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경북 보건단체 의료봉사를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캄보디아 캄퐁톰에서 실시하고 귀국했다. 이 봉사에는 경북한의사회는 물론 지역의 의사회, 치과의사회, 약사회, 간호사회 등도 함께 동참함으로써 보건단체 간 긴밀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번 의료봉사에서는 봉사단 부단장역을 맡아 처음부터 무거운 부담감과 책임감을 갖고 임했다. 7월 25일 11시에 김해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여 비행 후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한 뒤 1시간여를 더 비행하여 캄보디아 씨엡립에 도착했다.
캄보디아 현지에 도착하니 경북 의사회 소속 답사팀과 김명철 차관(한국인이면서 캄보디아에서 차관급직위를 가지고 있음)을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우리 일행은 씨엡립 공항에서 짐을 찾아 버스를 타고 3시간여 거리에 위치한 봉사 장소인 캄퐁톰으로 이동했다.
26일 오전 8시, 봉사장소인 캄퐁톰 주립병원에는 대충 보아도 500여명이 넘는 캄보디아 주민들이 뜨거운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캄퐁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시는 분들도 많이 오셨다고 한다.
한의사·학생·가족 단원 등 12명의 봉사단 운영
이번 봉사에 한의과팀은 경북한의사회 김현일 회장·이재덕 명예회장·정병곤 전산이사, 동국대 한의대 한창호 교수, 김수현 한의사 등과 동의대 본과 4학년 이주원, 대구한의대 본과 3학년 임경민, 동국대 예과 2학년 백서진 등의 한의대생, 그리고 가족회원 3명 등 12명의 단원이 참가했다.
진료실은 한의사 1인, 비한의사 1인의 2인 1조로 총 6개과를 구성했다. 두 곳의 진료실은 20평 남짓한 크기였는데, 문제가 생겼다. 한 진료실은 에어컨이 가동 됐으나 다른 진료실은 에어컨 자체가 없었다.
캄보디아에서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의 진료는 그 피로도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럼에도 이재덕 명예회장께서 여성 회원들에게 에어컨 있는 진료실을 배정하자는 의견에 모두 동의해 3일간의 진료는 여성을 배려하는 진료실로 운영할 수 있었다.
진료를 돕기 위해 남학생인 민쯔이대학 한국어과 2학년 쑤이와 여학생인 한국어과 1학년 씨어파이와 씨우난이 통역자 역할로 합류했다. 하지만 실제 대화하다보니 생각보다 한국말이 많이 서툴렀다. 이에 대책을 논의한 끝에 캄보디아 안내요원들 중 영어가 가능한 사람을 수소문해 2명을 찾아낼 수 있었다. 급한대로 그 친구들한테 통역을 요청해 도움을 받았다.
모든 진료 준비를 마치고 환자들을 맞이했다. 진료과가 6개라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많이 밀리지 않고 차분히 진료가 진행됐다. 그렇기에 한 분 한 분에 대해서 더욱 세심히 진료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맥진에 이어 설진을 했다. 맥진은 악수하듯 손을 달라고 해서 손을 당겨와 촌관척에 손가락 세 개를 얹어서 진맥하면 됐고, 설진은 내가 먼저 혀를 내밀면 따라서 혀를 내밀어주니 굳이 상세히 말하지 않더라도 진단이 가능했다.
올림픽 국가대표인양 정성다해 한분 한분 진료
또한 통역을 통해 아픈 부위를 물어보고 촉진을 하면서 관절과 근육상태를 체크한 후 자리를 옮겨 침 치료를 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여러 부위에 침을 맞고 싶어서 여기저기 침을 놔달라고 하는 주민들이 있었는가 하면 예진파트에서 침 치료를 받으면 좋겠다고 한의과로 안내돼 와서는 침이 뭔지도 모른 채 바늘 같은 것으로 찌르려고 하니 무섭다며 거부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침 치료에 좋은 반응을 나타내 보였고, 치료 후에는 많이 편해졌다며 미소를 띠우며, 두 손을 합장한 자세로 ‘어꾼(감사합니다)’이라고 말하곤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한의사로서 벅차오르는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가슴 한쪽에 태극기가 새겨진 봉사단 단복을 입고 진료한다는 것이 마치 올림픽 국가대표가 된 느낌마저 들었고, 한분 한분을 진료하는데 있어 소홀함이 없도록 나 자신을 다잡게 됐다.
둘째 날은 가장 바쁜 날이었다. 전날의 소문을 들었는지 아침부터 어제의 두세 배 정도 되는 규모의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료 대기실 앞에는 이미 열대여섯 명 정도가 대기하고 있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이에 나름의 방책으로 두통이나 무릎 통증 환자의 경우는 의자에 앉은 채로 침을 맞게 했고, 경항통 환자의 경우는 간단한 추나 시술을 통해 효과를 바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바쁜 와중에 침을 맞고 나가는 60대 아주머님이 고맙다며 인사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찡했다.
아마도 침 효과가 너무 좋았던 것 보다는 우리의 진심 어린 진료에 대한 감사의 뜻이리라. 나 역시 “쫌부리업 리어”라는 헤어질 때의 인사말을 건네곤 했다. 우리의 이 같은 작은 행동이 그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많은 환자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후가 되니 등에서 흘러내린 땀이 이젠 얼굴에서도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에 머리가 어지럽고, 띵할 정도였다. 의료진의 갑작스런 체력소모에 대비해 경옥고를 준비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팀장으로서 모든 팀원들에게 경옥고를 나눠주었다. 경옥고 복용 이후 탈진할 것만 같았던 몸 상태가 제법 회복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력회복에는 한약이 최고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힘겹게 진료를 마친 후에는 캄보디아와 교류 및 봉사단 격려차 방문한 이철우 경상북도 도지사로부터 격려의 말씀을 들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위로였다.
셋째 날 역시 이미 진료소 앞에는 500여 명의 지역주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대기환자를 보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한방엑스제 중 보중익기탕, 가미귀비탕, 향사평위산 등은 여분이 남아 7일분씩 처방했다.
무릎이 아픈 엄마를 따라 온 5살 남짓되는 여자아이가 너무 귀여워 “쫌부리업 쑤어”라며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 하지만 아이는 낯선 사람의 인사가 어색했던지 해맑은 눈으로 내 얼굴만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봉사를 위해 캄보디아에 왔지만 그 봉사를 하는 이들에게도 흐뭇한 마음과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봉사의 묘미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흐뭇한 감정과 감사하는 감정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한의과팀은 3일 동안 총 483명을 진료했다. 정말 한분 한분의 진료에 진심을 다했기에, 그 같은 마음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
진료외적인 부분도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캄퐁톰의 전경은 영락없는 내 어린 시절 고향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캄퐁톰 시장과 그곳에서 북적거리며 물건을 파고 사는 주민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고향의 5일장과 꼭 닮았다. 정말 좋아했던 노래를 잊고 있다가 그 선율을 갑자기 들었을 때 어린 시절의 좋았던 추억이 떠올려지듯 50대 중반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 것 같았다.
봉사의 목적으로 캄보디아에 와서 그곳 사람들을 진료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꼭 도움만을 준 것도 아니다. 우리의 진료로 일시에 불치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갖고 있던 통증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나라 정치인들조차 제대로 신경쓰지 못하는 열악한 의료시설로 인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경에 처한 그들에게 우리의 작은 노력이 희망과 용기는 심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의료봉사, 우리 모두의 영혼을 치유
진료 시작하기 전 단지 상당히 먼 이국의 타인들을 치료하러 온 느낌으로 시작한 의료봉사를 통해 가까이에서 접한 그들은 영락없는 우리 이웃의 모습, 우리 한의원에 방문하는 시골할머니이자 할아버지들과 너무 닮았다. 부족한 진료에도 크게 감사했으며,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를 전해준 그들에게서 오히려 삶에 지친 내 모습을 되돌아보며, 치유 받는 기적을 경험했다.
캄보디아 캄퐁톰 주민들은 순수한 눈빛으로 감사의 마음을 건넸고, 해맑은 미소로 정성스럽게 인사해 줬다. 우리의 마음과 그들의 감사 표현이 주고받는 사이 우리 모두의 영혼이 치유가 됐던 것인지 모든 피로가 사라져버렸다.
진료를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오던 길, 마음속으로 외쳤다. “캄보디아여, 내가 너에게 한의진료를 줄 테니, 너는 나에게 순수함을 다오.” 나는 순수함을 가득 채워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내가 받은 순수함의 유효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년에도 순수함을 충전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캄보디아로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