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한의학이란? 전통에서 출발해 미래 의료로 확장되는 가능성의 길
소유진 학생
(우석대 본과3년·한의혜민대상 장학증서 수상)
제가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매력은, 침과 한약, 약침이 모두 몸이 원래 가지고 있는 회복 능력을 살려 주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침 자극이 신경·면역 반응과 국소 혈류 변화 등에 관여해 통증과 염증 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고, 한약과 약침에 사용되는 천연물은 다성분·다표적 특성을 지녀 여러 병태생리 기전에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점 덕분에 한의학적 치료를 ‘몸에 비교적 부담을 덜 주면서 스스로 회복하려는 힘을 북돋우는 방법’으로 이해하게 됐고, 특히 만성 질환·난치성 질환에서 기존 치료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제가 진행해 온 파킨슨병, 건선에 대한 천연물연구와 약침 안전성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파킨슨병에서 본 한의학의 가능성
학부연구생으로서 제가 처음 제대로 연구해 본 주제가 파킨슨병이었습니다.
‘The Potentiality of Natural Products and Herbal Medicine as Novel Medications for Parkinson’s Disease’라는 제목으로 리뷰 논문을 준비하면서, 이 질환의 병태생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입체적이라는 걸 계속 느끼게 됐습니다.
알파시누클레인 이상 단백질의 축적, 자가포식 기능 저하, 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 활성산소에 의한 신경세포 손상, 미세아교세포와 성상세포의 염증 반응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다 보니, 어느 한 가지만 조절해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질환이라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정리하다 보니, 현재 사용되는 약물들이 증상 악화를 늦추는 데에는 분명 의미가 있지만 병의 뿌리를 직접적으로 건드리지는 못하고, 장기간 복용에 따른 다양한 부작용이 보고된다는 점이 늘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논문에서는 전통 한약과 천연물들이 자가포식을 촉진해 알파시누클레인 제거를 돕거나,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보호하고, 신경염증을 억제하는 연구들을 모아 정리했습니다. 일부 처방과 성분들은 이러한 경로를 동시에 조절하면서 운동 증상뿐 아니라 비운동 증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들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저는 ‘천연물=효과가 약하고 느리다’는 흔한 편견이 꼭 맞는 말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오히려 여러 병태생리 축을 한 번에 건드리는 멀티 타깃 효과,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부작용 가능성이 중·장기적으로는 더 매력적인 전략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파킨슨병처럼 고령에서 흔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치매와 낙상, 우울, 보호자 부담까지 함께 커지는 질환일수록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문으로 작년에 제주도에서 열린 ICMART 학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했던 경험은 제게 한의학의 지평을 실제로 눈으로 보는 계기였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침과 한의학, 관련 치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각자 준비한 연구를 가지고 와 서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의학으로 할 수 있는 연구와 치료의 영역이 이렇게나 넓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한의학을 단순히 우리나라의 전통 의학이 아니라, 세계 의료계 속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하나의 과학적 치료 옵션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만성 피부질환에서 본 천연물의 장점
이후에 진행한 건선 관련 리뷰 논문 ‘Harnessing Natural Compounds in Psoriasis: Targeting Cellular Pathways for Effective Therapy’는 파킨슨병에서 가졌던 같은 문제의식을 만성 피부질환인 건선으로 확장해 본 작업이었습니다.
건선은 단순히 ‘피부가 벗겨지는 질환’이 아니라 Th17/IL-17 축을 중심으로 한 면역 이상과 유전·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관절염·심혈관 질환·우울과 같은 전신 합병증까지 동반하는 전신성 만성 염증질환이라는 점을 다시 정리하게 됐습니다.
논문을 쓰면서, 기존 치료제인 면역억제제와 생물학적 제제가 증상을 빠르게 호전시키는 데에는 분명 큰 역할을 하지만, 일부 약제는 전신 면역을 광범위하게 억제해 감염·악성종양 위험을 높일 수 있고, 고가의 약제 비용과 정기적인 모니터링, 투약을 중단했을 때 재발과 악화가 자주 나타난다는 점 등 여러 한계를 함께 안고 있다는 것도 다시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건선에서도 염증과 산화스트레스, 케라티노사이트 증식을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천연물·한약 성분들이 보조 치료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정리해 보고 싶었고, 그 결과를 이 리뷰 논문에 담게 됐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많은 천연물들이 항염·항산화 효과와 함께 각질형성세포의 증식을 조절하고 피부 장벽을 회복시키는 등 한 가지 역할이 아니라 여러 단계에서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건선 환자들이 겪는 삶의 질 저하와 장기 치료에 따른 부담을 생각하면, 부작용 부담은 줄이면서도 여러 기전을 동시에 완화할 수 있는 보조 치료 옵션으로서의 천연물·한약의 가치는 앞으로 더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침을 효과에서 안전성까지 바라보게 된 계기
약침이라는 치료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중에 임상에 나가면 꼭 제대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무균 상태로 제조된 천연물 약침은 관절 주변의 인대·근육뿐 아니라, 임상 상황에 따라 관절강 내에도 주입하여 통증과 염증을 조절하는 데 활용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만 주변에서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도, 실제로 얼마나 안전한지 근거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진행한 연구가 동물성 약침의 안전성과 독성을 평가한 ‘In Vitro Assays for the Assessment of Safety and Toxicity in Pharmacopuncture Derived from Animal’입니다. 2021년 10월, 4개 원외탕전실에서 동물성 약침 9종을 무작위로 수거한 뒤, 무균·미생물 한도 시험과 세포독성 시험은 두 곳의 외부 시험기관에 의뢰하여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시료에서 미생물 오염은 검출되지 않아 제조·유통 과정의 무균성은 확보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포독성 시험에서는 봉독 약침에서 강한 독성이 관찰되었고, 우황·웅담·사향을 포함한 일부 제제에서도 농도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세포독성이 나타났습니다.
즉, 절차적 안전성은 담보되어 있으나 약침 자체의 독성 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표준화는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약침의 장점을 믿고 임상에서 많이 활용해 보고 싶었던 입장에서, 이런 결과들이 앞으로 약침을 더 안전하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사용하기 위해 어떤 점을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올해 약침 서포터즈 활동에 참여해 약침 관련 강의를 듣고, 초음파 가이드를 이용한 약침 시술 실습까지 해 보면서 연구와 실제 임상 장면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 속 실험 수치로만 보던 ‘무균성’과 ‘독성’이라는 말이, 실제 시술 현장에서는 환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구체적인 기준이라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앞으로 임상에 나가 약침을 활용할 때에도, 이런 연구 결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뿐 아니라 안전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법과 제도의 경계를 넓히는 한의학, 그리고 K-MEX에서 본 미래
한의학이 가진 가능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법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습니다. 그래서 의료인 업무범위 관련 법률 고찰이라는 주제로, 의료인의 업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국내 법령들을 정리·분석하는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의료인’과 ‘의사’를 검색해 의료인의 업무와 관련된 50개 법률을 추려, 진단·검사, 시술·처치, 기타(교육·연구·행정 등) 영역으로 나누어 검토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감염병 진단·신고 의무처럼 한의사가 참여하도록 규정된 부분이 있는 반면, 실제 학교·보육시설 현장에서는 의사만을 진단 주체로 명시하는 등 일관성이 떨어지는 지점들이 드러났습니다.
응급의료, 산업안전보건, 장애 판정 등 여러 영역에서 의료인별 권한이 서로 다르게 규정되어 있는 현실도 확인했습니다.
특히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6도21314)은 한의사의 업무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중요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었습니다.
서양의학적 기술이나 기기를 도입했더라도, 그것을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적용·응용하는 행위라면 한의사의 면허 범위 안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초음파 진단기기나 뇌파계와 같은 현대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고 본 이후 판결들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해당 논문에서는 이러한 변화들을 정리하면서, 국민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의 면허와 업무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고, 서로 다른 법령에서 상충되는 조항들에 대해서는 일관된 해석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결론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논문을 쓰고 난 뒤, 올해 열린 K-MEX 박람회에서 학생위원으로 활동하며 실제 현장에서 그 흐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레이저, 초음파, 저선량 X-ray, 견인·물리치료기 등 다양한 의료기기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고, 저는 레이저 기기를 소개하는 부스에서 보조 역할를 맡으며 관련 강의와 시술 시연을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미 임상에서 활발히 진료하고 계신 한의사 선생님들이 최신 기기와 시술에 관한 세미나를 듣기 위해 열정적으로 강의를 듣고 질문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면허를 따면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 변화와 기술 발전에 맞춰 계속해서 공부하고 계신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앞으로 한의사로서 현장에서 진료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제도·연구의 언어로 한의학의 정당한 권리와 책임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한의학이란
저에게 한의학은 “사람의 회복을 믿되, 그 믿음을 근거로 증명해 가는 학문”입니다. 침·한약·약침이 가진 강점은 몸이 원래 갖고 있는 균형과 회복의 방향을 살려 준다는 데 있지만, 그 가능성이 더 많은 환자에게 안전하게 닿기 위해서는 연구와 표준화,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킨슨병과 건선 연구를 하며 ‘복잡한 만성질환일수록 다표적 접근이 왜 필요한지’를 배웠고, 약침 안전성 연구를 통해 ‘효과만큼이나 안전을 말할 수 있어야 임상이 단단해진다’는 점을 체감했습니다.
또한 법과 제도의 변화, 그리고 K-MEX 현장에서 본 한의사의 배움은 한의학이 전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언어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임상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한의사이면서, 동시에 근거를 만들고 기준을 세우는 연구자로서 한의학의 가능성을 더 넓혀 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