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지난 4월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으로 임명된 최고야 센터장을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 최고야 센터장은 우석대 99학번으로 주영승 교수 지도 하에 본초학 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7년 병역특례로 한의학연에 입사, 2018년 한약자원연구센터가 개소하면서 전남 나주에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Q. 한약자원연구센터장으로 임명됐다.
공공기관 보직은 축하보다는 위로가 필요한 자리인 것 같다. 은퇴할 때까지 평사원으로 일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목표 달성에는 실패하게 됐다. 연구방향을 설정하고 한정된 인적·물적 자원을 적절히 분배하는 일이야 연구책임자로서 당연한 업무지만, 다종다양한 행정업무 부담이 만만치 않다. 예컨대 당장 2일짜리 과정인 산업안전관리자 교육부터 수료해야 한다.
Q. 본초학을 전공한 계기는?
어릴 때부터 등산과 사진을 좋아했다. 한의학의 세부 분야 중에 등산·사진과 관련이 많은 분야라면 단연 본초학뿐이다. 또 사람보다는 사물을 편하게 여기는 성격이라 적성에도 맞았다.
사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할 당시에는 경혈학에 마음이 있었지만, 동기인 누가한의원 윤대식 원장이 경혈학 일편단심이어서 2지망이라 할 수 있는 본초학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거창한 고민이나 깊은 사유 같은 것은 없었고, 어쩌다 보니 본초학자가 된 셈이다.
Q. 본초 연구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우리나라에 본초학자는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 다른 분야 전공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진입장벽이 대단히 높게 여겨진다. 가장 큰 요인은 한문과 우리말·중국어와 라틴어로 이루어진 약명·일반명·학명 체계가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 본초학이란 고전 의서의 토대 위에 생물지리학과 생물분류학, 법규와 무역, 수요와 공급을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인데, 이런 내용은 이과라기보다는 문과에 가까우므로 이과적 사유를 잘하는 연구자들이 유달리 어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문턱만 넘어서면, 다른 분야보다 오히려 쉬운 연구주제가 많다.
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 대표적으로 시료 확보가 어렵다. 한약재 감별 연구를 하려면 정품뿐 아니라 유사품, 위품, 불량품, 변조품 등의 시료도 필요한데 이를 모두 갖추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자원보호 규제 강화로 중국이 원산지인 생물 시료를 수집하는 것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Q. 어떻게 연구주제를 선정하는가?
고전 의서에서 말한 이 약재가 현재 학명으로 어떤 분류군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여전한 품목이 있을 정도로, 본초학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도 아직 연구할 소재가 많다. 그래서 어떤 주제를 정하든지 대부분은 최초로 하게 되는 연구가 되므로 연구 주제 선정이 자유로운 편이다.
그런데 제가 평생 하게 될 연구 로드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약재 감별 중 유전자 마커 개발을 예로 들자면, 한약자원연구센터 규모에서 연간 수행할 수 있는 품목은 많아야 10종 내외인데 한약재 500종을 완료하려면 단순 계산으로 50년이 걸리니 말이다.
Q.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연구는?
현재 한약자원연구센터에서는 한약재의 기원이 되는 자원식물의 분포 조사와 표본 수집, 식물분류학·식물해부학적 감별, 유전자 마커 개발, 한약재의 성분 분석, 약리효과 검증, 조직배양 기술을 활용한 생산성 제고, 최적 포제 조건 탐색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어느 하나도 한두 해에 끝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센터가 존재하는 한 계속 진행될 거다.
다만, 연구 목표는 이렇게 정해져 있지만 기술 발달에 따라 연구방법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예컨대 한약재의 형태학적 감별에는 AI 딥러닝이 접목되고, 유전자 분석은 NGS와 TGS 같은 신기술이 적용되며, 성분 분석은 더 정밀한 분석장비와 분자 네트워킹 분석 기법이 쓰이게 되는 식으로 진보하고 있다.
Q. 센터를 어떠한 조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인지?
한약자원연구센터에 한의사는 저를 포함해 2명뿐이고, 나머지 30여 명은 한약학·한약자원학·식물분류학·천연물화학·식물분자생물학·산림자원학·수의학·약리학 등 다양한 영역의 전공자들로 구성돼 있다. 인적 구성 자체로도 융합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성원들의 훌륭한 연구역량을 바탕으로, 한약재의 과학화와 표준화를 상징하는 국내 대표 연구조직이 되도록 힘쓰겠다.
Q.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의사는 한약의 주체로서 상상 이상의 법적 권한을 갖고 있다. 보건의료 방법론의 한 축으로 한약을 확고히 점유하고자 한다면, 한약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