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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3일 (수)

신미숙 여의도 책방-49

신미숙 여의도 책방-49

산삼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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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의료계의 한약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여전히 한약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강북삼성병원이 최근 60세 이상 남녀 235명을 대상으로 어버이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30%), 여(29%) 모두 보약이나 영양제 등의 건강 강화를 위한 약제를 받고 싶어했다.” 


이 기사의 출처는 『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물은 보약』(메디칼타임즈, 2005.05.02.)이다. 국민들이 한약을 선호한다는 기사는 반갑게 느껴지지만 이는 19년 전의 이야기다. 『허준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유용상, 군자출판사, 2005년 3월)에 이어 『미안하다 한의학, 보약이 있다구요! 그게 뭔데요!!』(남복동, 아이올리브, 2007년 9월) 류의 한의학 비판서적이 연달아 출간되던 그 시기, 한약과 한의학에 대한 의료계의 부정적인 입장이 기사나 서적으로 본격적으로 표출되었었고 2024년 오늘날까지도 한의계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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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지나고 국회 직원들로부터 한약 관련 여러 문의들이 있었다. “이번에 가족에게 선물받았는데 모 한방병원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이 제품, 나도 먹어도 되는거냐?”, “부모님 댁 냉장고에서 작년 추석 무렵부터 있었던 공진단을 이번에 발견했는데 지금 먹어도 되냐? 유통기한이 안 적혀 있더라”, “한약방하는 친구가 우슬모과 잔뜩 넣고 무릎탕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동네 노인들 이거 먹고 다 수술 안 했다며 한 제 다려줬는데 먹자마자 두드러기가 올라와서 다 버리고 친구한테는 안 전했다. 그런 처방이 진짜 있기는 하냐?” 대부분 큰 무리가 없는 선에서 가족과 지인간의 평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답변을 드렸다. 


명절 직후의 당근마켓에는 홍삼을 포함한 다양한 건강기능식품들을 현금화하려는 사람들이 제법 몰려든다. 현행법상 건기식 판매자는 영업 신고를 해야 하며 개인 간 거래도 신고가 필요하고 무료 나눔도 영업 행위에 포함돼 거래가 불가하기 때문에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집에 쌓여있는 홍삼을 어쩌란 말이냐 하는 다수의 민원이 얼마나 많았는지 건강기능식품의 개인 간 소규모 재판매가 4월부터 허용될 모양이다. 건기식은 대부분 상온 보관·유통이 가능하고 소비기한도 1∼3년으로 일반 식품보다 길며, 전체 판매량 중 온라인 구매가 68%에 이르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개인 간 재판매로 인한 건강 위해 우려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홍삼·비타민도 ‘당근 거래’ 가능해진다』,한겨레, 2024. 01. 16.).


홍삼의 대중화 이후 늘어나는 산삼 건기식 광고


“흔해지면 천해지는 법이다. 거기에 1980년대 말 대중소비시대가 열리면서 온갖 종류의 ‘기능성 건강식품’들이 각 가정에 침투했다. 그러자 홍삼을 향한 대중적 열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오늘날 홍삼은 한국인이 가장 애용하는 건강식품이기는 하나, 신비의 영약이라고 할 수 없는 물질이다.”


전우용 교수는 그의 최신 저서 『잡동산이 현대사 1, 일상·생활』(돌베개, 2023년 12월)에서 홍삼에 대해 위와 같이 기술했다. 애용되기는 하나 흔해졌고 흔해졌기에 신비롭다라고 하기엔 애매한 그저 긴 역사 덕분에 명맥을 유지하는 건강식품으로서의 홍삼일 뿐이다. 그래서 홍삼 선물은 무난할 뿐 별다른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안 먹는 홍삼류는 당근에서 현금화할 수 있으면 충분한 딱 그 정도인 것이다.  


흔해빠진 홍삼이 지겨워진건지 업계는 언젠가부터 산삼 제품을 엄청 광고한다. 팟빵이나 유투브의 많은 채널들에 0순위로 소개되는 제품들이 바로 산삼이 주재료이다. “여러분들, 어디가서 이 가격에 산삼 못 드십니다. 이 산삼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후략)”의 광고 문구는 기존의 홍삼 광고와 토씨 하나 다를 게 없지만 암튼 본인이 들고 있는 귀하디 귀한 산삼 제품은 특별하니 일단 하나 잡숴보시고 가족들에게 선물하시고 면역도 챙기고 독감, 코로나도 예방하라고 소리친다. ‘저런 건기식을 챙겨 먹어야 면역이 강화되고 건강을 회복하며 기력이 솟구쳐서 수명이 연장된다는 말인가?’라는 강력한 의심이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미 벌컥벌컥 치솟는다. 이런 마음은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한약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거의 비슷한 강도의 거부감일 것이다. 갑자기 의사들의 적개심이 확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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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결국 잘 먹고 덜 늙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희망한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질병이 발견되면 필수적인 치료와 그에 따른 투약을 하며 그 과정에서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건기식도 가끔은 먹고 필요한 경우 한의쪽의 치료도 병행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참 하면서 국회도서관 신간소개 코너의 책들을 들여다보는데 『가장 큰 걱정: 먹고 늙는 것의 과학』(도서출판 이음, 2023년 4월)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뉴욕대 의대 세포생물학과 류형돈 교수는 칼로리 제한의 효과, 젊음이란 무엇인가, 지중해 식단이 장수의 비결인가 혹은 줄기세포로 노화를 막을 수 있을까 등의 귀와 마음이 솔깃해지는 제목 아래 최신연구 경향을 포함한 다양한 내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노화의 종말』(도서출판 부키, 2020년 7월)의 저자 데이비드 싱클레어(David Sinclair)에 대한 동료들의 비판과 학계의 논란을 정리해둔 대목이었다.


2019년에는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 책을 출판했는데 일주일 만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리스트 11위에 올랐고,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출간됐다. 그 책에서도 과장되거나 정확하지 않은 주장을 많이 했다고 과학자들의 힐난을 받았다. 매거진 <보스톤>에서 동료 하버드 의대 교수를 인용한 것이 그 예이다. “그 사람이 연구하고 그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까지만 한다면 좋아요.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몸을 젊게 만드는 비법이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걸 보면 정상적인 과학자의 행동이라고 보기 힘들죠. 그가 최근에 쓴 책을 읽어보면 ‘이 사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에 대해 젊음의 비법을 발견한 인류의 구세주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과장은 이제 그만 하고 데이터로 승부했으면 좋겠어요.”

싱클레어를 취재한 기자에 의하면 싱클레어는 자신이 밀고 있는 NMN같은 약을 매일 스스로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약을 왜 복용하느냐고 기자가 묻자 싱클레어는 “나는 과학자니까”라고 대답했단다. 그리고 조금 머뭇거리더니 한마디 더 덧붙였다고 한다. “그리고요.. 나를 공격하는 내 과학적 적수들보다 오래 살려고.” 

 

과학자들은 그 약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의 원리가 작동한다. 실제로 효과가 없더라도 설득력만 있으면 투자자들이 몰리고 그 중간에 회사를 팔거나 주식을 상장해서 떼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이다. 궁극적으로 개발에 실패하더라도 이렇게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죄가 되지 않는다. 이제 싱클레어에게 투자하겠다는 자본가들이 다시 줄을 섰으니 그 돈으로 싱클레어는 계속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약들이 사람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지는 시간만이 알 일이다. 


하버드 의대 유전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싱클레어의 저서 『노화의 종말』은 ‘하버드 의대 수명 혁명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달고 2020년 7월 국내에 출간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그의 책과 강의를 편집하고 정리한 여러 동영상은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업로드되고 있다. 싱클레어가 날마다 복용 중이라는 제조사 ROKIT AMERICA의 항노화영양제는 1개월분에 19만원에 팔리고 있으며 해외직배송으로 주문 후 3∼4일이면 국내에서 받아볼 수 있다. 싱클레어 박사님만 믿고 언젠가는 효과가 나겠지 기대하며 복용 중이라는 댓글과 일단 뭔가 다르다는 보다 적극적인 긍정 반응을 표현하는 댓글들이 쇼핑몰의 복용후기란을 가득 채운다. 하버드 의대 교수가 본인도 날마다 먹고 있는 영양제이니 효과가 없을 수 없다라는 믿음의 힘이 어떤 결과를 맺을는지 끝까지 주시해 볼 일이다. 내 시선으로는 자본주의에 올라탄 또 한 명의 장사꾼 의사인데 역시 국내에서 하버드의 이름값은 강력하고 미제 좋아하는 심리 또한 본능적이라 이 쇼핑몰의 활황은 싱클레어가 동안과 명성을 유지하는 그 순간까지 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기식의 범람…그 피해는 누구에게?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건기식의 시장 규모는 2019년 2조9508억원에서 2023년 6조2022억원으로 2배 이상 확대된 것으로 추산된다. ‘2020 한의약산업실태조사’에서 2019년도 국내 한의약 산업 매출액이 10조3630억원으로 추산되었으니 2023년까지의 자연 증가분을 추산해 보면 건기식과 한의약 산업의 시장 규모를 대강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해외직구를 통해 전 세계의 기능성 의약품들까지 손쉽게 구입하는 시대가 열렸으니 국내 한의약 업계가 왜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지 쉽게 짐작이 된다. 싱클레어 박사가 자체 회사를 만들어 아직 검증이 완료되지는 않았으나 노화라는 질병을 치료하고 영원불멸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알약이 있다고 선전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를 얻고 추종자들의 구매력으로 엄청난 부를 유지하듯 국내에서는 의사도 유산균을 팔고 한의사도 도라지청을 팔고 흑염소즙도 팔고 몸에 좋은 가루는 다 모았다는 당뇨선식도 팔고 값비싼 보약을 재해석한 한방종합영양제도 파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그들을 뭐라고 손가락질 하겠는가?! 그렇게 못 나서는 나를 포함한 구경꾼들이 바보인거다.  

  

그러나, 국내외의 건기식의 범람 속에 지나친 과장광고로 식약처 과장에게 고소를 당하는 유산균 파는 소수의 의사는 욕을 먹어도 위중한 질환으로 대학병원에 생명줄을 맡기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 눈에 대부분의 의사는 의느님일 뿐이다. 장사하는 의사군과 진료하는 의사군이 구별된다는 말이다. 이에 반하여 한의학계의 건기식은 데이비드 싱클레어나 의사들의 건기식 시장과 달리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쪽으로의 끈질기고 지속적인 부정적 효과를 안겨주는 것 같다. 본인들은 돈 많이 벌어서 좋겠지만 박수를 쳐주고 싶지는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박카스로 유명한 제약회사에서 최근 경옥고를 출시하며 신문기사 하단에 주의사항이라고 작게 첨부한 글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첨부된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잘 읽고 의사, 약사와 상의하십시오”이다. 자양강장, 병중병후, 허약체질, 육체피로, 갱년기장애, 권태에 경옥고를 권하고 있다. 이 배너광고판을 세워놓은 약국이어서 였을까? “약사는 근거 중심으로 편견없는 건강상담을 합니다”라는 입구의 광고판 글귀는 “근거 중심 의학에 기반하여 본 약국에서는 한약도 열심히 판매하겠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경옥고도 제법 잘 나가는지 내용물을 뺀 빈 박스가 높게 쌓여있다. “365일 하루도 안 쉽니다”라는 약국의 간판글귀는 근면성실함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경옥고도 의사, 약사와 상의하고 365일 문을 여는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산삼유감에 이어 경옥고유감이다. 


확실한 치료효과만이 한의약이 살아남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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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플랜75>(2022년 작품)는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국가가 안락사 지원 정책을 시행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명퇴 후 플랜 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플랜 75 담당 공무원, 콜센터 직원 그리고 이용자의 유품을 정리하는 이주 노동자 각각의 시선과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2022년 6월, 국회의원 안규백은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했다. 말기 환자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법을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증진하자는 취지다. 한국리서치가 2022년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2%가 조력존엄사 입법화에 찬성했다. 영화를 보며 내게 떠오른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노인은 쓸모가 있는가?” “쓸모없는 인간은 사라져야 하는가?” “쓸모있는 것들만 남겨두는 것이 효율적인가?”


온 세상이 의대의대 합창을 부르는 듯한 이 혼란한 시대에 고요히 “한의사의 쓸모”를 끄적거려본다. “왜 세 달이나 체외충격파에 주사를 맞았는데도 팔꿈치 통증이 그대로일까요?” “불편하고 높은 사람이 동석하는 어려운 회의나 식사자리 이후 며칠 동안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등이 결리고 밥이 안 넘어갈까요? 이거 혹시 섭식장애 같은 거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너무 힘들더라고요” “횡단보도 걷다가 과속하는 SUV에 바로 옆에서 걷던 사람이 차에 치이는 장면을 목격한 후 물만 먹어도 구역감이 몰려와요.” 최우선의 방법으로든 대안적 혹은 최후의 모색으로든 한의사인 나를 찾아와준 이 많은 다양한 불편함을 지닌 환자분들에게 적확하고 시의적절한 치료를 통해 호전을 보여주는 것만이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믿는다. 그리고 이 쓸모의 미션은 계속 수행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시인 양광모는 그의 시 『2월 예찬』에서 “2월은 시치미 뚝 떼고 방긋이 웃으며 말하네, 겨울이 끝나야 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봄이 시작되어야 겨울이 물러가는 거란다”라고 2월을 노래하였다. 한의계의 긴 겨울은 언제가 되어야 봄을 맞이하게 될까? 한의계의 봄이 시작되어야 그제서야 겨울이 물러나는 것이라면 그 봄은 28일 밤 윤곽을 드러낼 제45대 대한한의사협회 집행진이 가져와줄 수 있으려나?! 과연 그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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