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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인은 또 하나의 히말라야다떠나기 며칠 전부터 수염을 기른다. 반쯤 하얀 수염이니 마스크를 쓰고 진료할 수밖에 없다. 3개월 지난 펌 머리가 숫 사자 갈기 같다. 수염과 모발을 방치한 방황의 젊은 어르신은 아직 철들지 않았다. 하긴 남자들 철들면 돌아올 수 없는 저 먼 길로 간단다. 아직 철없이 지내기로 했다. 여행은 현실을 벗어난 일탈이다. 현실 환경과 다를수록 여행의 깊이와 의미가 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으로 새로운 시간을 꿈꾼다. 다른 문화 언어 음식 풍광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 역시 가슴을 두근거리는 그 무엇이 숨어 있다. 그 무엇을 꼭 집어 표현할 수 없어 더 가슴이 아리다. 화려한 흉통. 여행은 고생조차 설레인다. 그 여정은 성찰을 동반한다. 그래서 떠난다. 네팔에 간다. 두 존재를 만난다. 네팔인과 히말라야다. 미지의 그곳, 히말라야 미지(未知). 예민한 걱정과 벅찬 기대가 교차하는데, 후자의 영역이 더 넓고 크다. 그동안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코스를 다니며 느끼는 그 무엇이 있었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쿰부 지방의 벅찬 칼라파타르(5600m), 야생화의 넓은 평원을 지닌 랑탕밸리와 고사인쿤드. 에베레스트 로체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마차푸차레 푸모리 아마다블람 7~8000m 위용을 보면서 걷는데, 숲속의 마을 주민을 만난다. 검게 그을린 주름의 할아버지, 수줍은 눈의 어린이. 2~3000m 숲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삶을 마치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히말라야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 아마 죽음의 원인도 모른 채 태어난 땅에 묻히는 사람들, 지금도 쌀밥 달바트 음식을 거친 손으로 먹는 사람들. 몸은 씻지 않고 옷은 세탁하지 않는 셍활이 부끄럽지 않는 사람들, 그저 맑은 눈과 미소로 살아가는 사람들. 나마스테 – 나의 신이 당신의 신에게 정중히 인사합니다. 마치 선승의 화두 같은 그 언어는 곧 신앙이요 생활이다. 어쩌면 히말라야보다 더 가까이 만나고 싶은 존재들이다. 서로 같은 심장을 가진 호모사피엔스. 트레킹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직업을 통해 교감하고 싶었다. 그래서 1년 전 랑탕 헬람부에서 순다리잘 - 타레파티(4600m) - 멜람치강 타게르강 트레킹하면서 이동 한의원을 개원(?)했다. 침, 갖은 약재 등을 꾸리고 포터를 한 명 더 채용하고 트레킹을 겸한 의료활동을 했다. 난생 처음 혈압 체크하고, 손 끝에서 피 한 방울로 혈당 측정하는 그 신기한 의료 행위가 생경한 사람들을 만났다. 고산 마을 주민들은 한국 한의사의 첨단(?) 진료에 놀라고, 한국 한의사는 그들의 열악한 의료 환경에 놀랐다. 다시 1년이 지나고 설 연휴 안팎 2주 일정으로 네팔을 찾았다. 2번째 진료실을 차린 셈이다. 반은 진료, 반은 트레킹 일정이다. 그래서 필자의 전담 가이드인 N과 함께 그의 고향을 찾았다. 작년 곁에서 한의 진료를 보던 N이 이번에는 그의 고향에서 의료활동을 제안, 부탁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너덜거리는 버스로 6시간만에 도착한 도시는 Gorkha. 거의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심하게 흔들리고 먼지가 동행한다. 큰 짐을 버스 지붕 위에 잔뜩 싣고 좌석이 차야 떠난다. 네팔의 버스는 신차가 출고되고 폐차될 때 까지 세차하지 않는다. 겨우 장마 소나기로 쌓인 먼지를 씻을 뿐이다. 10년차 가이드 N은 한국어를 더듬거리며 말하고 영어는 능숙한 베테랑이다. 네팔 사랑이 지극하다. ‘어느 나라는 화성에 간다는데, 우리나라는 도로 포장도 안되었어요’ 사실 한국의 경부선 같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와 제2의 도시 포카라 구간 족히 10시간 걸린다. 도로거리 204km인데 하루 종일 걸린다. 중간 정류장에서 식사하고 또 다시 먼지 날리며 달린다. 한국의 몇 십 년 전 모습, 하지만 우리처럼 발전할 가능성이 희박하여 더 답답한 나라. 먼지와 무질서의 네팔을 생각하면 여행객의 머리가 무겁다. 고르카에서 지프를 대절하고 너덜거리는 산길을 달린다. 뿌연 먼지가 뒤쫒아오는 산길은 여름 장마에 유실될 것이다. 하지만 저만치 다락논이 보이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간 마을이 참으로 평온하다. 곡식이 가득한 다락논은 마치 그림 같지만 그 내면은 척박하다. 비료 농약 용수시설 등이 없는 그곳의 농법은 순전히 하늘에 맡겨야 한다. 히말라야를 품고 있는 그들, 그 산을 위안 삼아 살고 있다. 주민들은 히말라야가 있어 터 잡았고, 이제 히말라야는 그들의 존재로 혼자가 아니다. 어쩌면 두 존재는 동반자이리라. 1시간 30분만에 도착한 마을은 N의 고향 롤랑. 그의 친구가 마중 나왔다. 그 친구 집에서 진료하기로 연락한 상태. 맨발로 나타난 친구는 마르고 검게 그을린 얼굴이다. 준비해 간 30kg의 의료용품 등을 번쩍 들고 집으로 향한다. 우리들의 건강을 위한 ‘황톳길 맨발 걷기’는 호사이다. 사전 연락한 상태라 서서히 환자들이 진료소(?)를 찾는다. 툇마루와 방안의 삐긋거리는 2개나무 침대가 전부이다. 집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주민들이 모인다. 아마 서울의 살찐 의사가 좋은 약 많이 들고 올 거라고 사전 고지한 상태이니 기대가 컸으리라. 1년 전 진료 경험으로, 혈압과 혈당 검사만으로도 진료라는 생각으로 다시 히말라야를 찾았다. 하지만 침, 구, 부항은 물론 운동기 소화기 호흡기 순환기 환제와 엑기스를 넉넉히 준비했다. 가이드 N이 친절한 통역사다. 침 시술, 한약 일주일분. 한약과 더불어 준비한 구충제를 한 알씩 처방한다. 손으로 먹는 식생활은 위생에 취약하다. N은 300인분 구충제를 자세히 설명하느라 바쁘다. 기다란 대기줄을 보면 조급증이 나지만 서두르면 안 된다. 차분히 꼼꼼히 허리를 세운다. 오후부터 한약을 5일분으로 줄인다. 아무래도 준비한 한약이 부족할 것 같다. 진료부에 환자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이런 저런 증상을 꼼꼼히 기록한다. 언제? 1, 2년 후 다시 이 마을을 찾을지 모른다. 그럼 재진 환자가 될 테고 진료에 참고가 될 증상을 기록한다. 모든 환경이 생경한 롤랑 2800m 숲속 마을(백두산 천지보다 높다), 다락논에서 감자 마늘 야채 바나나를 재배하고 염소 물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름 번지르르한 한국 한의사는 편작 또는 허준선생일 것이다. 명의는 아니지만 최선의 의료인이어야 한다. 그런 다짐을 한다. 히말라야에서 느낀 것 오전 7시에 시작한 진료가 서서히 해가 저 멀리 히말라야 산속을 지나 일몰을 준비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히말라야 산간마을의 어둠이 밀려온다. 침침한 불을 밝히고 진료는 지속된다. 어두워질수록 기온이 내려가고 의료인은 하품이 잦다. 그래도 히말라야 기운 때문인지 눈동자가 초롱초롱하다. 그들과의 소통이다. 그들과의 교류이다. 작은 나눔이다. 나마스테. 나의 또 다른 나에 대한 봉사일 뿐이다. 다음날 일찍 서둘러 도보 1시간 거리 학교가 있는 윗마을을 찾았다. 마을 회관 같은 먼지 나는 시멘트 바닥을 청소하고 간이 침대와 책상과 의자를 준비한다. 이 마을은 훨씬 주민이 많아 서서히 잔칫집 분위기이다. 찾아오는 환자 때문에 겁이 나는 것은 처음이다. 꼬마들은 진료보다 혈압기가 궁금하고 혈당 측정이 신기하다. 그리고 선물받은 한국 볼펜과 치약 칫솔은 어젯밤 길몽 덕분이다. 척박한 땅에서 거친 일을 하는 주민들의 허리, 무릎, 어깨는 멀쩡할 수 없다. 준비해 간 침, 간접구, 부항요법, 그리고 정성 처방을 한다. 얼마나 큰 결심으로 찾았던가. 얼마나 기다린 히말라야 왕진인가. 한의학은 본디 혜민(惠民) 의학이거늘. 실천하고 싶었다. 어두워지기 전 진료를 마치고 어제 그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저 멀리 설산이 선명한데 마나슬루이다. 마을 주민들은 매일 저 만년설을 보고 지낸다. 마나슬루 어느 한 봉우리가 마을을 지킨다. 척박한 마을은 저 설산으로 결코 외롭지 않다. 그 만년설은 친구, 스승, 의료, 교육, 신앙인지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진료를 마치고 아랫마을로 내려가는데 어둠이 몰려오고 마나슬루의 만년설이 더욱 선명하다. 무슨 인연 있어 이 먼 마을을 찾았는지 히말라야의 하늘을 바라본다. 거친 바람도 히말라야에 오면 순해진다. 폭풍 낙뢰도 히말라야에서는 그저 미풍 섬광일 뿐이다. ‘의료 봉사’라고 찾은 히말라야 숲속 마을, 명함을 내밀면 안 된다. 일몰의 마나슬루가 빙그레 웃고 있다. 진료 3일째. 준비해 간 한약재가 동났다. 준비해간 혈당 측정에 필요한 란셋이 떨어져 할 수 없이 침으로 손끝을 자극하여 채혈 측정한다. 알코올 솜이 바닥나 포장 알코올 스왑을 반으로 잘라 사용한다. 한약 환산제가 떨어져 거의 모든 환자에게 침구 시술을 한다. 의료 혜택을 더 드리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한약재, 혈당 스틱, 알코올 솜, 란셋은 소진되고 의료인의 체력도 고갈되어 더 이상 진료할 수 없다. 5일간 계획된 진료는 3일간으로 단축되고 말았다. 생각보다 고혈압 환자가 많다. 아마 선천적 1차성 고혈압 환자로 사료된다. 염분 섭취 과다의 식생활을 무시할 수 없다. 덥고 추운 기온이 반복되어 음식이 대체로 짜다. 낮의 고온과 노동은 염분을 원한다. 생각보다 80대 90대 어르신이 많다. 의료 시설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장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기 건강 검진을 받지 않는데, 장수 식품을 먹지 않는데, 정기적인 근력 운동하지 않는데, 영양 식단이 아닐텐데 오랜 수명을 유지한다. 아마 맑은 숲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맑은 산소는 천기(天氣)이다. 하지만 더 특별한 이유는 숲속 마을의 인정(人情)이라 여겨진다. 그들은 한 가족처럼 지낸다. 물질이 빈곤하지만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마음의 풍요를 유지한다. 부족 씨족 사회처럼 모두 친인척의 관계로 살아간다. 모두 형님 누나 아버지 어머니로 존재한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넉넉함이다. 척박한 땅이지만 주민들의 마음은 촉촉하다. 훈훈한 인정이 활성산소를 없애고 질병을 예방한다. 다툼 경쟁하지 않는 순수는 원기를 생한다. 이익사회(게젤샤프트)가 아니라 공동사회(게마인샤프트)를 본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 큰 교훈을 얻는다. 배품은 성찰, 계발이니 얻음이다. 그리고 삶의 확장성이다. 네팔인과 히말라야는 눈물이다 진료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이제 트레킹이다. 원래 트레킹 일정은 최소 10일 이상이어야 제대로 설산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진료로 반을 사용하여 짧은 코스를 선택했다. 마르디 히말(Mardi Himal)은 안나푸르나 옆 산자락으로 4일간 일정이면 충분하다. 늦게 개발된 코스로 산길이 순하고 주위 풍광이 아름답다. 걷는데 이골이 난 트레커들에게 좀 심심하지만 가족과 같이 다닐 수 있는 산길이 이어진다. 히말라야를 보고 싶은데 등산이 겁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코스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보다 코스가 편하고 능선따라 설산과 호흡할 수 있다. 포카라에서 지프로 1시간 거리, Khare에서 오르기 시작한다. 히말라야다. 매번 벅차다.작은 능선과 돌계단을 반복하며 오른다. 숨이 차지만 흥분된 감동이 밀려온다. 아직 열정과 체력이 있으니 감사하다. 1시간여 만에 도착한 오스트레일리아 캠프는 구름이 점령했다. 저 멀리 하얀 눈으로 덮힌 산군들이 보여야 할 텐데 하얀 구름이 차지했다. 일출이 아름다워 하룻밤 묶는 롯지인데 영 불안하다. 다음 날 아침 일출이 어려울 것 같아 트레커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구름이 산뿐만 아니라 방문객의 가슴까지 뒤덮는다. 트레킹 2일째, 구름의 히말라야를 걷는다. 구름의 히말라야는 한국 마을 앞산과 진배없다. 그저 흙산이요 돌길일 뿐이다. 저만치 보일 만년설은 옥양목에 가려 볼 수 없고 내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날 숙소인 포레스트 캠프에 도착하여 한국인을 만났다. 가이드 포터없이 혼자 처음으로 히말라야를 찾은 30대 한국 남자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건너편 ABC 오르는 코스로 가야 하는데 길을 잃어 다른 하산길로 갔다 다시 오르는 길이란다. 5시간 산길을 헤매 얼굴이 창백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코스인 란드룩 까지 가야하는데 히말라야의 해는 저 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네팔에 가면 지갑을 반쯤 여는 것도 품격이다. 옹색한 여행객은 히말라야를 즐길 자격이 부족하다. 조금 후 30대 초반의 한국 여자가 당나귀 타고 나타났다. 그녀의 가이드 겸 포터에게 왠 당나귀냐고 묻는다. 트레커가 지쳐 5천 루삐(5만원) 주고 빌린 당나귀도 지쳐 있다. 주위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명품 등산복에 화려한 패딩을 입었는데 체력은 싸구려다. 용감하고 도전적인 한국인? 무모하고 무지한 한국인? 어느 쪽인지 모른다. 아무튼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히말라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만년설을 보고 걷는 산길은 사유(思惟)의 시간이다. 보통 2~3주 트레킹은 차라리 짧은 수행이다. 6000m 이하의 설산은 이름조차 없는 무명의 산이다. 걷고 또 걷는다. 히말라야 방문객들의 숙소인 Lodge의 밤은 어둡고 춥다. 해지면 어둠과 추위가 몰려온다. 서서히 물질과 풍요는 사라지고 히말라야의 거친 바람과 추위가 엄습한다. 그동안 즐겼던 문화와 물질은 사라지고 이제 추위만 남았다. 무언가 외로움 허전함, 심연의 고독이 찾아온다. 도시인은 불안하고 도시가 그리워진다. 차가운 손수건으로 하루의 땀을 닦고, 머그잔 한 컵의 냉수로 양치하고 정리해야 한다. 5000m 오르면 산소는 해수면의 반이다. 고산증이 발생하면 심장 폐 뇌가 망가져 생명이 위험하다. 도시 물질에서 느끼지 못하는 외로움은 잔인하지만 괜히 수행자의 고행같다. 어려움이 있어야 성숙한다. 쾌락만 있으면 발전 보다 퇴행의 영역이다. 고통이 있어야 성숙할 수 있다. 춥고 외로운 공간으로 자신을 몰아낸다. 그리고 퍼석이는 고독을 느낀다. 히말라야에 구멍이 숭숭난 건조한 외로움이 바람과 함께 떠다닌다. 그 바람을 맞는다. 그동안 물질로 느끼지 못한 인간 본연의 시간은 고독이다. 홀로 외로움, 인간은 본디 혼자이었으니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즐거움과 괴로움도 본인의 몫이다. 히말라야는 바위의 골산(骨山)이다. 바위산은 수행처이다. 히말라야는 트레킹코스이면서 기도, 염원, 수행의 공간이다. 네팔인과 히말라야를 보면 왠지 울컥하여 눈시울이 붉어진다. 기쁨과 슬픔의 염분 농도가 다르단다. 히말라야와 네팔인은 환희와 애잔이 공존한다. 물질 없는 자연은 얼마나 고단한가. 순수만으로 살아가기 얼마나 힘들던가. 누가 네팔을 축복의 땅이라고 했던가? 네팔은 히말라야의 나라이다. 고산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하고, 만년설을 보고 무한 도전과 품격을 배운다. 터벅터벅 걸으며 히말라야와 호흡한다. 저 깊은 히말라야로 들어간다. 트레킹중에 만나는 코흘리개 꼬마의 나마스테 인사는 참으로 순수하다. 그 꼬마는 작은 히말라야다. 준비한 볼펜을 건넨다. 수줍은 얼굴은 꼭 히말라야를 닮았다. 방문객은 순수에게 나마스테 인사를 건넨다. 그 순간 순수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거친 숨을 쉬는 트레커의 가슴에 벅찬 감성이 출렁인다. 눈시울이 뜨겁다. 히말라야가 신의 거처인 까닭이다. 3일째 숙소는 하이캠프(3550m), 일찍 도착한 롯지에서 따뜻한 밀크티를 마신다. 식사하고 휴식의 공간인 다이닝 룸에서 하얀 밖을 바라본다. 걷히지 않은 하얀 구름이 두텁다. 밤이 되면 히말라야의 구름은 사바세계로 내려간단다. 그래서 4000m 산에서 늦은 오후 일몰부터 설산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날 자정이 다가오면 구름은 스멀스멀 산줄기 타고 상승한다.가이드 N은 히말라야의 구름 이야기를 들려주며 트레커를 위로한다. 구름은 더욱 무겁고 두텁고 진하다. 트레커 보다 N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해 질 무렵 5시 지나 저 멀리 눈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구름이 걷힌다. 롯지에 있던 트레커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모습을 드러낸 안나푸르나 남봉(7219m), 히운출리(6444m), 마차푸차례(6993m), 마르디 히말(5553m). 그리고 작은 산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기적이다. 황홀이다. 감탄, 감사, 그리고 경외이다. 한국- 카트만두-포카라- 카레, 그리고 험한 산길 3일째 만년설을 만난다. 긴 여정 만큼 신비의 깊이가 있다. 다음날 새벽 헤드 랜턴에 의지하여 뷰포인트에 오른다. 고산증 있는 사람은 롯지에서 쉬어야 한다. 2시간 만에 오른 4600m 뷰포인트에서 더욱 가까이 명산을 조망한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가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거대한 암벽이 큰 산맥을 이루고 버티고 있다. 병풍처럼 기다란 산군이 이어져 있다. 선명하다. 맑다. 히말라야, 지구의 척추 근간이다. 지구의 지지대이니 생명체로 존재한다. 작은 트레커는 잠시 그곳에 조심스럽게 기대어 본다. 히말라야를 꿈꾼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아침에 바라본 마차푸차레는 예전 모습이 아니다. 20년 전 ABC 오르며 보았던 마차푸차레는 설산이었다. 산 중간 허리까지 눈에 덮이고 꼭대기는 이름처럼 물고기 꼬리 지느러미 형태였다. 그런데 산 정상 주위 몇 점 눈이 전부이다. 눈이 녹아 검은 골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마치 시한부 삶의 말기 환자처럼 수척한 모습이다. 빙하가 녹고 고산의 눈도 녹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가 히말라야에도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 20년 지나면, 아니 그 이전에 얼마 남지 않은 정상 부위의 눈도 녹아내릴지 모른다. 나마스테, 절박하여 불러본다. 요즘 히말라야는 변하고 있다. 트레킹 코스는 방문객들을 위해 산허리에 길을 낸다. 지프가 산 중간까지 들어간다. 안나푸르나 일주 코스 마낭(3540m)까지 차가 들어간다. 옛날에는 트레킹의 시발점이 820m 베시시하르 였다. 이제 차를 이용하여 한없이 산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물론 고산증으로 다시 내려오는 사람이 많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만 물질은 히말라야를 훼손하고 있다. 언젠가 8000m급 고산에 케이블카나 곤도라를 설치할지 모른다. 다국적 기업이 거금을 투자하고, 네팔은 그 거대한 프로젝트 승인하여 국고를 채울 기회가 생긴다. 변변한 기업이 없는 네팔 정부로서는 자연, 환경보다 현금이 절실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진입하기 좋고 공사하기 수월한 고봉에 전망대를 세우고 세계 관광객은 산소마스크 쓰고 지구 최고의 하얀 파노라마를 조망할 수 있다. 힘들이지 않고 그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네팔 정부는 허락할 수 있다. 8000m급 14개 봉우리 중 8개를 가진 네팔이다. 전 세계의 뉴스, 지구 최상 최고의 케이블이 물질과 자연을 연결한다. 한 10년쯤 지나면 일어날지 모를 재앙이다. 인간의 끝없는 도전은 끝없는 모순을 낳는다. 고지대 롯지에 불은 밝고 인터넷 와이파이도 터진다. 4000m급 롯지에도 태양광이 설치되어 자체 전기 생산되어 밤 9시까지 불을 밝힌다. 롯지 지붕의 검은 집광판이 이방인처럼 설치되어 있다. 불을 밝힌 식당, 객실은 밤의 생활이 가능하다. 몇 년전 까지 롯지에서 와이파이 이용료를 내고 사용했다. 몇 천원의 이용요금을 내고 한국으로 소식을 전했는데, 이제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롯지마다 ‘Wi-Fi Free’를 내걸었다. 고산에서 주식거래를 하고, 인터넷 뱅킹, 그리고 집으로 사진이나 문자 카톡을 보낼 수 있다. 유튜브를 보며 고독을 물리칠 수 있다. 침잠 은둔의 땅 히말라야에 물질이 들어와 번잡하다. 조용히 사유하고 싶은 트레커는 자신도 모르게 자연과 물질을 공유하고 있다. 히말라야 공간에서 물질과 풍요는 오염물질일 수 있다. 혼란스럽게 변하는 히말라야. 그 본질이 훼손되는 것 같아 왠지 우울하고 답답하다. 삶의 골드 마운틴 정상 부근의 하얀 만년설은 히말라야를 지킨다. 4계절이 아닌 한 계절로 살아가는 히말라야는 묵언과 정적이다. 하지만 생명체로 존재하는 그 하얀 설산은 하루 2번 변신한다. 해 뜰 무렵 붉은 일출이 설산에 걸치면 하얀 설산은 붉게 변하는 Gold Mountain이 된다. 어쩌면 방문객에게 귀한 선물을 안겨주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한 번 해질 무렵 일몰의 골드마운틴은 환호이다. 하루의 고단한 다리를 위로하고 지친 호흡을 토닥거린다. 붉은 산을 보며 그동안 삶의 여정을 회상하고 회한에 젖는다. 히말라야와 함께 침묵하고 사색에 든다. 트레커들은 기억한다. 일출 보다, 일몰의 골드마운틴이 더욱 선명하고 진하고 아름답다고 추억한다. 하루를 마친 히말라야의 태양은 그렇게 비추고 또 하루를 마친다. 허리 굽은 트레커는 스틱에 의지하여 한동안 일몰의 골드마운틴을 즐긴다. 자신만의 골드마운틴을 갖는다. -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와서네팔로 떠난다. 욕실에서 반백의 머리에 검은 붓질을 한다. 쓰윽 쓰윽, 염색약으로 번들거리는 머리가 점점 이상해지지만 피식 웃고 만다. 마법처럼 좀 젊어질 테니 잠깐 달라붙은 흉한 머릿결은 감수해야 한다. 아내는 한마디 거든다. “히말라야 가는데 왠 염색?” 답변 대신 피식 웃는다. * 3대 트레킹 코스 Trekking은 만년설을 멀리 보면서 6,000m 이하 산길을 걷는 산행이다. 그 이상은 전문 산악인들이 정상을 향해 원정대 꾸려 생명의 존재와 위협을 동시에 느끼는 벅찬 여정으로 Climbing이라 할 수 있다. 제일 풍경 좋고 어려운 코스는 단연 에베레스트, 로체, 눕체 등이 우뚝 솟은 쿰부 지역이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 타고 루클라까지 들어가 산행을 시작한다. 남체 마을을 지나 속으로 속으로 들어간다. 세계의 지붕, 명산, 고산, 최고봉 히말라야 트레킹은 설렘이다. 그 산길은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한 산악인들도 다니던 길이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세계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등정을 성공한 산길 역시 그 루트이다. 트레커들은 전망대인 칼라파타르(5545m)를 오른다. 8,000m급 산을 가까이 볼 수 있고 7,000m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태초 만년설의 세월 앞은 경외스럽다. 자연의 최고봉은 신비를 간직한다. 에베레스트의 바람과 구름은 거친 품격이 있다. 트레커들은 압도되는 풍경에 눈물 흘린다. 걸어온 힘든 길이 기억나는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인지, 앞으로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아 방문객들의 눈시울이 붉다. 고산증으로 트레커들 반의 반도 오르지 못하는 최상급 코스이니 만만치 않아 더욱 매력적이다. 정상 도전은 로부체(4630m) 롯지에서 출발하여 칼라파타르에 올라 고산증으로 바로 하산해야 하는 총 17시간의 일정이다. 산소는 해수면의 1/2이니 걷기 힘들지만 눈과 가슴은 풍요롭다. 안나푸르나 일주 역시 상급자 코스로 토롱라 패스(5415m)는 트레커들을 괴롭힌다. 산소가 부족해 비디오는 1/4배속으로 영상 처리 된다. 걸음은 무겁고 머리는 비지만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를 가까이 볼 수 있으니 호사이다. 하얀 설산은 산객에게 순수를 전한다. 일주를 마치면 봉쇄수도원에서 기도한 사제처럼, 선방에서 안거를 마친 선승처럼 나름 의젓해진다. 카트만두에서 8시간 거리 사부르베시에서 출발하는 랑탕밸리 코스는 캉진콤파(3870m) 롯지에 짐을 풀고 전망 좋은 강진리(4773m)와 체르코리(4984m)를 오른다. 산행길이 협곡이 아닌 넓은 평야라 넉넉하고 봄의 야생화는 신비롭다. 고산증이 적은 편이지만 조심해야 한다. 1년전 이 코스를 산행했는데 동행한 친구는 강진리 오르다 고소증이 심해 바로 하산했다. 어지러우면서 쓰러지고 요실금이 나타났다. 할 수 없이 포터들이 부축하여 하산하였는데 친구를 잃을 뻔 했다. 히말라야에서 고산증으로 1년에 몇 십 명 죽는다는 보고는 꼭 참고해야 한다. 랑탕밸리 옆 코스인 힌두교의 성지 고사인쿤드(4100m) 역시 장관이다. 저 멀리 안나푸르나 마나슬루 산군을 보면 숙연해진다. 히말라야 속에 묻힌 기분이다. 고산증 적은 코스는 단연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 4130m)와 푼힐전망대(3210m)로 한국인들이 제일 많이 찾는다. 가까이에서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남봉, 다울라기리를 볼 수 있는 초중급자 코스이다. * 체력 히말라야를 가고 싶은데 우선 겁난다. 하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접근하면 귀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평소 친구들이랑 북한산 다녀와 막걸리 자주 마셨다면 일단 시도해 보자. 지리산 1, 2박 종주 산행하고 다리가 아프지 않고 몸살 나지 않고 입술 부르트지 않으면 일단 자신감을 가져보자. 물론 처음에는 낮은 코스를 경험해 보고 슬슬 고도를 올리고 싶지만 그럴 필요 없다. 맞을 매 먼저 맞자. 상급자 코스를 먼저 도전해 본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체력뿐만 아니라 산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체력과 열정은 나이 들면 약해지고 식는다. 좀 젊은 날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자. 매년 갈 수 없으니 미루지 말고 당당히 실천하자. 우선 초급자 코스 경험하고 나이들어 상급 코스 도전하려면 거의 불가능하다. 상급자 코스를 다녀오면 자연히 중급자와 그 이하 코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시간, 체력, 경비, 동반자 등등을 생각하면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서두르지 말고, 하지만 미루지 말아야 한다. 장애인들도 어린이들도 그들의 체력에 맞게 트레킹한다. 7, 8,000m 오르는 것이 아니고, 그 산을 멀리서 즐기는 트레킹이니 고행과 축복이 같이 한다. * 골드 마운틴 이번 트레킹은 랑탕헬람부이다. 랑탕밸리의 반대쪽 코스로 좀 한적하다. 겨울이고 일정(10일)이 짧아 한 구획만 다녀왔다. 일정은 서울에서 네팔 수도 카트만두 까지 왕복 2일이 소비되고, 카트만두에서 산행 시작점 까지 1일, 산행 종착지에서 카트만두 까지 또 1일이니 4일은 산행과 관계없이 필요 일정이다. 그리고 트레킹은 코스에 따라 10일 이상 걸어야 한다. 그래서 기본 일정 최소 14일 걸린다. 필자는 겨울 히말라야도 처음이지만 이번 트레킹은 계획이 있어 혼자 떠났다. 가이드(일당 25불) 포터(일당 20불)와 같이 트레킹을 시작한다. 몇 차례 트레킹한 경험이 있어 단골 전문 현지 여행사를 통해 산행 안내인과 짐꾼을 구했다. 그 현지 여행사에게 기본적인 수수료를 지불하지만 안정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단골이니 믿을 수 있고 과한 경비가 지출되지 않는다. 트레킹 시작 2~3일 지나면 서서히 히말라야 산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히말라야를 찾은 것을 실감한다. 신비, 경외, 환희, 감사, 압권, 품격있는 언어들이 떠오르고 가슴이 설렌다. 3일 째 쿠둔상(2470m)에서 아침 야채 스프를 먹고 등산화 끈을 맨다. 저 멀리 히말라야 산맥이 펼쳐진다. 더 깊이 가면 히말라야는 더욱 가까이 나타난다. 아침 8시 서서히 산길을 나선다. 평소 주민과 트레커들이 다닌 산길이 호젓하다. 어쩌면 수행을 떠나는 수행자의 길인지 모른다. 걷는다. 무거운 짐은 포터에게 맡기고 필요한 생수 수건 겉옷 카메라 선글라스 등만 챙기고 걷는다. 한국말이 서툰 가이드라 서로 말을 아껴 좋다. 말 없음은 그만큼 사유의 시간을 제공한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왔으니 이제 자연 히말라야를 느끼면 된다. 고개를 넘고 또 넘는다. 끝날 것 같은 고개는 수없이 이어진다. 지리산 종주 산행에서 만나는 토끼봉 제석봉은 그저 맛보기이다. 헉헉거리는 산길을 오르다 보면 시야가 훤해진다. 저 멀리 하얀 산군들이 눈과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되새긴 육두문자가 사라진다. 와! 감탄사와 함께 사진 셔터가 터진다. 가까이 만년설을 즐긴다. 하늘은 맑고 높다. 그 아래 설산은 말없는 고승처럼 의연하다. 태초의 말씀이 울려 퍼지고 경이로운 자연에 숨이 멎는다. 흥분은 가라앉고 차츰 엄숙이 찾아온다. 거친 산맥이 펼쳐지고 힘 있는 능선이 아름답다.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잠시 그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험한 고개와 멋진 풍광을 몇 개 지나 오후 5시에 도착한 곳은 타레파티(Tharepati. 3760m), 서둘러 전망대 (4100m)에 올라 가까이 히말라야를 본다. 짐은 롯지에 맡기고 가이드랑 둘이 오른 전망대의 설산은 이번 트레킹의 압권이다. 히말라야는 많이 오른 만큼 가까이 넓게 보여 준다. 하루를 마감하는 일몰이 설산에 걸친다. 서산으로 기우는 붉은 일몰이 반대편 고산에 비춘다. 하얀 설산이 갑자기 황금색으로 변한다. 탄성은 환호이다. 히말라야는 일출 보다 일몰이 더 장관이다. 일몰의 Gold Mountain만 보아도 트레킹한 보람이 있다. 신비롭다. 며칠간의 고행, 그리고 당일 오르막 9시간 거친 산행, 모두 이곳을 위한 여정이었다. 서둘러 전망대에서 내려가야 한다. 히말라야는 해가 지면 갑자기 추워진다. 롯지로 돌아와 가이드가 건네준 온수 한 바가지로 건식 세수를 하고, 한 컵으로 양치를 한다. 그리고 주문한 모모(만두)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하지만 몸과 식욕이 지쳐 반의 반도 못 먹는다. 가이드는 트레킹 시작할 때 작은 마을에서 산 사과를 깎아 준다. 같이 먹자는 제안에 씨익 웃고 만다. 가이드와 포터의 체력을 걱정할 필요 없다. 그들에게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는 동네 앞산이다. 등산화 대신 슬리퍼 신고 20kg 이상 짐을 메고 동행한다. 짐을 어깨에 메지 않고 앞이마에 의지하여 경추가 모두 망가질 것이다. 정상 코스보다 지름길까지 훤하다. 하지만 고난의 방문객 얼굴은 검고 볼 살은 홀쭉하다. 얼굴에 자외선 차단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지만 검게 타는 것이 아니라 검게 익는다. 롯지는 우리들의 산장 대피소 격이다. 대개 2인용으로 콘크리트 바닥에 합판으로 벽을 세우고 그 안에 나무 침대가 있는 작은 숙소이다. 밖은 진한 어둠이고 그 날 타레파티 기온은 영하 12도(5,000m급 롯지의 밤은 영하 20도). 낮에 흘린 땀이 식어 몸은 더 춥고 끈적인다. 따뜻한 샤워가 간절하다. 도심 네온사인과 시끌벅적한 주막의 온기가 그립다. 퇴근하고 따뜻한 저녁 식사와 거실의 텔레비전이 떠오른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움추린다. 준비한 책은 손이 시려 책장을 넘길 수 없고 지친 몸은 모두를 거부한다. 스마트폰에 준비한 음악을 듣는다. 에디트 피아프의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가 차가운 롯지에 흐른다. 좋아했던 절규가 왜 이리 처량한지 모른다. 홀로 추운 롯지에서 상념에 젖는다. 두고 온 가족이 떠오르고, 질병과 환자와 벌이는 닫힌 공간에 몸서리치고, 삶의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한다. 외롭고 그립다. 극한 시간은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든다. 착한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어젯밤 마시고 남은 생수가 꽁꽁 얼었다, 먼동이 트기 전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 서둘러 롯지 마당에 선다. 다운파커와 털모자를 눌러 쓰고 손은 패딩에 넣어 추위를 피한다. 저 멀리 검은 암릉 위로 붉은 여명이 서서히 떠오른다. 묵직한 히말라야는 아직 말이 없다. 그저 조금씩 아침을 열고 있다. 차츰 설산을 드러낸다. 그리고 잠시 힘찬 일출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눈이 부시다. 히말라야와 또 하루를 시작한다. 추위와 고독 속에서 지낸 밤이지만 몸이 가벼운 것은 당신 때문인지 모른다. 더 고도를 높여 고사인쿤드로 가고 싶지만 중간 하룻밤 지내야 하는 페디 롯지는 겨울이라 폐쇄되어 오를 수 없다. 그 위 레우나야크 패스(4900m)는 1년 전에 다녀와 다른 산맥으로 서서히 하산하기로 했다. 어쩌면 입산한 승려가 환속의 여정에 든 셈이다. * 나마스테 당신의 신을 존중합니다. 무한 겸손이다. 네팔 사람들은 그런 신앙을 생활화하며 사는 것 같다. 포터는 트레커가 준 초콜릿을 산행 중에 만난 꼬마들에게 건넨다. 그에게 귀한 것 일텐데 나눔을 실천한다. 롯지 주인아주머니는 힘든 포터에게 쌀밥 달바트를 무한 리필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공동체 같은 느낌이다. 3,4000m 고산 마을 작은 학교 코흘리개 꼬마들도 트레커를 만나면 인사한다. 나마스테. 어쩌면 서울은커녕 카트만두도 한번 가보지 못하고 그 산자락에서 평생을 보낼지 모를 그 꼬마들은 두 손 모아 인사한다. 그들에게 히말라야는 교육이고 신앙이고 삶의 터전이다. 분노 욕심 어리석음을 버리는 인간 교육은 자연이 내려준다. 분수를 알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지혜가 있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은 항상 평화롭다. 천진난만한 얼굴이 저 히말라야 하늘처럼 맑고 밝다. 여행자는 그 코흘리개 꼬마를 통해 묵언 수행한다. 트레킹하면서 만나는 설산 이외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산허리 그 좁은 땅에 만든 다락논은 방문객의 발길을 잡는다. 산을 개간하여 층층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겨우 1~3m의 폭에 벼를 심고 감자를 키우고 옥수수를 재배한다. 한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천수답 척박한 땅의 옹색함이다. 다락논으로 GNP GDP 통계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여행자에게는 색다른 풍경이지만 그들에게는 고단한 터전이다. 누가 네팔을 축복의 땅이라했던가? 히말라야는 1번만 온 사람은 없단다. 1번 오면 착한 마약처럼 자주 찾게 된다는 히말라야. 그저 미소로 답한다. 히말라야를 설산 고산 골산으로만 보면 옹색하다. 신앙과 철학의 공간으로 접근하면 더욱 그 깊이가 있다. 트레커들은 그런 의미로 히말라야를 찾아 지혜와 겸손을 배운다. 저 멀리 하얀 히말라야를 바라보며 바람에 펄럭이는 타르초에 편지를 쓴다. 터벅터벅 올라온 자신은 대견하여 누군가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고 싶다.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은 히말라야의 교훈이다. 그동안 물질과 풍요에서 소유했던 것을 버리고 비우는 여행이다. 어느 스님의 ‘무소유’ 여정인 셈이다. 잠시 선승이 된다. 산길을 걷다 주민과 꼬마를 만나면 두 손 모아 ‘나마스테’ 인사를 나눈다. 히말라야에서는 모두 네팔 사람이 된다. * 바람은 말씀을 나른다 사실 하산은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지만 그렇지 않다. 목표한 정상을 무사히 오른 성취감 보다 아쉬움이 더 크다. 다시 올 수 없는 아쉬움으로 오히려 하산 길은 무겁다. 하산은 설산들이 자꾸 눈과 마음에서 멀어진다. 등산은 설렘 두려움, 하산은 아쉬움 허전함이 동반한다. 가파른 눈길을 아이젠에 의지하여 하산한다. 내린 눈이 반쯤 얼음으로 변해 쉽지 않다. 히말라야에서 부상당하면 대책이 없다. 발목이라도 삐면 산은 더욱 험해진다. 특히 엉덩방아 압박골절이라도 생기면 더욱 난감하다. 어느 트레커는 슬관절 인대 파열로 네팔 헬기 구조 요청했는데 그 비용이 만만하지 않았다. 미화 5천불이면 650만원이다. 조심 조심 고도 1,000m 를 낮추어 4시간 만에 도착한 마을은 멜람치강(2600m). 듬성 듬성 작은 집을 짓고 사는 주민들은 족히 100가구가 된다. 집마다 기다란 장대에 경전을 새긴 기다란 천을 매단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 경전의 말씀이 바람타고 저 먼 마을로 전한단다. 귀한 말씀을 바람을 통해 전하는 신심이다. 바람은 착한 심부름꾼으로 생명체로 다가온다. 타르초를 스치는 바람을 통해 잠깐 머물다가는 우리들의 삶을 생각한다. 한동안 바람에 펄럭이는 타르초를 본다. 무상(無想)이다. 멜람치강 마을 주민은 타망족으로 모두 불교신자라니 불국토가 따로 없다. 가이드는 샤워할 수 있다며 얼굴이 밝다. 계곡물을 이용해 만든 수력발전으로 고물 순간 온수기가 물을 데운다. 사용량이 많으면 자주 단전되지만 졸졸 뜨거운 물이 반갑고 고맙다. 떡진 머리를 감고 발가락 사이 꼬랑내를 씻는다. 이제 사람 꼴이 난다. 1주일 이상 자란 하얀 콧수염 턱수염은 남긴다. 서울에서 매일 아침 면도했는데 산행 중에는 도사처럼 길러본다. 염색과 면도로 흑발이 백발로 변하는 세월을 숨기고 산 도시 생활을 거부하고 자연 상태로 방치한다. 그 자연을 통해 세월을 읽고 싶다. 면도로 숨긴 하얀 수염은 자신의 세월을 그대로 드러낸다. 일탈. 이 또한 여행이리라. 트레커는 롯지 주인의 양해를 구해 주방에서 준비해간 한국 라면을 끓인다. 끓는 물에 라면과 스프를 넣고 기다린다. 간단한 요리이지만 그들에게는 생소하다. 가이드, 포터, 롯지 주인아주머니, 그 아들 모두 라면을 먹는다. 네팔 사람들 눈이 휘 둥그레진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딜리셔스! 레몬티를 마시고 저 먼 산을 본다. 아직 설산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엄청난 암석의 골격 위를 덮고 있는 만년설은 마을의 수호신 같다. 주민들은 매일 아침 그 설산을 보고 정중히 합장하는지 모른다. 산간마을의 햇살이 평화롭고 방문객도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 베품은 얻음이요 그동안 트레킹 하면서 산간마을 주민들에게 의료 봉사하고 싶었다. 히말라야를 찾아 네팔인들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을 가졌다. 롯지 주방(대개 낮은 철제 난로로 난방과 요리를 하는 공간)이 진료실이다. 멀리서 의사가 왔으니 치료받으러 오라고 소문낸 상태였다. 한국어 반벙어리인 가이드가 통역을 하고 좀 어설픈 진료가 시작되었다. 네팔 주민들은 생소한 의사에게 몸을 맡기고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한다. 정부에서도 민간 의료인도 이 오지 마을에서 진료를 하지 않았을 것 이다. 먼저 준비해 간 자동전자 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고, 알코올 솜으로 소독한 손끝에서 혈액 한 방울 채취하여 혈당을 체크한다. 주민들은 이런 신기술 진료가 처음이다. 요통환자는 침술과 간접구, 그리고 준비해간 환산제를 투약한다. 한약은 보통 10~20일분 처방한다. 한의원에서 준비해 간 엑기스 환제 등이 많아 포터가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자주 만날 수 없는 환자들이니 좀 더 넉넉히 처방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물론 오적산과 육미지황환으로 퇴행성과 협착증의 요통을 온전히 치유하지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의료인의 사명이다. 한 할머니가 어두운 발걸음으로 진료실을 찾았다. 왼쪽 경부에 심한 부종 종양이 발생했다. 갑상선이나 임파 결절일텐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단순한 염증 소견일 수 있지만 종양이 발생한 상태로 여겨졌다. 물론 양성인지 악성인지 또 확인할 방법이 없다. 침구요법도 약물요법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진료실을 떠나는 그 할머니의 발걸음은 무겁고 의료인의 마음 또한 무겁다. 저 혹이 커져 기도를 압박하면 큰 일날텐데 난감하다. 그 할머니는 병명도 모른 채 고통 속에서 돌아가실 것이다. 카트만두 병원까지는 멀고 먼 길이다. 멜람치바자르까지 걸어서 꼬박 1박 2일이고, 그곳에서 시외버스로 비포장도로 4시간 거리에 먼지의 도시 카트만두가 있다. 그 병원 의료시설, 의료진 또한 큰 기대를 할 수 없다. 생각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있어 방문 진료한다. 운동기질환으로 요추 슬관절 질환이 많고, 뇌혈관질환으로 두통 편마비 질환도 발견할 수 있었다. 혈압 당뇨 검사는 물론 침구 치료가 처음인 주민들은 대단한 호응을 보였다. 처음 보는 침구 치료는 신비롭고, 그 만큼 기대가 컸으리라. 의료인은 정성 그리고 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의료는 치유의 기원 영역까지 포함된다. 히말라야는 트레커들에게 아름다운 만년설이지만 그들에게는 척박한 땅이다. 주민들에게 물질 없는 히말라야는 좀 고단하다. 방문객은 문명 대신 문맹의 공간인 고산마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른다.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간혹 고혈압 환자가 있었지만 특이한 것은 혈당 수치가 높은 주민이 많았다. 식후 혈당 140mg/dl 넘는 환자가 진료 환자의 반 정도였다. 주민들은 알랑미 같은 밥을 많이 먹는다. 아마 탄수화물 섭취가 많은 까닭이 아닌지 추적해본다. 영양가 없는 식사라 대신 밥의 양이 많다. 동행한 포터는 필자 보다 족히 5배 이상의 밥을 먹는다. 손으로 잘도 비벼 먹는다. 분명 식사로 인한 혈당의 상승인 것으로 사료 되었다. 네팔 보건 당국의 역학조사 통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날 일행은 또 다른 마을로 이동하여야 한다. 내리막 1시간 오르막 4시간 거리의 타르게강(2590m)에서 진료가 예정되어 있었다. 전날 약재를 나누어 주어 좀 가벼워진 가방을 챙기고 마을을 떠나려는데 어제 치료받았던 주민들이 환송 나왔다. 감사하다고, 이 먼 곳을 찾아 치료해 주어 고맙다고, 생전 처음 혈압 혈당 검사받고, 난생 처음 침 치료 받은 것은 축복이라고, 무슨 인연있어 그 먼 산간마을 찾아왔냐며 고개 숙여 두 손 모아 합장한다.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인연이지만 참으로 반가웠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 이방인 한의사에게 카타(khata)를 목에 걸어 준다. 카타는 하얀 천으로 만든 목도리, 자신의 순수로 당신에게 감사와 안녕을 기원한다는 염원의 표시이다. 고이 간직하고 있다. 네팔 여행은 히말라야 설산뿐만 아니라 네팔인들의 순수까지 보아야 한다. 어느 초월적 존재가 있다면 그는 네팔(인)에게 물질 보다 순수를 주었는지 모른다. 그들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모두 풍광이 좋다. 그리고 그 코스 모두 힘들다. 그래서 찾는지 모른다. 트레커는 히말라야로 떠나기 전에 염색을 한다. 그는 흰머리가 많아지는 자신을 히말라야가 알아보지 못할까 부푼 가슴으로 염색을 한다. 히말라야는 생명체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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