김영사, 2024년 10월)에서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의도와 목적’을 띤 활동을 멈추고(무위無爲), 그 순간 ‘마법’처럼 드러나는 세계의 참모습을 바라볼 것(관조觀照)을 권유하기도 한다. 바쁨의 미덕이 칭송받고 명상이나 몽상의 여유를 가지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무위나 관조는 사치일 수도 있지만 11월 이 즈음의 천기와 상응하는 액티비티를 고르라면 활동적인 무드와는 거리가 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이 아닐까 싶다. 


『명상으로 숨 가다듬으니 차분해지더라…기분 아닌 과학이었다』(한겨레신문, 곽노필 기자, 2023년 4월25일)에 인용된 논문에 의하면 명상의 과학적 근거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워싱턴대 의대 방사선과의 니코 도센바흐(Nico Dosenbach) 교수와 에반 고든(Evan Gordon) 교수는 2023년 4월20일 『Nature』에 “대뇌 일차운동피질(primary motor cortex)에는 단순히 신체 각 부분을 움직이는 영역과 함께 여러 근육이 같이 움직이는 계획적인 동작이나 인체 생리작용을 조절하는 네트워크도 있음을 뇌영상 연구로 알아냈다”고 밝혔다(https://doi.org/10.1038/s41586-023-05964-2). 에반 고든 교수는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호흡을 통해 몸을 진정시키면 마음도 차분해진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 연결점을 찾았다”고 말했고, 도센바흐 교수는 “명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뇌 영역의 일부가 사고와 계획, 혈압과 심장 박동과 같은 비자발적 신체 기능 제어에 관여하는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명상을 통해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진정시키면 혈압과 심장박동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의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한 연구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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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엔카의 위빳사나 10일 코스』

(윌리엄 하트, 김영사, 2017년 7월)


Satya Narayan Goen ka(1924∼2013)는 세계적인 위빳사나 명상 지도자이다. 31살에 위빳사나 명상을 만났고 스승 곁에서 14년 동안 수련했다. 고엔카는 가르침의 대가로 물질적 보상을 받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세상에 명상을 가르친 사람’으로 불리우고 있다.

해탈은 토론이 아닌 수행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다. 


명상은, 특히 위빳사나 수행은 마음의 심층을 다루는 진지한 작업이다. 

호흡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하는 사람은 정신적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위빳사나는 죽음의 기술, 즉 평화롭고 조화롭게 죽는 방법을 가르친다. 


신체 안에 나타나는 모든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을 계발해야만 하고, 동시에 그 감각에 대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알아차림과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나은 마음의 휴식은 없다. 

최상의 행복이란 삶에서 다양한 흥망성쇠를 마주함에도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그 어떤 편견도 가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관찰하는 것, 표면적 진리를 관찰하여 궁극적 진리에 이르는 것, 이것이 위빳사나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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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난 붓다』

(마크 엡스타인, 한문화, 2019년 9월)


마크 엡스타인은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학자이다. 20대 초부터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심리학과 명상에 대한 공부를 병행해 왔다. 

당신이 선택한 명상이 집중 명상이라면 주의력을 호흡과 같은 단일 대상에 고정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명상은 결국 마음을 바라보는 훈련이다. 


나는 내 진료가 지나치게 구체적인 조언이나 충고 없이도 사물을 보는 신선한 안목을 제공해 주길 바란다. 

올바른 알아차림은 성공적인 심리 치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조급함을 누그러뜨려 준다. 

알아차림을 위해 과도한 노력을 쏟아 붓는 명상가들은 그들 자신을 초조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의 인격은 어린 시절에 받은 영향력으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 용서의 가능성이 있다. 

‘삶을 완전히 살아낸다’는 건 무슨 뜻일까?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한 삶을 방해하는 건 우리 자아의 이기적 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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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앤디 퍼디컴, 스노우폭스북스, 2020년 2월)


앤디 퍼디컴은 명상법과 마음챙김 전문가로 스포츠과학을 전공하던 중 히말라야로 가서 명상 공부를 시작하고 인도 북부에서 티베트 불교 승려가 되었다가 2004년 환속하고 헤드스페이스로 완성되는 개념의 초안을 마련했다.

명상은 만능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마음을 위한 아스피린이다. 하루 종일 바로 그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생각해보라. 마음을 사용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라도 있는가? 따라서 매일 약간의 시간이라도 내서 마음을 수행하고 마음의 웰빙을 유지하는 것은 필수적인 무엇에 해당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명상은 한 걸음 물러나 마음이 제 나름의 속도와 제 나름의 방식으로 긴장을 풀게 놔두는 것이다. 

알아차림과 객관적 관점을 갖는 능력은 우리의 내면에 이미 존재한다. 

명상에서는 목적지와 여정이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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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뇌』

(대니얼골먼 × 리처드 데이비드슨, 김영사, 2022년 4월)


대니얼 골먼은 심리학자이자 경영사상가로 감성지수(EQ;Emotional Quotient))라는 개념을 만들어 IQ보다 EQ가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공저자인 리처드 데이비드슨은 명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자이다.

산만하지 않은 마음은 과학과 명상이 공유하는 목표인 인간의 고통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통증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면 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의 불협화음에 불과한 통증에 ‘나’라는 감각을 더하여 ‘나의 통증’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몸의 감각을 마음챙김으로 꾸준히 살펴보면 꼬집힘은 흥미와 평정심을 가지고 분석할 수 있는 경험이 된다. 혐오감이 사라지고 통증이 욱신거림, 열기, 강도 등 더 미묘한 특질들로 쪼개진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다. 

경험 많은 명상 수련자들의 경우 하루 동안의 집중적인 마음 챙김 수련만으로도 염증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하향 조절되었다. 


연민 명상을 할 때 수행자들의 뇌는 몸, 특히 심장과 더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는 감정적인 공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명상 고수들은 통증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예기불안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하루 종일 명상을 하는 집중 수련에서는 면역 체계가 향상되고 명상 상태들을 나타내는 징후들이 수면 중에도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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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기시미 이치로, 위즈덤하우스, 2024년 9월)


2014년 『미움받을 용기』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철학자 기시미 미치로의 신작으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발췌한 그리스어 원문을 직접 번역 후 재해석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철학은 현상을 추인(追認)하지 않는다. 설령 실현이 어려워도 현실은 어때야 하는지 그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철학이다. 


무엇이 선인지를 안다면 실천할 수 있으며, 실천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선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재산, 지위, 성공과 같은 일반적으로 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것 자체로는 선악무기 즉, 선도 악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죽음을 아이가 어머니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것이 비유하고 있다. 그는 때가 차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죽음은 육체에서 탈락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기 죽음이 어떤 것인지는 죽어봐야 알겠지만, 타자의 죽음은 부재이고 죽음이 어떤 것이든간에 그것은 이별임이 분명하다. 

현상을 추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천의 철학은 동시에 관조의 철학이어야만 한다. 


2013년이었을 것이다. 환자로 내원하신 부산대 교수님 한 분께 교수님보다 20년 늦게 인생을 걸어가는 동생인 셈 치고 곧 마흔이 되는 내게 조언 하나 해달라는 애교섞인 부탁을 드려본 적 있었다. 언제 오셔도 활기와 위트가 넘치시는 분이셨기에 그런 말랑말랑한 대화가 오갈 수 있었다. “마흔이라, 참 좋을 때지요. 전공을 하나 더 해서 공부의 폭을 넓히기에도 딱 좋고, 연애를 해도 딱 좋을 때인데 그건 뭐 알아서 하시고예.. 마, 뭐든 시작하이소. 마흔 아잉교. 뒤늦게 요가를 시작했는데 뻣뻣한 몸 쪼매 늘린다코 고생고생 하고 있는데 요가보다도 눈 감고 호흡하고 그 차분해지는 명상이라카나 그게 좋드만요. 퇴직하고 어학연수든 요가든 한 일년 유학을 댕기오고 싶은데 될랑가 모르겠어예.” 마흔을 앞둔 내게 공부와 연애를 추천하시며 유학을 꿈꾸셨던 그 때 그 교수님도 이제는 어디에선가 칠순 고개를 넘어가고 계시겠지? 활달함 그 자체셨던 분이 헤어질 무렵에는 상당히 차분해지셨던 게 생각해보면 요가와 명상의 효과였을까?


이번달 글을 거의 다 써가는데 뒤늦게 아주 마음에 드는 명상 입문서 한 권을 발견하게 되었다. 『요가의 과학』 저자로도 유명한 앤 스완슨의 최신작 『일상으로서의 명상』(시그마북스, 2024년 9월)이다. 이제 막 주문 버튼을 눌렀으니 내일이면 내 손에 닿을 것 같다. 과학에 근거한 명상의 작용 원리를 정리한 개론서이자 명상 수련법을 다룬 사용자 친화적 안내서로 75가지의 간단한 명상을 친숙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수면에 도움을 주는 명상, 창의력을 불러일으키는 운동, 비행기 이륙 전의 의식적인 움직임 또는 관절염 통증을 완화하는 시각화 등으로 상당히 구체적으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현생에 지친 당신을 위한 가장 쉬운 명상 입문서”라는 부제처럼 지도자나 수련원 방문 없이도 혼자서 실천이 가능한 명상책이다. 


한 해의 마무리 다가와…잠시 돌아보는 여유 갖길


올 12월 퇴직을 앞둔 모 은행 부지점장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하나. 이자 높은 정기적금 안내문이 은행 안팎에 걸리는 날 가장 먼저 가입을 문의하시는 분들은 다름 아닌 80대 어르신들이라는 것이다. 85세 전후 어르신들이 줄지어 들어오셔서 10년 만기 정기적금을 가입하시는 모습을 보며 초고령화사회를 실감하기도 하고 영원히 사실 것처럼 적금 드시는 그분들의 마음이 궁금하다고 하였다. 

 

오랜 습관은 숙명처럼 무겁다. 함부로 돈을 써본 적 없는 세대의 그 분들이 본인들이 직접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적금을 드는 행위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이직이나 창업을 하기에 쉽지 않은 나이라는 수식어는 늘 노년층을 가리킨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나이란 과연 언제일까? 경건한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눈을 감아 본다. 한 해의 마무리에 임박하여 지나간 일들을 회상해보니, 반성할 일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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