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택 교수
우석대학교 한의예과 진단학교실
지난해 연말 서울대학교에서 TEAM( Transforming East-Asian Medicine) Conference의 일환으로 ‘한의사 진료 역량 향상을 위한 맥진기 활용 워크숍’이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한의학 온라인 교육컨텐츠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주)7일, 서울대학교 미래교육혁신센터, 2023년 발족한 한국한의산업진흥협회(KOMPAS), 그리고 대한공중보건한의사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학술행사였다. 행사 당일 서울에는 많은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였지만 워크숍이 개최된 행사장은 이와 달리 참석자들의 열기로 매우 뜨거웠다.
워크숍은 총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1부에서는 대요메디(주)의 강희정 대표님의 맥진기 개요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맥진기의 역사, 맥파 측정 원리, 맥파 해석을 위한 혈류역학, 맥진기에 적용된 맥진 이론적 개요, 맥파 그래프의 구성과 맥파 측정 결과지의 해석 방법 등 맥진기와 관련된 전반적인 내용으로 구성됐다.
맥진기의 정식 명칭은 3차원 맥영상 검사기로 압력 센서를 통해 얻어진 요골동맥의 맥파를 분석하여 맥진에 필요한 정보를 획득하는 진단기기이다. 상완부 등에 압력을 가하여 맥압을 측정하는 것은 이미 자동혈압계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술이지만 요골동맥의 촌구맥 부위에서 가압력을 달리하면서 그에 따른 맥파를 획득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 개발된 기기나 다름없다.
맥진기는 한의학 맥진의 원리 구현
다른 맥진 강의들에서는 진단자가 맥진을 통해 획득한 감각을 인지하고 기억하여 다른 환자에게서도 재확인할 수 있게 하며, 획득된 특정 감각과 환자의 증상, 병리상태를 연계하는데 주안점이 있는데 반해서 본 강의에서는 센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표의 종류와 의미 그리고 획득된 지표의 병리적 해석에 주안점이 있었기에 맥진을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단지 진단자가 느낀 감각을 넘어 맥진을 통해 어떠한 진단적 지표를 얻을 수 있는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것은 맥진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의학과 무관한 과학적 원리에서부터 개발되어 한의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는 다른 진단기기들과 달리 맥진기는 처음부터 한의학 맥진의 원리를 구현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개발된 기기이기에 개발자에게 직접 그 원리와 개발 과정을 듣는 것은 굉장히 유익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2부에서는 무양한의원을 운영 중인 류미선 원장님의 맥진기 임상활용에 관한 사례 발표로 진행됐다. 원장님은 맥진기 출시 초기부터 꾸준히 임상에서 활용해 온 전문가로 많은 임상 사례를 공유해주셨는데 그 중 특히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사례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맥진은 한의학을 대표하는 진단법
일반적으로 운동을 오래한 사람에게서는 일반인과 차이가 있어 생리성 지맥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 맥진기 결과지들은 운동선수들과 일반인들의 맥상 차이가 단순히 생리성 지맥만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맥의 Strength, Stroke Volume, 맥파 Peak 값 및 맥파 그래프의 모양 등 여러 지표에서 다른 양상을 나타낼 수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또한 비록 환자는 아니었으나 현장 참석자를 대상으로 보여준 한약 복용, 자침 전후의 맥파 그래프 변화는 맥진기가 단순히 맥상의 정상 여부나 특정 맥상의 종류를 결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진단, 치료 및 예후평가 등 여러 임상과정에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맥진은 사진의 하나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의학을 대표하는 진단 방법으로 대부분의 한의사가 임상에서 각자의 수준에 맞춰 활용하고 있다. 이에 한의사 개개인은 모두 맥진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 할 수 있어 얼핏 이런 강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맥진을 하는 것과 맥진기를 활용하는 것은 사뭇 다르다. 맥진을 잘하여 환자를 정확히 진단해내는 것은 환자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고 치료에 동참하도록 하며 치료 과정과 예후에 대해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후자는 기술과 도구의 문제에 더 가까우며 이런 측면에서 맥진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최근 들어 환자들에게 한의학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생각해볼 때 이제는 이러한 기술과 도구의 발전 및 활용에도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 산업, 임상, 교육 등 전반 아울러
본 행사는 공중보건의와 한의대생 외에도 개원의, 봉직의, 기초한의학교수 등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참석했고, 주최 측 역시 진단기기 개발자, 임상의, 한의학 교육콘텐츠개발 전문가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었기에 학문, 산업, 임상, 교육에 이르기까지 한의학과 관련된 전반을 아우르는 학술행사가 됐다.
한의과대학 진단학 교실에서 맥진과 맥진기에 관해 강의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본 행사는 많은 해답과 고민을 동시에 준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느낌이었다. 시간 관계 상 다음 일정 진행을 위해 부득이 모든 질의응답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본 행사의 가치를 반증하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본 행사를 준비해주신 여러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