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서울시당 정책간담회(20일)
[한의신문] 한의사가 의서를 공부한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의사가 혼자 방에 앉아 오래된 책을 넘기며 고심하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이런 상상에는 의서 공부가 혼자서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런 가운데 이태형 원장(경희이태형한의원)은 7년째 의서 공부 모임인 ‘의공모’를 주관하며, 열린 토론을 바탕으로 의서를 함께 공부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의공모는 한의과대학 학생부터 10년차 임상 진료 원장까지 의서를 열심히 공부해 실제 진료에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동의보감을 중심으로 의학입문, 경악전서 등 다양한 의서에 대해 온라인 화상회의 형식으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의공모 구성원들은 임상 진료 현장에서 허실을 판별하고 치료의 대강을 세우는 데 있어 맥진이 중요함에도 불구, 맥진 교육이 너무나 부족한 현실에 공감하게 됐다. 이를 해결키 위해 의공모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닌 임상적 활용이 가능한 의서 공부를 목표로, 직접 만나 맥진에 대해 토론하고 실습하는 간담회를 진행했다.
1일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경혈학교실에서 진행된 이번 간담회에는 이태형 원장을 비롯해 임상 한의사들(경희라라한의원 조인영 원장, 최근형 원장, 김하준 한의사)과 경희대학교 경혈학교실 이인선 교수, 경희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윤나 교수, 그리고 20여 명의 전국 한의과대학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돼 맥진과 관련된 의서를 함께 읽고 서로 맥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간담회는 이태형 원장이 의학입문의 諸脈體狀과 진맥문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조문을 살펴보는 강의로 시작됐다.
이 원장은 “동의보감의 맥진 관련 내용들은 의학입문의 내용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의학입문을 통해 맥진을 학습하는 것은 동의보감의 맥진을 학습하는 것과도 효과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며 “이 같은 맥진 학습법은 현동학당 김공빈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익힐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날 이 원장은 강연을 통해 諸脈體狀을 공부할 때 용어를 암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서에 표현된 맥상이 실제 임상에서 어떤 식으로 느껴지는지, 다양한 임상케이스에서 환자들의 증상과 맥의 그림을 통해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또 장부의 배속을 확인하고 비슷한 맥을 구분하는 법(諸脈相類), 관련된 병증(諸脈主病)을 함께 살펴보며 실제 임상에서 맥을 확인해서 허실을 판별하고, 이를 기준으로 침 치료를 시행할지 여부와 처방의 종류를 결정하는 방법들도 함께 공유했다.
맥진이 치료의 대강을 세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전달하는 한편 한자 원문으로 표현돼 어렵게 느껴지는 여러 종류의 맥상들이 실제 한의사의 손 끝에서 어떤 느낌으로 전달되고 이것을 서로 대화할 때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내용도 전달했다.
강연 이후에 학생들은 △촌관척 정위하는 법 △민감한 손가락을 확인하는 법 △한 손가락으로 촌관척을 하나씩 맥진하는 법 등을 배우고 난 뒤 조별로 모여 한 사람의 맥을 여러 사람이 짚어본 후 맥의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맥상을 자유롭게 표현해보는 실습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사람마다 인지하는 감각이 다양하다는 것, 같은 맥을 짚어도 상이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주관적인 감각임에도 불구하고 일치하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더불어 서로 간의 맥진을 공유한 이후에는 다시금 동일한 맥을 짚어봄으로써 이전에는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던 맥상을 살펴보기도 하고, 본인이 지각했던 맥상을 다시금 검토해보기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자유롭게 맥을 짚어보면서 임상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팔요맥을 진단하는 실습도 함께 진행됐다. 특히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맥이 나타난 사람의 맥을 서로 돌아가면서 짚어보며 감각적으로 느껴보는 연습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이제 맥을 조금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맥진을 연습하고 임상에서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감각의 영역이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일치된 견해를 도출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지각한 감각을 완전히 확신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에 이번 실습에는 ㈜대요메디(대표 강희정)에서 후원한 3차원 맥영상 검사기 ‘DMP-LIFE PLUS’ 장비를 활용, 임상 진료 원장들과 학생들이 직접 맥영상 검사기를 활용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참가자들은 맥영상 검사기를 직접 이용해보면서, 제공되는 임상정보를 이용해 본인의 맥진 결과와 비교하고 임상 진료 현장에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날 실습에 참여한 정윤아 학생(경희대)은 “맥이 주관적이라는 의견이 다수 있지만, 이번에 실습을 해보면서 결국엔 같은 맥을 짚었을 때 사람들간 표현이 다를 뿐 이해하는 바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또한 진단에서 맥이 많은 정보를 준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또 손화합 학생(원광대)은 “제맥체상을 스스로 복습했을 때는 진맥의 느낌을 알 수 없어 걱정을 했지만, 맥을 직접 살펴본 후 의견을 교류하는 활동이 매우 유익했다”면서 “임상과 연구에서 맥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운용되는 실태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셔서 현실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조민수 학생(원광대)은 “의공모 모임에서 동의보감의 내용대로 진단을 하고 치료해 호전된 임상 사례를 들으면서 한의학 자체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갖게 됐다”면서 “의서에 써있는 맥의 표현 방식이 모두 추상적이고 애매해 맥진이 늘 멀게 느껴졌는데, 이번 실습을 통해 추상적으로 쓰여졌던 표현들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태형 원장은 “맥진 학습이 까다로울 수 있지만 부-침(높낮이), 지-삭(빠르기), 활-삽(형태), 대-세(크기)와 같은 팔요맥에서 제시한 기준과 허실(유무력)이라는 기준을 통해 학습하고, 계속해서 환자 치료 경험을 통해 데이터를 쌓아 나간다면 사람에 따라 해상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누구나 맥진을 익힐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들의 맥파 신호를 이용한 변증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 중인 이인선 교수는 “현재 한의과대학에서 맥진 실습이 부족하다는 것에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맥진 연구 프로그램과 실습 프로그램을 개발 중에 있다”면서 “Gold standard가 없다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의서를 기반으로 공부하고 맥을 짚어보면 맥이 절대로 체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이태형 원장님의 말씀에 동의해서 맥진 공부의 장을 마련해보고 싶었으며, 좋은 기회를 주신 이태형 원장님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또한 김윤나 교수는 “의서에 기록된 지식과 다른 임상의들이 느끼는 맥의 특징 및 증상과의 연계성을 함께 공유하며 내가 인식하는 맥상을 비교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 매우 소중한 시간이 됐다”며 “맥은 한의학의 환자 평가에서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실습과 정보 축적이 계속된다면 추후 실제 임상데이터를 바탕으로 맥진의 객관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의공모에서는 앞으로도 공부 모임과 임상 술기 실습을 정기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의서를 기준으로 임상 한의사들 간에, 또한 임상 한의사와 연구자 간에 더 많은 의사소통이 이뤄질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하고 한의학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과정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더불어 학생들에게도 한의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