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당선수기에 내 이름 석자를 굵은 서체로 표기하여 특별한 감사 인사를 전할 것이라는 약속에 보험이라기보다는 선행의 느낌으로, 그저 응원하는 마음으로 꽤 많은 책들을 오랫동안 사 주었었다. 비록 작가로 등단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글이 아니라면 말로라도 먹고 살아야 하겠다며 대학원 공부를 이어가더니, 결국에는 언어치료사가 되었고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하는 일에 단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책을 사 주지 않아도 본인이 즐기는 책들은 맘껏 사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특히나 친애하는 시인들의 신간이 나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새 책 냄새에 도취되어 당일날 그 책들을 완독하고야 마는, 이름없는 시인으로 온라인에 자작시를 끊임없이 업로드를 하고 있는 매우 지적이면서도 부지런한 여인!! 그녀는 바로 우리집 넷째딸, 신모씨이다.
동생의 권유로 알게 된 ‘알래스카 한의원’
늘 책을 가까이 하고 그래서 시집을 포함한 화제성 있는 신간들은 물론이고 대형서점 마케터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구석에 소외되어 있는 진짜 좋은 책들도 기가 막히게 찾아내어 표지와 목록을 대충 살펴보곤 “요건 신박이 좋아할 책일세”라며 카톡으로 아주 자주 알람을 울려 준다. “『알래스카 한의원』이라는 소설이 있더라. 2023년 3월 초판인데, 왜 몰랐었을까? 당신이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의원이 제목에 박혀 있으니 안 읽고 넘어가기엔 아쉬우실 듯!!” “아, 그래그래.. 읽어야겠네. 마침 칼럼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쥐어짜는 글은 딱 보면 알어. 언니도 이제 슬슬 한의신문에서 발 빼소. 글은 말이야... 그냥 좌라락 나와야 하는 거야. 일필휘지! 알지? 아무리 시가 응축미라고 해도 정말 좋은 시는 시간을 얼마 안 들이고 썼구나. 억지로 안 썼구나. 정말 잘 썼구나.. 바로 알아보거든. 언니 글 담당하는 분에게도 말해둬. 더 이상 글이 안 나온다고!! 누가 들으면 대단한 사설이라도 쓰는 줄 알겠다잉. 암튼 글이란 게 쉽진 않지. 이번달도 잘 넘겨봐. 파이팅!!” 동생의 권유로 그리고 8월의 칼럼을 핑계로 숙제처럼 받아든 소설 『알래스카 한의원』은 이러한 배경으로 말미암아 요 며칠간 내 손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 갈 수 있는 병원은 다 가봤으니 한의원에 기대를 걸었다. 평소 동양의학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라 신뢰가 없었지만, 서양의학에서 ‘네 병은 우리가 잘 몰라’라는 게 확실해진 시점에서 이지(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전국구 한의원 투어가 시작되었다.
- 대체로 몸의 균형이 깨져 있다는 것은 같았지만, 진단에 대해서는 한의사마다 의견이 달랐다.
- 벌써 서른다섯 번째 한의원이었다. 음과 양의 조화에 대해서는 들을 만큼 들었다.
- 이지는 여러 사이비 의사를 만나봤지만, 이 정도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치 동양 야매 의학의 최전선에 있는 강적을 만난 거 같았다.
- 고담(알래스카한의원 원장)이 한약팩 두 개를 꺼냈다. “빨간색을 먹으면 부글부글 구역질이 날 겁니다. 그럼 후련하게 토하세요. 전부 다. 있는 힘껏! 그 다음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파란색을 드세요.”
- 이제 이지는 고담이 무엇을 파고들고 있는지를 알았다. 지금까지 이지가 만났던 의사들은 통증의 원인을 ‘교통사고’라는 물리적 충돌로만 보았다. 하지만 고담은 다른 측면으로 접근했다. 자동차 사고라는 매개적 사건이 과거의 통증을 깨웠다. 이지의 통증에는 오래된 과거가 있다고.
- 당신은 기억을 지웠지만, 과거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 상처가 났던 몸 속 세포들은 기필코 그 때의 통증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당신의 뇌가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말이다.
- “어쩌다 알래스카에 한의원을 차리셨어요?” “구구절절 설명하긴 어렵고, 치료해야 할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오게 됐죠.” “그래서, 그 사람은 치료 되었나요?”
- 막 진료를 마친 흑인 손님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여러 장 돈 통에 넣고 갔다. 보약이라도 지은 걸까.
- 고담이 데운 사물탕을 이지에게 건넸다. “마셔요. 허열에 좋습니다.” 이지가 사물탕이 든 잔을 받아 들었다. 왼손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자 어수선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 다음 날, 알렉스 베런(소아성애자, 주인공 이지의 오른손의 복합통증증후군을 유발한 그리니치 영어유치원의 원어민 교사)이 알래스카 스워드에서 검거된 일이 미국 전역에 대서특필되었다. 호머 지역 신문에서는 알래스카한의원의 고담 한의사와 친구들이 범죄자를 잡았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그날 오후 한의원에는 돈 통에 돈을 넣고 간다거나 와인, 보드카, 그림, 편지, 마리화나, 꽃, 초콜릿 등을 선물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 보드카 한 병이 금방 비워지자 고담이 한의원에서 약초로 담근 약술을 가져왔다. 모두 출처를 의심했지만, 아무튼 술이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로봇, 소리』, 『여고괴담3』 등의 영화 각본을 쓴 이소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알래스카 한의원』은 주인공 이지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오른팔과 손의 통증이 낫질 않아 험난한 고생을 감내하다가 ‘복합통증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알고난 후 치료방법을 찾던 과정에서 우연히 알래스카의 한인 한의원에 완치 사례가 있다는 논문을 발견하고 그 길로 알래스카로 떠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알래스카에서 결정적인 몇 사람들과 사건들을 만남으로써 본인이 가진 이 끔찍한 통증의 역사를 알게 되고 사진기 셔터도 누를 수 없었던 이지는 결국 손톱깎기로 손톱을 깎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을 맞이하는 해피 엔딩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 출간 전 영화 판권 계약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조만간 『알래스카 한의원』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준』, 『대장금』, 『마의』 같은 기존의 TV 드라마들처럼 한의계에 혹은 개원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살짝 궁금해진다.
미래에 개원한다면 한의원 이름은?
소설을 다 읽은 어느 날, 자매들과 『알래스카 한의원』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미래의 내 한의원 이름짓기가 주제로 떠올랐다. “『신미숙한의원』이 젤 깔끔하지 않어?” “야, 신박이 오은영도 아니고, 누가 신미숙을 알어?! 이름이 특이한 것도 아니고, 이쁘지도 않잖아. 빼자. 빼. 신미숙한의원은 아니다.” “『그녀의 한의원』어때? 그녀의 한의원, 뭔가 여성들의 주치의, 워너비, 왕언니 이런 느낌도 있고 남자 환자들에게는 뭔가 묘한 환상적인...” “야, 위험해. 요즘같이 페미논쟁이 최고조에 달해있는데 저건 나 잡숴라.. 하는 거야. 그리고 뭔가 원장이 엄청 이쁠 것 같잖어. 문 열고 들어왔는데 신박이 앉아있다고 생각해봐. 니가 그녀냐? 하면서 항의 엄청 들어올거야” 점점 자매들의 대화는 코믹과 조롱의 콜라보로 위태로운 절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냥 『신박 한의원』으로 해. “신박한+의원”로도 읽히고 “신박사+한의원”으로도 읽히고. 좋을 것 같은데” “안 돼, 의원인 줄 알고 코로나 검사하러 왔는데 한의원이면 욕 먹을 수도 있어. 요즘 진상이 어디 담백한 진상이던? 어디서 훅 치고 들어와서 시비걸지 모르니까 튀는 이름이면 위험해” “아.. 진짜 어렵다. 좀 없어보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한의원들은 동네장사쟎아. 그냥 『우리 동네 한의원』으로 소박하게 가고 그 동네를 좀 있는 동네로 골라봐” “아님,『모스크바 한의원』으로 하고 러시아 여인을 직원으로 고용해. 글로벌하게 가는 거야. 그 여인이 무섭게 생겼다면 진상들도 미리 퇴치할 수 있어. 일석이조야. 『모스크바 한의원』입에 척척 붙는다.” “하하” “깔깔” “우헤헥” 자매들과의 수다는 언제나 삶의 활력소다. 내가 놀림감의 중심이 되어도 그저 즐거울 뿐이다.
‘『우리 동네 진짜 원조 왕언니 신박사 한의원』으로 확 질러버려?!’라는 상상을 하다보니 갑자기 신당동 떡볶이 거리의 그 무질서한 원조 논쟁 간판 전쟁이 떠오른다. “이토록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다들 대단한 경력과 경쟁력으로, 거기에 놀라운 체력과 마인드는 기본이요. 상상 이상의, 실현 불가능한 최신식 마케팅 실력까지 얹은 채로 골목에서 동네에서 지하철 역세권에서 생존 중이신 모든 개원가 선후배님들에게 진심으로 심심한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최근에는 한의사 버전의 ‘강남언니’앱에 해당되는 한의원-한의사 찾기, 숨은 명의 추천하기 등의 기능을 갖춘 신상 앱까지 출시되어 이런 트렌드에까지 발맞추어 달려가자니 날마다가 가슴 벅참의 연속일 것 같다. 로톡이 변협과의 갈등으로 법정 다툼에까지 이르렀듯이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한의사 추천앱의 결말은 과연 끝까지 순조로울까?!
현재 의료 영역에서 한의계의 위상은?
잼버리는 끝이 났지만 잼버리 관련 후폭풍은 이제 막 시작된 듯하다. 매년 가을은 단풍놀이의 시즌이라기보다는 국정감사의 과로가 국회의 거의 모든 직원들에게 하사품으로 내려지는 시기라서 덩달아 우리 진료실도 이유 있는 바쁨이 거의 확정적이다. 잼버리 관련 국정감사도 그 과정은 이슈 대 이슈, 논쟁 대 논쟁, 공수교대 혹은 공수교차로 복잡다단 화려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우리 모두는 반복해서 그것도 분명히 확인했다. 모든 국감의 결과는 물에 물감 풀어지듯 결정적 한 방 없이 흐지부지했었다는 팩트 기술에 불과한 신문기사들만이 씁쓸하게 남을 것이다.
잼버리 영지 내에 한의진료센터를 두냐 마냐, 준비 단계부터 논란이 꽤 있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뒤로 하고 결국 진료실은 운영되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많은 한의사들이 찐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직접 봉사에 참석했었던 두세명의 후배들로부터 다양한 활동을 담은 사진과 생생한 후기글들을 접하고 나니, 잼버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면 한의진료센터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텐데 행사 자체의 냉정한 평가 항목들이 산적해 있는 이 마당에 한의진료센터에까지 상이든 벌이든, 그 순서가 돌아올 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이다. 늘 이랬었다. 고생은 하는데, 빛은 안 나고 쏟아지는 물줄기를 막아주는 결정적인 틈새의 요긴한 조약돌 같은 모습을 보여는 주면서도 물살에 묻혀 쉬이 드러나지 않는 바로 그러한 존재감 말이다. 있어도 없는 듯 혹은 없어도 되는데 있으면 도움은 되는 딱 그 정도가 한의계의 위치이다. 깨알이자 틈새. 잼버리에서의 한의진료센터의 존재와 기능을 생각하니 대한민국에서 한의학이 차지하는 비중도 딱 이 정도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깊은 곳에서부터 일렁거린다.
전파를 탄 방문진료 한의사의 모습
어디에서든 ‘모모 한의사 잘 한단다’는 소문을 접하시면 잊지 않고 메모해 두셨다가 전화 혹은 문자를 주시는 울 친정 엄니께서 짧은 문자를 보내셨던 때는 7월 말이었다. “아침에 TV는 못 보시죠? 인간극장에 멋진 한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왔었어요” 울 엄니를 기쁘게 만드신 그 분의 정체는 부산시 개원의셨다가 거제도로 이전하시면서 당신 한의원에 찾아오는 일반 환자분들을 보시면서도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을 위해 방문진료를 병행 중인 방호열 원장님이셨다. 지난 7월 17일(월)에서 21일(금)까지 KBS1TV 『인간극장』 열혈한의사 방호열편에 출연하신 방 원장님의 모습은 동네 주치의, 여러 가지 문제 해결사, 멋진 남편, 따뜻한 아버지 등의 여러 역할들을 너무나도 즐겁게 해내시는 멀티맨이었다. ‘한의사는 도시의 한방병원보다도 도농경계지의 방문진료에 최적화된 의료인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많은 외롭고 아픈 어르신 환자분들에게 그토록 따뜻한 말과 세심한 치료로 심신을 모두 낫궈주는 의료인은 한의사들이 거의 원탑일 수도 있다고 감히 자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독거가구가 무려 40%를 향해 가는 현 시점에서 얼마나 필수적인 분야인가?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의미에서라도 한의사들은 참으로 소중한 존재이다.
한의원의 성장…환자를 대하는 따뜻한 마음에서부터
지난주, 한의사도 의료기기인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소송이 제기된 지 10년만에 받아보는 최종 결론이다(『한의사도 뇌파계 사용해 치매 진단할 수 있다... 대법 10년만에 결론』조선일보 조백건 기자, 2023년 8월 19일). 초음파 사용에 이어 뇌파계도 한의사에게 법적 권한이 있다는 판결인 셈이다(『대법원, 초음파 이어 뇌파계도 한의사 사용 가능 판결』노컷뉴스, 송영훈 기자, 2023년 8월 18일).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권한의 지속적인 확대와 한의사의 업권 수호를 지지하는 의미있는 법적 판결로 평가된다. 의협은 항의를, 한의협은 환영의 논평을 내놓았다. 의료기기의 사용이 한의사들에게 얼마만큼의 합법적인 위치를 부과할 수 있는지? 최종적으로 임상가에 얼마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그래서 개별 한의원들의 성장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는 한의계에 내맡겨진 숙제이다.
의료기기의 사용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한의사만이 할 수 있는 경청과 존중의 진료를 유지해가면서 기기 사용을 병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설 『알래스카 한의원』에는 “고담은 이지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진료 차트에 적었다. 이지는 단단한 얼굴로 묻는 고담을 마주 보았다. 만약 통증이 파도처럼 덮친다 해도 옆에 고담이란 한의사가 있다는 사실에 이지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라는 따뜻한 문장이 나온다. 알래스카든 우리동네 코앞이든 뭣이 중헌디?!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이 가까이 계셔서 너무 좋다고, 그래서 이렇게 자주 와서 치료받고 나았고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표현해주는 환자분들을 더 따뜻하게 대해드리자. 그게 당장 우리가 지속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