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뇌과학 및 침술 분야 국제 연구를 통해 장뇌피부축 대상 침 치료 효과를 뒷받침하는 신경·분자 기전이 다각도로 규명됐다.
경희대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AMSRC) 박히준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원 남민호 박사와 지난달 28일 경희대 스페이스21 263호에서 ‘지속가능한 건강한 미래를 위한 침 치료 기술 발전(Advancing Acupuncture for a Sustainable Future in Health)’을 주제로 ‘국제 침 연구와 전환·응용 심포지엄(Acupuncture Research & Translation Symposium·이하 ART)’을 공동개최, 전 세계 침 치료 기술의 최신 과학적 성과를 공유했다.
이날 이향숙 AMSRC 센터장은 인사말에서 “침 연구가 과학적 언어로 기전을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역사적 전환점으로, 이러한 연구의 흐름이 침 치료의 세계적인 근거 기반 마련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번 발표들이 그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으며, 박히준 교수는 “이번 ART를 통해 글로벌 연구자와 임상의가 함께 모여 환자 삶의 질 향상과 새로운 학문적 통찰, 의미 있는 협력, 그리고 통합의학의 미래 비전을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위장운동·피부질환·신경퇴행질환 분야 근거 제시
이날 첫 세션(좌장 남민호·김지은)에선 △Neuroanatomical organization of electroacupuncture in modulating gastric function in mice and humans(유신빈 중국 푸단대 뇌과학연구소 박사) △Unveiling the Gut-Skin Axis: How Microbiome Composition Determines Acupuncture Efficacy in Atopic Dermatitis(김규석 경희대한방병원 교수) △Modulating Gut Microbiome in Atopic Dermatitis: Insights from a Clinical Trial of Gwakhyangjeonggi-san(김민희 강동경희대한방병원 교수) △Hypothalamic circuitry underlies acupuncture-induced relief of constipation in a Parkinson’s disease model(박히준 교수) 등의 주제 발표를 통해 위장운동, 피부질환, 신경퇴행질환 관련 침 치료 연구가 발표됐다.
그동안 국제학술지 ‘Nature’, ‘Neuron’ 등에 연구성과를 발표해온 유신빈 교수팀은 뇌과학 분야 세계적 연구 그룹으로, 이번 심포지엄에선 고강도 족삼리(ST36) 전침의 위장운동 촉진 기전에 대해 조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동물모델에서 전침이 TRPV1+ 말초 감각신경을 활성화하고, 뇌의 미주신경 배측운동핵(DMV) 내 옥시토신 뉴런을 자극해 위장운동을 촉진하는 경로를 규명했는데, 이 기전은 인체 연구에서도 확인됐으며,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도 위장운동 개선 효과가 재현됐다.
유 교수는 뇌과학 분야 대표적 국제학술지 ‘Neuron’에 게재된 이번 연구에 대해 “침 치료가 뇌-장 축을 매개로 위장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라고 밝혔다.
침 치료 반응성과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관계를 규명한 김규석 교수팀의 연구에선 침 치료 반응이 좋은 환자군과 그렇지 않은 환자군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뚜렷하게 달랐으며, 이들의 마이크로바이옴을 동물에 이식했을 때에도 동일한 반응 차이가 재현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이는 장 마이크로바이옴이 침 치료 효과의 핵심 조절자임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는 향후 환자 맞춤형 침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동경희대병원 김민희 교수팀은 한국한의학연구원과 공동으로 곽향정기산의 아토피 피부염 치료 효과를 규명, 소화기 이상 동반 환자 대상 장 마이크로바이옴과 대사체를 함께 분석한 결과 한약 투여가 장내 환경을 변화시키고, 피부 증상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이러한 맞춤형 한약 연구 방법론을 침 치료에도 적용하면 한의학의 두 축인 침과 한약이 상호 보완적 과학 근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히준 교수팀은 파킨슨병 환자의 대표적 비운동 증상인 장 기능 이상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동물모델에서 양릉천(GB34) 자침이 외측시상하부 MCH 신경세포를 활성화해 장기능을 개선하고, 뇌 신경 보호 효과를 동시에 나타내는 기전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 2024년 학술지 ‘Advanced Science’에 보고한 신경보호 연구를 확장한 결과로, 박 교수는 “신경-장-미생물 축을 통한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 수면·대사·통증·불안 조절, 침치료의 신경과학적 메커니즘 부각
두 번째 세션(좌장 김민희·유신빈)에선 △Sleep Homeostasis regulate energy metabolism through hypothalamus-adipose axis(장홍 중국 베이징대 신경과학연구소 교수) △Rebalancing the brain by targeting astrocytes(남민호 KIST 뇌과학연구소 박사) △Identification of a dual-function microRNA panel for pain prediction and treatment response monitoring in chronic neck pain(김승남 동국대 한의대 교수) △Neural modulation by acupuncutre: Clinical neuroimaging studies in anxiety and Parkinson's disease with pain(김지은 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을 주제로 수면, 신경교세포, 만성통증, 뇌 영상을 아우르는 침 치료 연구 내용이 소개됐다.
수면 항상성과 에너지 대사의 연계 기전 발표에 나선 장홍 교수팀은 시상하부-지방조직 축(Hypothalamus-Adipose axis)이 수면 회복과 에너지 대사를 동시에 조절한다는 사실을 동물 모델과 공간 전사체 분석을 통해 규명했다.
홍 교수는 “수면 장애와 대사질환(비만, 당뇨 등)의 밀접한 연관성을 고려할 때 침치료가 수면-대사 축을 조절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남민호 박사팀은 별세포(Astrocyte)를 타깃으로 한 뇌기능 정상화 기전을 소개했다. 별세포는 단순한 보조세포가 아니라 흥분-억제 신호의 균형, 신경가소성, 에너지 대사 등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
병리적 조건에서 반응성 별세포가 비정상적으로 GABA를 분비해 신경 회로를 교란시키는 과정을 통해 이를 조절함으로써 뇌 기능 회복을 도모할 수 있음을 제안한 남 박사는 “별세포는 뇌 질환의 새로운 치료 타깃이자 침치료 기전을 설명할 수 있는 미래적 연구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김승남 교수팀은 만성 경부통 환자에서 침 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microRNA 바이오마커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기계학습을 활용해 통증 예측과 치료 반응 평가에 활용 가능한 이중기능 microRNA 패널(miR-3681, miR-4743, miR-6822)을 규명했다.
이들 microRNA가 PI3K–Akt/mTOR, TGF-β, 시냅스 가소성 등 통증·신경조절 핵심 경로와 밀접히 연관된 것으로 밝혀낸 김 교수는 “이 연구는 ‘환자 맞춤형 침 치료’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향후 대규모 임상 연구로 검증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지은 박사팀이 수행한 불안장애 환자 대상 뇌신경 조절 연구에선 전침이 전대상피질(ACC)의 에너지 대사와 시상 연결성을 조절해 불안 수준을 낮춘다는 사실을 뇌영상(MRS, rs-fMRI)을 통해 입증했다.
또한 파킨슨병 환자 대상 수기침(Manu) 치료는 시상의 대사 변화를 유도해 통증 감소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김 박사는 “침 치료가 약물치료를 보완할 수 있는 ‘비약물적 뇌신경 조절 전략’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 박사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이번 심포지엄은 침 치료의 신경·분자 기전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장–뇌 축부터 뇌영상과 미세분자 분석까지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한 자리였다”며 “앞으로 침 연구가 환자 삶의 질 향상과 세계 보건의료 기여를 위해 국제적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은 연구재단 지원 과제인 Global 기초연구실 ‘신경네트워크 기반 침처방 구성원리 규명 연구실(RS-2024-00409969)’, ‘한중협력연구사업(RS-2024-NR121316)’을 비롯해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지원을 통해 개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