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가 정점을 지나고 있는 가운데 온 나라가 폭염과의 싸움에 분주하다. 요즘처럼 선풍기나 에어컨 같은 냉방기가 없었던 조선시대의 조상들은 더위를 피하기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에는 무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 삼계탕 등의 다양한 보양식을 챙겨먹어 원기를 회복하는 한편 더위를 피해 맑은 시냇물이나 산속 폭포를 찾아 피서를 떠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우리 선조들은 보양음료를 마심으로써 폭염 속에서 건강을 지키려 노력했다.
왕실의 여름 청량음료 ‘제호탕’
왕실에서는 ‘오매’라는 매실과 여러 약재를 갈아서 만든 왕실 전용 여름 청량음료 ‘제호탕(醍瑚湯)’이 있었다.
제호탕은 갈증해소뿐만 아니라 더위에 지친 신체의 기능을 향진시키고 소화기 질환을 예방하며, 허해진 신체에 양기를 보충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비만과 체내 염증수치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의보감에서도 제호탕은 더위를 피하게 하고 갈증을 그치게 하며, 위를 튼튼하게 하고 장의 기능을 조절해 설사를 그치게 하는 효능이 있어 단오날 복용하면 여름을 잘 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여름철에 제호탕을 자주 마셨던 것으로 보이는데, 내의원에서 매년 단오에 각 전궁에 제호탕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실록에는 영조가 유생들에게 ‘소학’을 시험한 후 수박과 제호탕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승정원일기’에는 인조대에 노쇠한 사람의 정신이 혼몽하고 번갈이 지속되는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서 제호탕을 복용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 19세기 말에 고종이 더운 여름을 이기기 위해 신하들에게 제호탕을 선사했다고 전해지며,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일반 사대부가에서도 여름철 음료용으로 제호탕을 제조했다고 한다.
입안을 상쾌하고 향기롭게 해주는 유자장
유자 역시 조선시대에는 매우 귀한 과일로 여겨졌다. 조선 후기 순조 때의 진상물품에 든 유자가 전라, 경상 각 도마다 일 년에 한 차례씩 3백 개에 불과했던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다. 얼마전까지 남해에서는 유자나무 한그루만 있어도 자식들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는 의미로 유자나무가 대학나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당시에 유자로 만든 유자장은 굉장히 귀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유자장은 유자의 껍질과 속을 저며 꿀이나 설탕에 재워서 우려 나온 유자청을 물에 타서 마시는 것으로 입안에 남는 감이 매우 상쾌하고도 향기로워 여름철에 마시기 좋은 건강음료이다.
유자는 맛이 달고 시며 성질은 차가운데, 요즘 같은 한 여름에 마시면 목마른 것을 그치게 하고, 토사곽란과 주독을 풀어주고 음식을 잘 소화시키며 담을 삭히는 효능이 있다.
원기 보충에 탁월한 ‘생맥산’
땀이 많이 나는 여름철에 기력을 보강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는 ‘생맥산’은 오늘날에도 애용되는 대표적인 여름 전통음료이다.
오미자·인삼·맥문동 등을 달여 만든 생맥산은, 여름철에 겪기 쉬운 더위와 갈증, 땀을 많이 흘리는 증상, 해수(기침) 등을 해결해 주는 처방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사람의 기(氣)를 보하고, 폐의 열을 내리게 하며 진액을 보충하며 심장의 기능을 돕는 효능이 있다’고 기록된 생맥산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도 자주 등장할 만큼 친숙한 여름철 대표 한약이다.
생맥산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한약으로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며, 온열질환의 예방과 치료 등을 위해 한의의료기관에서 처방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